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서른두 살에 퇴사를 한 이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by 김다인

‘이번 꼭지는 어떤 걸 써야 하나...’

새벽 4시 30분.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컴퓨터 책상 앞에 앉아 생각한다. 한 꼭지를 출근 준비 전까지 쓰려면 잠든 뇌를 빨리 깨워야 한다. 물도 한 컵 시원하게 마신다. 다시 책상에 앉는다. 타닥타닥. 이 정도면 저녁에 퇴근하고 와서 수정하면 되겠다 싶어 출근 준비를 한다. 만원 가득한 1호선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어깨 틈 속에서 노트 앱을 켠다. 다음 목차 아우트라인을 잡는다.



재작년 가을이었다. 나는 본래 글을 쓰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평범한 4년제 대학교를 졸업하고 중소기업 재무팀에서 숫자를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회계세무학을 전공해서 근 10년간 글자보다 숫자를 많이 읽으며 살았다. 직장 생활 5년 차에 접어들었을 때, 모니터 안에 가득 채워진 숫자가 어느새 지겨워졌다. 앞으로 어떤 수로 살아가야 하나 가슴도 답답했다. 옆에 앉은 띠 동갑 직장 상사를 보고 10년 뒤 내가 저런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하게도 싫었다.

이직을 총 네 번 해서 다섯 곳의 직장을 다녔다. 상사였던 부장들은 죄다 밥맛이었다. 윗사람에게 아부하느라 자기 팀원들은 돌보지 않았다. 일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상사라고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만이 버티는 방법이었다. 친구들은 좋은 선배나 상사를 많이 만난다는데 나는 상사 복도 지지리도 없다 싶어 이직할 때는 아예 기대라는 걸 내려놓았다.


회사에서 눈과 귀를 막고 지내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5년 정도 됐으니 웬만한 기본적인 것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었지만, 대리로 승진한 뒤부터는 더 이상 일이 하기 싫었다. 직급 하나 달랑 올려줘 놓고 팀 전체의 일을 떠안기는 것 같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며 애써 마음을 추슬러 보지만 그 때뿐이었다. 다시 신입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녔던 대학교 때가 좋았는데 말이지, 하다가 번뜻 소름이 돋았다.

‘야 그럼 지금과 같은 인생이 반복되는 거잖아?!’

지금과 똑같이 살려고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내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게 후회막심이었다. 진정으로 내 인생을 고민하여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서른한 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잠깐만, 나는 지금 서른한 살이니까 아직 무엇을 시작해도 괜찮은 나이가 아닐까? 문득 예전에 이직하려고 몰래 지원했던 대기업 면접이 떠올랐다. 딱 서른한 살로 내 옆에서 함께 신입 면접을 본 남성의 당당한 자기소개도 함께 말이다. 그래, 서른이 넘어도 신입으로 입사도 하는 세상인데 지금이라도 뭐든 못하겠어?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뭐지? 다시 딜레마에 빠졌다.


평소 생각을 글로 무지막지하게 적는 것을 좋아한다. 머릿속 생각이나 답답한 마음을 머리채 잡듯이 끌어다 하얀 종이 위에 까맣게 풀어 버리면, 마음 속 고통이 종이 위로 옮겨간 듯이 홀가분해진다. 이 정도면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나름 찾았다고 결론을 내리고 무슨 모임이라도 있을까 싶어 네이버 검색창에 ‘글쓰기 모임’을 입력했다.

마우스 스크롤을 좀 내려 보니 다수의 파워링크들이 나 좀 보라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그러다 내 시선을 끈 것은 의외로 글쓰기 모임이 아니라 책쓰기 모임이었다. 글쓰기 모임은 익숙한데 책쓰기 모임은 조금 생소했다. 호기심에 클릭했고 그날 바로 출판사 소장님과 면담을 하게 되었다. 홀리듯이 9주 과정 책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출근 전 짬짬이 새벽에 원고를 쓰게 된 것이었다.


매일 회사를 왔다 갔다 하는 일도 힘들어했는데 원고를 쓰기 시작하고부터는 출퇴근길이 원고로 쓸 내용을 생각하여 노트 앱에 적는 시간이 되었다. 편도 1시간이 넘는 출퇴근길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즐거웠다. 회사에서도 빨리 업무를 끝내고 글감을 생각하고 싶어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 옆에 앉은 동료가 “대리님 요새 뭐 좋은 일 있어?” 할 정도였다. 늘 죽상으로 회사를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이렇게 회사를 행복하게 다닌 적은 처음이었다.


가을부터 시작한 원고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초고를 마쳤다. 초고를 끝내서 기분이 좋아야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 재미로 회사를 다녀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꼭지를 더 써볼까 할 정도로 아쉬움이 밀려왔다. 글감 없이는 지옥의 출퇴근길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회사라는 감옥 속에 갇힐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고기 맛을 안다고, 이미 인생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는 기쁨을 맛본 것이다.


이제야 하고 싶은 일을 하나 찾은 셈이다. 원고를 글쓰기 연습장 삼아 글쓰기가 이렇게 신통방통한 행복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더욱 궁금해졌다. 내가 또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말이다. 왠지 모르게 좋아할 만한 다른 일이 또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내 인생은 싫어하는 일을 하며 억지로 허송세월로 보내는 것보다, 전문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사는 삶이 멋질 것 같았다. 인생은 짧다고 하는데 그 짧은 인생을 지금껏 살아온 것처럼 보내기 싫었다.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도 인생은 짧을 테니까 말이다. 결국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해가 바뀌고 얼마 안 돼 나는 회사에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을 외치고 나왔다.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라고 이누야사 가영이처럼 발랄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너무 기쁜 모습은 남아 있는 동료들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꾹 참았다. 그리고 이 날은 마침 출판사와 출판 계약을 하는 날이기도 했다.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퇴사 날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고 퇴사를 한 지 이제 막 1년이 넘었다. 지난 1년간 이것저것 방황하며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명확히 깨닫게 되었다. 좋아하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고 좋아하는 공부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서 최고 멋진 삶이 아닐까? 믓찌다 믓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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