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경력직 취업이 하도 안 돼 답답한 마음에 찾아간 철학관에서 들었던 이야기다. 세무사 공부를 하기 위해 네 번째 회사를 때려치웠다. 나름 공부가 취미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6개월쯤 시험공부에 집중했을까. 무거웠던 엉덩이가 들썩들썩 가벼워지기 시작했고 좋아하는 술마저 다시 입에 대면서 나의 수험생활은 자체적으로 강제 종료가 되었다. 이때 확실히 알았던 것이 있다. 공부는 절대 취미가 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나는 생각보다 공부를 좋아하는 사람이 절대 절대 절대!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주제 파악은 참 잘한다.
당시 내 나이 서른한 살. 신입도 아니고 대리급이라 취업이 어려울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국이 어려웠다. 2020년 1월부터 입사 지원서를 기업에 제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안간 2월부터 무슨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게 등장! '이러다 말겠지'라며 별로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꽁꽁 얼어붙은 경제에 취업 시장만 따뜻한 봄날 일 리는 없었다. 회사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인력 축소부터 한다는데, 게다가 인력 감축의 가장 유력한 부서는 내가 전공한 회계, 경리 분야가 아닌가? 아뿔싸. 세 번째 회사를 나간다고 했을 때 당시 나를 아껴주시던 부장님의 말씀이 생각이 나는 게 뭐람.
“회사가 어려우면 가장 먼저 잘리기 쉬운 부서가 경리인데, 그걸 하러 퇴사한다고?”
속으로 ‘나가도 제 발로 나갈 일이 많을걸요?’하면서 깡그리 무시했었다. 별안간 그때 그 말이 생각이 나버리다니, 내 상황이 어렵긴 어려운가 보다.
1월부터 준비한 취업은 4월이 되어도 깜깜무소식이었다. 회계세무학을 전공해서 4년제 수도권 대학교를 졸업했고, 관련 경력도 5년이나 되는데 나 같은 인재를 안 받아준다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했다가 콧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제발, 한 군데만 불러주옵소서’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믿는 종교도 없으면서 있는 신, 없는 신을 찾아댔다. 애초에 생각했던 연봉과 기업 규모를 점점 낮추면서 자존감도 동시에 떨어졌다. 결국 불러주는 곳이 없어 찾아간 곳은 회사가 아니라 용하다는 철학관이었다. 타고난 팔자가 무엇이든 상관은 없다만, 일단 취업은 되는지부터 물어보려 했었다. 그런데 앉자마자 하는 소리가 그동안 회사에 어떻게 다녔냐 라니?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갈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선생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저 취업이 되나요?”
4개월 동안 취업에만 매달리고 성과도 없다 보니 답답해 머리가 미쳐 돌아가실 지경이었다. 안 그래도 세무사 수험 생활을 지지해 준 남편에게도 빨리 취업을 해서 당당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사주 아줌마는 혀만 끌끌 찼다.
“5월에 되긴 할 건데, 여기도 뭐 얼마 못 다니겠는데~에?”
말끝을 올리는 아줌마의 말투가 정말 얄미웠다. 곧 다가올 5월에 취업이 된다는 기쁜 소식도 잠시, 또 그만둔다고? ‘양심이 있으면 절대 그만두지는 못할 텐데’라고 나는 생각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그 아줌마가 한 말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다. 아줌마 말대로 나는 정확히 5월 11일에 출근을 했고 이듬해 1월 11일에 다섯 번째 퇴사를 하고야 말았다.
결론은 ‘그 사주 아줌마가 용하다?’가 아니고, 용한 건 맞지만 회사를 못 다니는 성격이라는 말이 당시 나에겐 충격이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회사를 잘 다니려고 노력했는데?
“아가씨는 아가씨 것을 해야 해. 본인이 웬만한 상사는 상사라고 인정하지도 않아!”
한 번도 내 것을 해야겠다고, 나만의 것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세무사 공부를 준비한 적은 있지만 그저 불안한 사회 속에서 경리 업무만 하는 게 미래가 불투명했기 때문에 도전한 시험이었다. 솔직히 옆에 앉아 있는 띠동갑 상사를 보며 10년 뒤 나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니 끔찍한 마음에 시작한 것도 있지만.
사주를 보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본인 것을 해야 해’가 귀와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때부터였을까. 취업을 성공했지만 업무가 조금 익숙해지자 그 아줌마 말대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정말 나만의 것을 찾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