어쩌면 나는 남해로 도망쳐왔는지도 모른다. 가슴이 답답해서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바다를 찾았다. 문득 바닷가에서 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시골집을 좋아하지 않는 남편이를 설득하여 대학원 마지막 학기 논문을 마무리하고 내려왔다.
남해 시골집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바닷가 내음을 맡을 수 있는 곳이었다. 화장실에서 샤워하면서 들리는 파도소리는 복잡한 마음이 안정되었다. 남해는 나의 눈과 귀를 편안하게 해 주었지만 언제까지 답답한 마음을 바다에 의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는 갑갑함의 원인을 마주해야만 했다.
올해는 내가 겪고 있는 3 대운의 마지막 해이다.(필자의 직업은 역학인이다) 유독 올해 초반부터 지난 과거의 기억과 끊고 지낸 인연들이 떠오르기 시작하였다. 명리를 배우면서, 내 사주를 간명하면서 과거를 돌아보며 자기 객관화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는 그 객관화가 고통과 후회로 밀려왔다.
4월에 대학 동기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런데 결혼식 가기 몇 달 전부터, 어쩌면 친구가 내게 식장을 잡았다고 한 날부터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아무리 친한 친구여도 결혼식에 가는 게 불편하였다. 보기 싫은 사람들을 봐야 하며, 어쩌다 연락 끊어진 이들과도 어색하게 만나는 그 자체가 상상만 해도 괴로웠다. (결국 결혼식 가는 도중에 차를 돌려야만 하는 일이 생겨 참석을 못하였다)
생각은 꼬리를 물어 자연스럽게 지난 10년이 떠올랐다. 한번 수틀리면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향으로 불편한 관계가 되면 인연을 싹둑 잘라내었다. 과거 나는 왜 그렇게까지 행동했을까, 꼭 끊어내야만 했을까, 그래야만 했던 걸까. 시간이 흐르고 나니 그리움과 후회로 남았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나고 보면 내가 의지하고 좋아했던 사람들이었다. 특정 상황 때문에 내가 손을 놓아버렸다. 그때는 버티는 게 힘들었고 감당하기 싫었다.
친구들뿐만이 아닌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양상은 비슷하였다. 가족이니까 내 옆에 있어주는 거였다. 내 주장으로 밀어붙였던 일들이 많았다. 막무가내로 행동했던 지난날의 내가 싫었다. 부모님과 동생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이걸 온전히 받아주고 있는 남편은 또 다른 감사로 다가왔다.
나는 앞만 보며 사는 사람이라 그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때마다 '다음부턴 안 그러면 되지'라며 오히려 쿨한 척 넘겼다. 그 순간을 넘겨 버리면 잘못이 아닌 것 같았다. 반성은 잠깐, 그때뿐이었다. 이런 깨달음 때문에 모든 불찰들이 떠올라 감정적 우울이 생긴 거였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면 일에만 집중하려고 하였다. 어쩌면 이 행위도 인정하지 않고 피한 것이었다. 그럴수록 마음은 더 힘들었다. 일이 마무리되자 어디로 숨어야 할지 갈 곳을 잃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는 부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멀리 어딘가로 가서 생각을 펼쳐놓고 마음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장 밑 동네인 남해로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