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로 덮인 간판

빼앗긴 꿈, 다가오는 전쟁

by 동룡

크림슨 크로우가 잠시 스페인 해군을 붙잡아두는 동안, 블랙 코메트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형준은 키를 부여잡고 광기 어린 미소를 터뜨렸다.
“자, 봐라! 오늘도 바다가 내 경주장이 된다!!”

배는 마치 짐승처럼 포효하며 암초 사이를 파고들었다.
돛대가 쩍 기울어지고, 바닷물은 사정없이 갑판을 덮쳤다.

“선장 만세!!!”
선원들은 다 같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러나 윤아만은 팔짱을 낀 채 서늘한 눈으로 형준을 노려보고 있었다.
“이 미친놈아, 배가 네 장난감이냐?! 또 한 번 이딴 짓 하면 네 목을 꺾어버릴 거야!!”

뒤쪽에선 성곤과 규만이 난간에 매달려 토사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으웩... 내 위장 다 뒤집어졌어...”


“이럴 거면 차라리 바다에 빠지겠어...”


형준은 씩 웃으며 소리쳤다.
“에이~ 이게 다 추억이 되는 거야! 죽을 고비를 넘기면 의리도 깊어지고 말이지!”


성곤과 규만은 동시에 소리쳤다.
“이딴 추억 필요 없어!!!”


며칠을 그렇게 광기 어린 항해로 날렸지만, 결과는 허망했다.
“젠장, 아무리 뒤져도 안 보인다...” 형준이 이를 갈았다.


윤아는 지도 위에 손가락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정보에 따르면 스페인 본국으로 간 건 아니야. 대신, 주요 거점 중 하나에 정박시켰다더군. 게다가...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군대 식당 겸 동맹 거점으로 개조했대.”

순간, 성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뭐라고? 내... 내 카페가 군대 식당? 게다가 영국·스페인 동맹의 거점이라고?!”


규만은 괜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다 기름을 부었다.
“뭐... 그래도 손님은 많네. 잘 되는 장사 아냐?”

성곤은 주먹을 불끈 쥐고 외쳤다.
“손님이 아니라 적이라고 이 자식아!!!”


그날 밤, 형준은 블랙 코메트를 조용히 몰아 겨우 찾은 오션 뷰 카페 근처로 다가갔다.
달빛에 비친 카페의 모습은 낯설고도 쓰라렸다.

성곤이 땀 흘려 새긴 간판은 영국과 스페인 국기로 덮여 있었고,
정성껏 조각한 뱃머리 장식은 방치돼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카페 안에서는 군복 차림의 병사들이 줄을 서서 배식을 받고 있었다.

“초콜릿 드링크 하나 더!”
“홍차도 추가!”
“내일 작전 회의는 2층에서!”

성곤은 망원경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안쪽에선 강신혁과 정한별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신혁은 홍차를, 한별은 커피를 홀짝이며 작전 지도를 펴고 있었다.
“좋군. 이 카페라면 해적 놈들을 유인하기에도 딱이지.”
“맞아. 이제 이곳이 영국과 스페인 해군 동맹의 새로운 심장이다.”


성곤은 주저앉아 고개를 감쌌다.
“내가 이 손으로 만든 건데... 놈들이 더럽히고 있어...”

규만은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아직 끝난 거 아냐. 언젠가 되찾자. 너랑 나, 다시 만들면 되지 않겠어?”

그때 형준이 뻔뻔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뭐... 예전처럼 사람 많은 건 안 변했네.”

윤아가 형준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위로야?! 죽고 싶냐?!”
형준은 머리를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고, 성곤은 울분을 터뜨리며 외쳤다.
“저건 내 카페야!! 내가 반드시 되찾는다!”

달빛 아래, 세 사람의 결의가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이전 06화불꽃과 피의 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