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흔들리고, 동맹은 다가온다
블랙 코메트 선실 안, 거친 항해로 지친 선원들이 둘러앉았다.
형준은 턱을 괴고 규만을 바라봤다.
“규만아, 저 카페가 만약 항해를 한다면 속도는 얼마나 될까?”
규만은 단호하게 손을 저었다.
“안에 있는 침대며 테이블, 장식품 다 떼어내도 저건 그냥 거북이야.
원래부터 니 배처럼 빠른 배도 아니었는데 카페로 개조까지 했으니 더 답 없어.”
아론이 팔짱을 끼고 진지하게 말했다.
“만약 그 카페가 스스로 움직이는 방법을 쓴다면, 카페가 안전지대까지 올 때까지 우리 블랙 코메트가 영국과 스페인 연합함대를 전부 막아야 합니다, 선장님.”
형준은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좋구먼. 내가 혼자서 저놈들 다 때려잡으면 전설의 해적 되는 거지? 딱 내 스타일인데?”
바로 윤아의 손바닥이 형준의 뒤통수를 강타했다.
“전설의 해적이 아니라 물고기 밥이 되겠지! 아니면 교수형 줄에 목매달던가! 눈 안 달렸어? 저기 배만 50척은 되잖아!!!”
유나가 팔에 걸친 화승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 전면전은 해적 연맹 전체가 움직여야 가능해요.
하지만... 해적 연맹 전체가 한 번도 움직인 적은 없었죠.”
성곤은 테이블을 쾅 치며 벌떡 일어났다.
“그러니까! 너랑 우덕이부터 힘을 합쳐! 맨날 따로따로니까 문제잖아!!”
윤아는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 무모한 돌격왕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거기다 캐논킹까지 붙여?
둘이 힘 합치면? 무턱대고 싸움 걸고 다 같이 수장될 게 뻔하지!!”
그때, 조용히 있던 아스카가 입을 열었다.
“연맹 전체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 동맹을 경계하는 다른 해적단들은 분명 있을 겁니다.
일단 그 자들을 규합해야죠. 선장님 실력은 믿지만, 혼자 덤비는 건 무모합니다.”
규만이 잔을 비우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듣자 하니, 싱가포르 위쪽에 있는 조선이란 나라에서 단 12척의 배로 수십 배 되는 적을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선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윤아가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
“뭐? 그런 제독이 있었다고? 나 그 사람한테 시집가야겠다!
그런 승리를 이끌 정도면 지금쯤 엄청 높은 자리에 있을 거 아냐?!”
규만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요 마지막 싸움에서 세상을 떠났어요. 게다가 그 나라 왕은 오히려 그 제독을 괴롭혔다고 하더군요.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형준은 분노를 담아 테이블을 치며 외쳤다.
“그 왕, 제정신 아니구먼! 영웅을 알아보지도 못하다니 완전 바보지.
뭐, 천만다행으로 강신혁이랑 정한별은 그 영웅 발가락 때만도 못한 실력이니 그게 우리 운인 셈이지.”
선원들이 킥킥 웃었지만, 공기 속엔 분노와 결의가 섞여 있었다.
성곤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결국 어떻게 할 건데?”
형준은 잠시 진지하게 눈을 감았다가 입을 열었다.
“아스카 말이 맞아. 쉽렉 섬으로 돌아간다. 가장 가까운 해적 거점에서 동료를 모아야지.
그리고 우덕한테도 도움을 요청한다. 최소한 12척은 있어야 카페를 되찾을 수 있다!”
선실은 술렁였다. 그 순간
멀리서 둔탁한 종소리가 울려왔다.
신혁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올 블랙 해적단이다!!! 리갈 저스티스 호, 출동 준비!! 오늘 반드시 저놈들을 잡는다!!”
영국 해군의 기함, 리갈 저스티스 호가 거대한 돛을 펼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형준은 씩 웃으며 배 밖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왕 걸린 거, 저놈들 기세나 한 번 꺾고 가는 건 어때? 저 영국 놈이랑 시원하게 붙자고!”
아론은 식은땀을 흘리며 선장을 붙잡았다.
“제발요, 선장님! 무모한 짓입니다! 지금 싸우면 끝장입니다!”
그러나 형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야~ 전설의 해적은 그냥 되는 게 아니거든?”
윤아가 형준의 귀를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전설이 아니라, 넌 진짜 물고기밥 된다니까!! 내가 키 잡는다, 다 꽉 잡아!!!”
블랙 코메트는 전속력으로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뒤에서는 리갈 저스티스의 포성이 울렸다.
포탄이 파도를 가르며 바닷물을 치솟게 했다.
“더 빨리! 더 빨리!!” 선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형준은 신나게 소리쳤다.
“좋아, 이런 게 진짜 항해지!”
윤아는 이를 갈며 키를 돌리고, 배는 간발의 차로 암초 사이를 스쳐 지나갔다.
마침내 블랙 코메트는 안갯속으로 사라졌고, 리갈 저스티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형준!!!”
윤아의 분노가 폭발했다.
“너 제정신이야?! 선원들 다 죽을 뻔했다고!!
내가 몇 번을 말해?! 네 무모한 짓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알아?! 어?!?!”
잔소리는 무려 30분 넘게 이어졌고, 옆에 있던 선원들까지 귀를 틀어막았다.
성곤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귀에서 피난다. 진짜 피난다.”
규만도 고개를 끄덕이며 “전쟁보다 무섭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작 형준은 아무렇지 않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아~ 졸려. 언제 끝나?”
그때, 망루에서 외침이 들려왔다.
“선장님! 크림슨 크로우입니다!!!”
붉은 돛을 단 거대한 배가 안개를 뚫고 다가왔다.
갑판 위에는 대책 없는 미소를 짓는 사내
캐논킹 우덕이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오~ 형준이! 그리고 거기 성곤이랑 규만이도 있네? 반갑다 얘들아!!”
블랙 코메트의 갑판 위는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누군가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제 바다가 진짜 시끄러워지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