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사랑이었네-한비야>를 읽고 직장 상사와의 갈등 극복 에세이
천길 벼랑 끝 100미터 전.
하느님이 날 밀어내신다. 나를 긴장시키려고 그러시나?
10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이제 곧 그만두시겠지.
1미터 전. 더 나아갈 데가 없는데 설마 더 미시진 않을 거야.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너무나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아래로 밀어내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대학 졸업을 앞둔 2014년 6월의 어느 날, 나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 서류 탈락의 고배를 수십 번 마시고 있었다. 답답하여 누구에게라도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때 집어든 책이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였다. 15년 지기 친구와 각자 가지고 있는 책 중 추천하고 싶은 책을 교환해서 보기로 하여 받은 책이었다. 나는 책으로라도 잠시 현실을 도피하고 싶어 읽기 시작했다. 책장을 몇 장 넘기자 예상치 못하게 저 기도문을 읽고 내 몸에 짜릿한 전율이 도는 감동을 받았다.
면접 한 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면접이라도 봐야 나의 역량을 어필할 수 있을 텐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스물다섯 살, 취업 포기자가 되어 부모님께 캥거루 새끼처럼 안겨 살게 될까봐 두려웠다.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1살 연하인 남자 친구에게도 좋은 본이 되고 싶었다. 어디라도 붙으면 뼈를 갈아 넣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절실했다. 그런데 종교도 없는 내가 이 기도문을 읽으니 갑자기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는데 나는 아직 벼랑 끝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를 펴려면 벼랑 끝까지 가야 하는데 아직 도달하지 않았다고 여기니 더 노력할 힘이 생겼다. 그 노력이 통했는지 그해 10월, 나는 첫 회사에 입사했다.
내가 이 책을 두 번째로 편 건 첫 회사를 그만두고 다음 회사에 다닐 때였다. 부장과의 갈등이 심했다. 첫 회사보다 규모도 컸고 그래서 나는 1년 차 신입사원으로 어렵게 입사한 회사였다. 새로운 마음으로 잘하려고 애쓰는데 부장에게 찍힐 게 뭐가 있었을까?
그 부장은 함께 입사한 동기와 나를 차별했다. 이름을 부를 때도 나한테는 꼬박 성을 붙이며 불렀고 동기에게는 ‘oo야~’하며 대놓고 편애했다. 열여덟 명의 부서 사람 전부가 그 차별을 알았다. 하지만 누구 하나 대놓고 내 편을 들지 못했다. 뒤에서 힘들어하는 나의 등만 토닥여줄 뿐이었다. 부서 최고 자리에 앉은 그의 면전에서 신입사원 하나를 편들 수 없었으리라.
차별은 인신공격으로 이어졌다. 부장은 어느 날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나에게 내 눈썹을 트집 잡았다. 얼굴이 그게 뭐냐, 짱구 눈썹이냐, 문신한 거 아니냐며 팀원들이 보는 앞에서 나를 민망하게 했다. 한 번은 점심 때 짬뽕을 다 같이 먹고 있을 때 동기가 나에게 짬뽕 국물이 입가에 묻었으니 닦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는 원래 네 얼굴이 아니냐며 큰 소리로 비웃어 부서원들의 웃음을 유도하기도 했다.
내가 실수하면 그 부장은 자기 책상으로 나를 불러 큰 소리로 혼을 냈다. 비슷한 실수를 해도 동기에게는 앞으로 잘하라며 주의만 줄 뿐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화장실에서 조용히 눈물만 훔칠 수밖에 없었다. 부장은 회사에서 나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점점 나는 회사에 가기 싫어졌다. 아니 갈 수가 없었다. 그 부장만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불면증에 시달렸고 없던 두통도 생겼다. 자신감, 자존감이 넘치던 나였는데 바닥을 친지 오래였다. 내가 ‘나’가 아닌 기분이었다. 결국 부서 회식 날 나는 쌓여 있던 감정을 폭발시키고야 말았다.
식당 구석에서 소주 한 병 정도를 마셨을 즈음이었다. 부장이 모두가 있는 앞에서 나를 괴롭히던 것처럼, 나도 이사님까지 계신 회식 자리에서 울면서 그에게 외쳤다. “부장님, 왜 저한테만 이러시는 거예요? 저를 왜 이렇게 싫어하시는 거예요?” 시끌벅적하던 식당은 시간이 멈춘 것처럼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부장은 이사님의 눈치를 보며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사님은 “우리 보미를 ooo 이가 괴롭혔단 말이야?” 위로를 해주었다. 그게 그 회사에서의 마지막 회식이 되었다.
한 달 후 자유로운 몸이 된 나는 침대에 엎드려 입사지원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회사의 다른 부장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사님이 내 사정을 듣고 회사의 다른 계열사로 입사 추천서를 써준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연결된 그 회사에서 면접을 잘 보았고 그만둔 지 한 달 만에 다시 출근을 할 수 있었다.
나는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 책이 떠올랐다. 퇴사하면서 벼랑 끝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 사회생활을 1년도 견디지 못한 것 같아 패배자가 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벼랑 끝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숨어있던 날개가 펴진 것이었다. 전 회사에서 상사와의 심한 갈등이 있었던 경험이 다음 회사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조금 스트레스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이 정도 힘든 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견뎠다. 다행히 새 회사에서는 진급도 했고 동료들과의 사이도 원만했다. 내 능력을 인정받으며 즐겁게 다닐 수 있었다.
이후 <그건 사랑이었네>를 반복해서 읽으며 나는 위로뿐 아니라 새로운 일을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기도 했다. 30대에 들어서자 ‘가슴 뛰는 일’을 하도록 인생의 방향성을 제시해주어 직장 생활을 끝내고 나만의 공부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퇴사 후 1년이 지난 지금도 가고 있는 길이 제대로 된 것인지, 다른 길로 가야 하는 건 아닌지 흔들릴 때마다 최종 목표만을 생각하라며 마음을 다잡게 해 준다. 개나리는 봄에 펴고 국화는 가을에 피듯이 나는 봄에 피는 개나리가 아니라 가을에 피는 국화꽃일 거라고 안심시켜 주기도 한다.
이제 나는 벼랑 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곤두박질 칠까봐 겁을 먹지 않는다. 힘든 상황이 되면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를 펴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