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한 살 무더운 여름의 한 아침, 만원 지하철 가득한 출근길에서 나는 문득 인생을 바꾸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회사 생활이 지긋지긋했다. 4년제 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을 다니면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여 그 꿈만 이루려고 노력했다. 취업이 잘 되는 학과로 전공을 바꾸고 졸업하자마자 취업에도 성공했다. ‘이제 나는 성공의 길로 들어섰구나’ 했는데 해가 거듭될수록 내가 생각한 성공과 행복이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돈을 버는데 돈이 있다고 행복한 건 아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할 순 없을까’라는 생각이 거듭될 때면 철없는 소리라며 스스로를 억눌렀다. 돈을 벌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지 하면서 금세 그 욕심을 지웠다.
결혼 전에는 연애와 커리어에만 집중했다. 결혼하고 보니 인생에서 무언가 빠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하기는 한데 단물 빠진 행복이랄까? 어쩌면 더 큰 행복을 바라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봄을 타는 것처럼 이러다 말겠지라고 또다시 넘겼지만 답답함을 호소하는 주기는 점차 짧아졌다.
퇴근 후 남편과의 술 한 잔이 내게 유일한 취미였다. 다른 취미활동을 하면 고질병 같은 이답답함이 해소될 것 같았다. 몇 년 전에 했던 글쓰기 모임을 떠올렸다. 돈도 안 들고 고상한 취미가 될 것 같아 바로 글쓰기 모임을 검색했다. 그러다 책 쓰기 모임이 눈에 들어왔다. 평범한 사람 모두가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떻게?’라는 궁금증에 이끌려 클릭했다. 열린 웹페이지는 책 쓰기 아카데미라는 곳이었다. 무료 상담이 있다고 하여 나도 모르게 상담 신청서를 작성해 버렸다. 다음 날 퇴근 후 방배역에 있는 한 출판사로 발걸음을 향했다.
출판사 직원이 회의실로 안내를 해주었다. 따뜻하고 모던한 느낌의 넓지도 좁지도 않은 딱 적당한 크기의 회의실에서 달달한 블랙체리 향이 났다. 왠지 느낌이 좋았다. 처음 방문하는 장소, 처음 만날 사람에 대한 적당한 긴장이 블랙 체리 향을 맡을 때마다 설렘이 커졌다. 잠시 후 한 중년의 남성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김 oo 씨 되시죠? 저는 R 출판사 소장 xxx입니다. 반갑습니다.” 그는 컨설팅을 잘할 것 같은 목소리를 소유했다. 앞으로 들을 그의 말에 110% 신뢰하게 될 줄은 첫인상을 보고 그랬던 것 같다. 그는 간단한 자기소개 후 인생에서 한번 받아 볼까 한 질문들만을 내게 던졌다.
‘나는 _____하면 행복하다’ ‘나는 ____ 칭찬을 자주 듣는다’ ‘내 인생의 중요한 가치는 ___이다’ 등 인생에 있어서 나의 무기, 내가 지금껏 해온 것 중에 가장 큰 성과를 낸 것 등 속 깊은 이야기를 그와 나누었다. 난생처음 보는 아저씨와 이런 대화를 하다니, 우리 부모님도 남편도 15년 지기 친구와도 해보지 않는 대화였다.
내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은 소장님은 나의 강점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주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것처럼 보였다. 짧다면 짧은 나의 인생에서 나도 찾지 못한 강점을 스토리텔링 하였다. 그리고 그 강점은 어느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나만의 브랜드라고 말씀하셨다. 요새 말하는 퍼스널 브랜드인 것이다. 그리고 이 브랜드는 아무도 따라 할 수 없기에 나만의 글, 책으로 펴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회사에서는 늘 틀에 박혀 ‘나의 것’은 철저하게 배제되어야만 했었다. ‘나만의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는 그동안 답답했던 나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책 쓰기 아카데미에 수강료를 지불했다.
저만의 세상이 될 수 있었던 저의 책상입니다
글쓰기가 아니라 책 쓰기 모임에 참여하는 나 자신이 조금 생소했다. 하지만 이내 인생의 새 국면을 맞이하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것도 모르겠는데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강한 확신이 들었다. 회사 쳇바퀴만을 도는 다람쥐에서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먹잇감을 찾는 호랑이가 된 기분이었다. 원고를 쓰며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아주 큰 성과였다. 퇴근 후 저녁, 출근 전 새벽 시간은 방 한편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면서 온전히 나만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세상이 되었다. 나를 만나는 시간이 이토록 행복한 줄은 꿈에도 몰랐다.
원고를 다 쓰고 마지막 커리큘럼으로 소장님을 뵈었을 때, 자신의 출판사에 원고를 투고해달라고 하셨다. 그동안 나의 글을 꼼꼼히 읽은 그였다. 그렇게 투고를 한 후 첫 출판 계약이 이루어졌다.
‘인간을 바꾸고 싶다면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라’ 책 <난문쾌답>에서 오마에 겐이치는 말했다. 나는 이 말을 빌려 조금 변형하여 말하고 싶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인생을 바꿔줄 만한 긍정적인 영향력을 나에게 선사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만나라고 말이다. 출간 후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소장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땠을까를 생각해 봤다. 살면서 아무것도 해 놓은 게 없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를 통해 내가 충분히 잘 살았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나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리고 원고를 쓰면서 글쓰기를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도 깨닫게 해 주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또 다른 나만의 것을 찾을 수 있도록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행복의 기준이 외부에 있다고만 줄곧 생각했는데 그 기준은 ‘나’에게서 온다는 것도 다시 알게 되었다. 결국 그를 만난 이후, 누구의 시선과 행복이 아닌 내 인생을 사는 방향으로 인생이 바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