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오늘이 퇴사 날이었습니다

퇴사 후 1년, 그동안 무슨 일이?

by 김다인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고 프리 선언을 한 지 오늘로 1년째 되는 날이다.

그날은 역시 잊을 수가 없다. 퇴사해서가 아니다. 바로 출판사와 계약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회사 다니면서 밤새 원고를 썼던 노력이 결실을 맺는 순간인데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이 원고 덕분에 프리 선언을 할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퇴사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해야 할까?


단순히 글로 먹고살려고 퇴사한 건 아니다. 30대가 들어서자 10대 때도 안 겪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심하게 겪었다. 회사 업무가 미치도록 싫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게 글쓰기였다. 어릴 적에 엄마의 강요로 동네 글쓰기 그룹 과외를 했던 영향이었는지, 답답할 때마다 일기를 쓰는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글 쓰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글쓰기로만 단정 짓고 싶지 않았다. 글쓰기를 하되, 내 브랜딩을 계발하여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 브랜딩을 찾기 위해서 퇴사했다고 말하면 무모해 보이려나.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만큼 중요한 게 없었다. 회사에는 출판 계약을 해서 앞으로 작가가 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나왔지만, 진짜 이유는 하고 싶은 걸 더 찾아 퍼스널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회사만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원고를 쓰고 출판 계약까지 성사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더 있을 것 같아 그걸 찾기 위해 회사를 나온 것이다. 다니면서는 절대 못 찾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가 무지막지하게 싫어 글을 쓸 에피소드조차 회사에서 일어난 일로 쓰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면 두 번 다시 회사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6년 동안 묵혀 둔 가슴속 사표를 시원하게 날려 버렸다. 만세!!!!!


퇴사한 지 딱 1년째 되는 오늘.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책을 출간하는 동시에 개인 블로그를 오픈하여 연애 칼럼을 기재했다. 몇 달 뒤에는 강연 섭외 요청이 들어왔다. 작가들은 글이 아니라 말로 먹고산다고 하던데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오나 싶었다. 메타버스 앱 Ifland에서 가상 캐릭터를 통해 독자들을 만났고, 온라인 강연 플랫폼 회사 마이크임팩트 스쿨에서 비대면 연애 강연을 진행했다. 처음 도전하는 강의를 어떻게 할까 싶었는데, 처음 한 것치고는 잘한 것 같아 평소에 보지 못했던 새로운 나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강연을 하고 나서는 연애 상담도 진행했다. 강연이나 책을 보고 연락 주시는 분들 위주로 메일 상담을 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아 뿌듯했고, 이후 더 영역을 넓히고 싶어 블로그에 공지글을 올려 11월부터 공식적으로 메일 상담을 시작했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라..) 도전한 것들이 더 있다. 연애 실용서를 첫 책으로 출간했기에 로맨틱 코미디 대본이나 시나리오 작업을 해보고 싶었다. (막연하게..)그래서 한국방송작가협회 작가 교육원에 들어갔다. 우리나라 유명 드라마 작가들이 거쳐가는 곳이라길래 한 번 원서를 넣었더니 얼떨결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초반에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거라 즐거웠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드라마 작가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를 깨달았다. 나도 이상한 사람 축에 끼는 편인데, 나보다 더 이상한 사람들이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이상하다의 말은 절대 부정적인 게 아니다. 무언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른 느낌이랄까? 그 무언가는 뭔지 모르겠다. 그걸 알면 드라마 작가 공부를 더 오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 이상함이 부러웠다.


작가 교육원을 그만두고 나서는 다른 공부를 시작했다. (또?) 바로 사주 명리학 공부다. 뜬금없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사주는 어릴 때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그 관심을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궁금했다. 알아보니 학원도 있고 학부, 석사, 박사 과정까지 공부할 수 있는 길은 충분했다. 지금 현역에 있는 분들은 학원에서 배운 뒤 상담하시는 분들이 대다수다. (내가 알기론 그렇다) 내가 학문적으로 접근하여 기반을 다진다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게다가 이 직업은 골동품이 명품이 될 수 있는 영역이기에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능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사주 에듀라는 온라인 교육 사이트에서 기본 강의를 듣고 작년 9월에 원광디지털대학교 동양학과에 편입했다. 최근에 한 학기를 마쳤는데 다행히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퇴사 후 1년 동안 평소 관심 있던 분야에 도전하면서 내가 진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나의 탐색 과정을 거쳤다. 아직은 글쓰기만큼 좋아하는 일을 찾지 못했다. 다만 여러 가지를 경험하면서 직업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 아닌지를 구분하며 보낸 1년이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성향이다. 아닌 일을 제치는 것도 나에겐 중요한 절차였다. 좋아하지만 적성이 아닌 일로 시간 낭비를 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책을 출간했다고 인생이 바뀌지는 않았다. 다만 인생의 방향성이 바뀌는 걸 느꼈다.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앞으로 나아갈 뱃머리의 방향을 틀어 이것저것 도전하는 계기가 된 셈이다.

퇴사 후 1년, 잘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