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디지털 노마드죠

남해 속 또 다른 여행에서 알게 된 사실

by 김다인

“일은 어떻게 하고?”


남해에 내려갈 때 카카오톡 프로필 배경을 캐리어 사진으로 바꾸어놨더니 어디를 떠나는 거냐며 지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중 한 명은 내가 하고 있는 사주 상담 일은 어떻게 하는 거냐고, 내려 가있는 동안은 쉬는 거냐며 물었다(필자의 직업은 역학인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을 뱉어버렸다.


“전 디지털 노마드죠”


말하고 나니 괜히 쑥스러웠다. 틀린 말은 아니나 한 번도 내 입으로 디지털 노마드라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다. 카카오톡과 PDF로 사주 상담을 하고 있어 인터넷과 노트북만 있으면 일을 할 수 있으므로 디지털 노마드가 맞긴 하였다. 행사가 있거나 여행 갈 일이 생기면 그 일정 끝나고 상담 예약을 받아 그 기간 동안은 최대한 일을 하지 않게끔 만들었다. 이번엔 여행이 아니라 남해 ‘살이’를 하러 간 것이기에 남해에 있어도 본업을 평소대로 이행할 참이었다. 남해 시골집을 17박 예약하였고 멀리 이동할 일이 없다고 판단하여 일하는 데 크게 문제 될 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문제는 역시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안방 남자는 남해 시골집 살이를 굉장히 불편해하였다. 나도 천상 도시 사람이라 적응하기 만만치 않았는데 그는 나보다 더 까탈스러웠다. 남편은 개미 한 마리만 봐도 화들짝 놀랐고 다리가 여러 개 달린 벌레라도 볼 때면 길이길이 날뛰었다. 그이는 키가 185cm가 넘는 장신인데 158cm인 단신인 내게 어서 벌레를 잡아달라고 내 뒤로 숨어 바짝 붙어 매달렸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무려 17박을 지내야 했기에 그이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내가 꺼낸 무기는 옆 동네로 넘어가 맛있는 음식을 먹여 달래는 거였다. 효과가 크려면 술의 힘까지 빌려야 했는데 그러려면 근처에서 하룻밤 자고 와야 했다. 숙박비가 대리비와 크게 차이 나지 않고 무엇보다 안방 남자를 진정시킬 수 있는 비용까지 생각하면 저렴하다고 판단하여 남해 속 작은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17박 중에 3일을 묵고 있는 시골집에서 대략 1시간 정도 거리 지역인 삼천포, 창원, 순천에 있었다. 주에 한 번은 1박 2일로 또 다른 여행을 한 것이다. 갑작스럽게 떠난 거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상담 예약을 수용하였고 다닐 때마다 노트북을 챙겼다. 집에서 아침을 먹고 다른 지역으로 넘어가면 오전부터 저녁 먹기 전까지 상담에 집중할 장소가 필요하였다. 가려는 지역에 스터디 카페나 작업하기 좋은 카페를 알아두어 그곳에서 작업을 하였다. 처음엔 평소와는 다른 환경이라 산만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시간 내에 꼭 해야 한다는 긴장 속에 집중력이 높아졌다. 늘 모니터 한 대(아니면 태블릿이라도)나 키보드를 갖추어 일을 했었는데 노트북 하나로도 충분하였다. 그리고 핸드폰도 또 하나의 PC 역할을 해주었다.


이렇게 한바탕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 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평소와 다른 자유 속에서 깊이 집중하여 일하는 느낌이 좋았다. 내 모토는 공부, 생활, 일에서 ‘자유로움’을 지향하는 것인데 이렇게 일하는 방식은 자유의 최고치를 찍는 것 같아 만족도가 높았다.


image (3).png 사천시 어느 카페
image (4).png 창원 어느 스터디 카페
image (5).png 삼천포 어느 스터디 카페


그동안 부족한 게 있으면 갖추려고만 하였지, 가진 것에서 활용해 보려고는 하지 않았다. 어쩌면 ‘갖춰진 것’이 나의 자유를 억압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처음부터 세팅해 놓고 시작하는 게 변화되는 환경 속에서 융통성과 자유로움을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 갖추려는 노력보다 가진 것에서 최고를 뽑아내는 것,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더 중요하였다. 이번 경험을 통해 어디서 무얼 하든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평소보다 부족한 게 많았지만 없이 하니까 작업 세팅도 단순하고 간편해졌다. 간편함, 자유, 집중이라는 단어가 이리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이를 알게 해 준 안방 남자에게 감사함을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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