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살이 이틀 차, 낯선 곳에서 잠을 자서 그런가. 새벽 일찍 눈이 떠졌다. 타지에서 잠을 자면 꿈을 휘황찬란하게 꾸는 편인데 다행히 편안하게 지나갔다. 집 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듯싶다. 하기야 앞뒤로 바다와 논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니 풍수지리적 요건으로는 좋은 입지이긴 하다. 나쁘지 않은 잠자리였다. 반면 남편이는 잠을 잘 못 잤다고 한다. 집에서 쓰던 것보다 헐거운 매트리스에서 자서 그런지 허리가 좀 불편하다고 했다. 아직 16일이나 남았는데 이를 어째. 그의 허리가 걱정스럽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가볍게 하고 교정기를 빼서 양치를 했다. 머무는 집의 화장실의 좋은 점이 환풍용 창문을 열면 집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귀를 간지럽힌다. 잠에서 깬 지 얼마 안 된 예민한 마음이 바로 평온해진다.
주방으로 가서 커피 내릴 준비를 한다. 원래 캡슐 커피가 마련되어 있는데, 나는 내려 먹는 커피를 좋아해서 쓰고 있던 머신을 일부러 가져왔다. 필터에 커피가루 두 스푼을 넣고 남편과 나, 두 명이 먹을 만치만 물을 채워 전원 버튼을 누르고 잠시 기다린다. 커피 향이 갈색 풍의 남해 시골집과 잘 어우러진다.
커피를 들고 서재에 들어오니 6시였다. 내가 이 집을 선택한 첫 번째 이유는 집에서 바다가 보인다는 점, 두 번째 이유는 서재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꾸민다고 꾸민 들 실제로 사용했던 서재의 정갈함은 따라갈 수 없을 것이다. 이 집 서재는 이전 집주인의 삶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책장에는 우리나라, 북한, 아시아 역사책이 많았는데 왠지 호스트가 역사 쪽을 연구하셨던 것으로 짐작한다. A4 문서들도 원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있었다. 직접 펼쳐 보지 않았지만 소싯적에 어떤 삶을 사셨을지 감히 추측해 볼 뿐이다.
남해에 내려왔어도 평소 일상을 이어가려고 하고 있다. 아침부터 오전까지는 명리 공부와 글쓰기를, 오후에는 남편과 식사를 하고, 저녁에는 사주 상담을 주로 하고 있다. 상담이 없을 땐 독서와 필사를 하는 중이다. 그동안 원고를 쓰려고 기획만 해놨는데 이제야 프롤로그 작업을 시작하였다. 집에서는 그렇게 써지지도 않던 글 작업을 고요한 아침 시간에 단숨에 해버렸다. 이곳에 있을 때 최대한 써 들고 올라가야겠다.
솔직히 말하면 남해 시골집은 불편한 것투성이다. 편리하게 쓰던 물건들도 없고, 편의점이나 마트를 가려면 차로 20~30분을 이동해야 하며, 배달은 당연히 안된다. 그런데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하였다. 없으면 없는 대로 그 환경에 맞게 적응하는 게 신선하면서 즐겁다. 머리가 반짝반짝 돌아간다고 해야 하나? 안일한 일상에서 벗어나 불편함을 감내하는 새로운 일상이 그동안의 삶에 대해 감사함을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