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여드는 그림자들

해적회의인가, 술판인가

by 동룡

쉽렉 섬으로 돌아가던 블랙 코메트와 크림슨 크로우.
수평선에 기괴하게 부서진 배 한 척이 눈에 들어왔다. 돛대는 반쯤 부러져 있고, 돛에는 화약 자국이 잔뜩 남아 있었다.

형준은 주저 없이 명령했다.
“저기 생존자가 있으면 구출한다. 보트 내려!”

곧 구조된 한 사내는 피투성이의 몰골로 바다 위에 끌려왔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이탈리아에서 결성된 올리브 해적단이오... 일주일 전, 영국과 스페인 연합에게 기습을 받았소...”

윤아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봐, 이래서 모아야 해. 흩어져선 한 줌 모래야. 이 사람들까지 끌어안고, 하나로 뭉쳐야 한다고!”
형준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쉽렉 섬에 도착하자마자 우덕은 곧장 광장으로 가서 다른 해적단에 소리쳤다.
“영국이랑 스페인 놈들이 손을 잡았다고! 너희가 좋아하는 약탈지도, 보물이 전부 저놈들 손에 들어간다고!”

한편 형준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오함마 해적단의 선박을 찾았다.
문을 박차고 나온 해머 선장은 팔짱을 낀 채 묻는다.
“… 네가 내가 필요하단 말이냐?”

형준은 주저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영국과 스페인 연합을 박살 낸 영웅으로 발할라에 가고 싶지 않아? 너희들, 모두 바이킹 피를 이어받은 자들이잖아?
싸움을 피하는 겁쟁이들이 아냐. 맞지?”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해머가 망치를 번쩍 들자 오함마 해적단 전원이 망치와 도끼를 높이 쳐들고 포효했다.
“우우우우우!!!”
바이킹 전사의 포효가 쉽렉 섬을 울렸다.


그렇게 어렵게 모인 해적 회의.
성곤은 기대 어린 눈빛으로 참석자들을 세어보았다.
“이제 꽤 모였겠지?”

하지만...
계산해 보니 불과 여섯 해적 단 뿐이었다.
블랙 코메트, 크림슨 크로우, 오함마 해적단, 그리고 새로 합류한 소수의 올리브 해적단. 여기에 몇몇 소규모 세력이 더해져도 고작 여섯.

윤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 영국·스페인 동맹이 최소 50척이야. 우리? 고작 여섯. 숫자로만 보면... 바람 앞의 촛불이야.”

성곤은 입술을 깨물었고, 형준은 묘하게 웃으며 말했다.
“촛불이면 어때. 불만 안 꺼지면 밤바다에서 제일 잘 보이는 거지.”

오함마 해적단은 회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술판을 벌였다. 고기를 뜯으며 술잔을 연거푸 비우는 모습은 마치 전쟁 전 의식 같았다.

“정면으로 붙어서 다 때려 부수면 끝이지! 우린 바이킹이다!”
해머 선장이 망치를 높이 들자, 우덕은 잔을 부딪치며 호응했다.

“좋다! 선장님, 당신은 내 형제야! 박살 내버리자고!”

두 사람은 어깨동무를 하고 껄껄 웃었고, 아린과 카리나는 이 둘을 뜯어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구석에 앉은 올리브 해적단 생존자 셋은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저희도… 발언권이 있습니까?”

형준은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발언권? 다 합쳐서 세 명인데 무슨 해적단이냐. 오늘부터 너희는 올 블랙 해적단 2군이야.”


셋은 허탈하게 서로를 쳐다봤다. 성곤은 분노에 치를 떨며 책상을 내리쳤다.
“야! 내 카페 간판에 놈들의 국기가 걸려 있다고! 이게 지금 술판 벌일 상황이냐!”

규만도 거들었다.
“맞아! 최소한 전략이라도 세워야지!!”

그러나 술에 취한 오함마 해적단 선원들이 일제히 소리쳤다.
“전략은 무슨, 술이나 따라라!”

성곤과 규만의 목소리는 그대로 묻혀버렸다.

윤아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아직 다 모인 게 아니야! 세 개 이상의 해적단이 모이면 반드시 티그 집행관 허락이 필요해!”

그때 섬 입구가 요란하게 흔들리며 새로운 세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먼저 나타난 건 초승달 해적단. 흰 두건을 두른 사내들이 곡선의 시미타르를 두드리며 입장했다. 선두에 선 선장은 낮게 웃었다.
“우린 바람을 타고 사막을 건너온 자들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노예와 향신료뿐이지.”

뒤이어 검은 파도 해적단이 등장했다. 화승총과 일본식 칼을 멘 왜구들이 고함을 지르며 들어왔다.
“우오오! 소레 소레!”

형준은 눈을 반짝이며 다가가 물었다.
“야, 너희 동네에 전설의 제독 있지 않았냐? 열두 척으로 몇 배의 적을 막아낸 사람!! 와... 진짜 멋지던데? 이름이 뭐였지? 이순... 뭐더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왜구 선원들이 벌떡 일어나 칼집을 잡았다.
“쿠소오오!! 이순신!!! 그 이름 함부로 입에 담지 마라! 그놈 때문에 우리 조상들이 바다에 처박혔다고!”


형준은 당황해 두 손을 흔들었다.
“아, 아냐 아냐! 난 그냥 전설 얘기를 들은 거지! 진짜 대단하다 싶어서!”

옆에서 우덕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야, 형준아! 너 일부러 저놈들 화내게 하려고 그러냐? 크하하하!”

형준은 땀을 삐질 흘리며 괜히 입술을 삐죽였다.
“아니, 지난 일인데 왜 화를 내는 거야...”

마지막으로 갈레온 해적단이 군대 구령에 맞춰 행진하며 들어왔다. 땅이 울릴 정도로 일사불란한 발걸음, 그들의 선장은 여전히 군대 말투를 버리지 못했다.

잠시 후, 티그 집행관이 망토를 휘날리며 나타났다.
“좋다. 이제 회의를 허락한다.”

윤아가 앞으로 나서며 힘주어 말했다.
“좋습니다, 이제 필요한 건 전략입니다”


그러나 불과 3분도 안 되어 회의장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우덕은 초승달 해적단 선장과 어깨동무를 하며 웃었다.
“네가 노예를 가져오면 내가 술과 총알로 바꿔주지! 거래 끝났다!!”
초승달 선장은 금니를 드러내며 낄낄댔다.

형준은 검은 파도 해적단에게 둘러싸여 억울하게 변명하고 있었다.
“아, 내가 욕한 게 아니라니까! 난 그냥 제독 얘기를”
왜구들은 여전히 칼을 잡고 씩씩거렸다.
“그놈 이름 두 번 다시 꺼내지 마라! 우리 피가 끓는다고!”

한편 해머 선장은 갈레온 해적단에게 바이킹 신화를 늘어놓고 있었다.
“오딘이 번개를 내려쳤다! 그때 피의 강이 흐르고”


갈레온 해적단은 어린애처럼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 더 얘기해 줘요!”

성곤은 머리를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이게 회의냐?! 그냥 술집 잡담이지!”


규만은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쉬었다.
“ 술만 마시면 전부 친구가 되는 건가...”

결국 윤아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아니!!! 이건 해적회의가 아니라 그냥 친목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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