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의 전조
오션 뷰 카페.
영국의 강신혁과 스페인의 정한별은 고급스러운 의자에 나란히 앉아 서로 자기 자랑만 늘어놓고 있었다.
“내 리갈 저스티스 호가 정밀 포격만 제대로 쏜다면,” 신혁이 콧잔등을 치켜올리며 말했다.
“블랙 코메트 따위 한 방에 바다 밑으로 보내버리지.”
한별도 지지 않고 잔을 높이 들었다.
“크림슨 크로우? 하! 그놈들 포격이 화끈하긴 하더군. 하지만 내 엘 디아블로 호가 당당히 맞서 싸웠지. 우린 정면 승부에 강하다!”
두 장교의 목소리는 카페 천장을 울리며 점점 더 커졌다. 그러나 병사들의 얼굴에는 미묘한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영국군 병사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중얼거렸다.
“연막 속에서 바다를 미끄러지던 블랙 코메트... 아직도 악몽에 나온단 말이야.”
스페인 병사 역시 얼굴이 창백했다.
“크림슨 크로우의 트리플 캐논... 귀에서 포성이 맴돌아. 등골이 오싹해 죽겠어.”
그러나 그들의 두려움은 위의 장교들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
해적 쪽이 고작 6척밖에 모이지 못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신혁과 한별은 서로의 잔을 부딪치며 폭소를 터뜨렸다.
“50 대 6이 가능하냐고? 크하하하! 이건 싸움이 아니라 학살이지!” 신혁은 테이블을 치며 웃다가 초콜릿 드링크를 와르르 쏟아버렸다.
“멍청한 해적 놈들!” 한별은 박장대소하며 바닥을 구르다시피 웃었다. “역시 머리보단 칼만 믿는 족속들이지!”
하지만, 그들의 밑에 앉은 부관들의 표정은 더 굳어졌다. 결국 영국군 부관이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냈다.
“블랙 코메트와 크림슨 크로우가 함께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블랙 코메트가 연막을 치고, 그 속에서 크림슨 크로우가 자유롭게 포를 쏜다면... 우리 함대도 힘들어질 겁니다!”
스페인 부관도 재빨리 거들었다.
“조만간 바람이 강해지고 바다에 회오리가 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배 조종이 힘들어지고, 같은 편 배끼리 박치기도 나올 겁니다. 정확한 조준은 어려워지고 자칫 아군끼리 서로 포를 쏴 맞추는 최악의 상황도 벌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블랙 코메트는... 그 회오리 치는 바닷속을 빙빙 돌며 즐기는 놈이라고 합니다!”
순간, 신혁과 한별은 동시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재수 없는 소리를 하다니!”
“입 다물지 못해?!”
두 장교의 목소리가 카페를 울렸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영국과 스페인의 명령이 완벽히 하나로 통일되었다.
“저놈들을 당장 일반 병사로 강등시켜라!!!”
옳은 말을 하던 부관들이 그 자리에서 강등되자, 카페 안의 병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영국군 병사 하나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신혁 제독님... 블랙 코메트랑 싸워서 한 판도 못 이겼다잖아. 그걸 입으로는 한방에 침몰시킨다니 웃기지도 않아.”
스페인 병사도 곧장 맞장구쳤다.
“크림슨 크로우 이야기 들었어? 새 대포를 개발했다지? 포탄이 하늘에서 비처럼 쏟아진다는데 그거 한 방이면 우리 배는 산산조각 날 거야.”
숨죽인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번져갔다.
“합류한 해적단들이 초승달, 오함마, 검은 파도, 갈레온 해적단이라지?”
“젠장... 다 듣기만 해도 소름 돋는 놈들이잖아.”
스페인 쪽 병사가 목소리를 떨며 말했다.
“갈레온 해적단은 원래 우리 해군 출신들이야. 분명 우리 전술을 다 알고 있을 거야...”
영국군 병사가 이를 갈았다.
“오함마는 바이킹 출신 놈들이라며? 도끼랑 망치 들고 미친 듯이 덤비면 답 없다고 하더라.”
또 다른 병사가 끼어들었다.
“검은 파도 놈들은 더 잔인하대. 칼싸움에 잡히면 산 채로 갈가리 찢겨죽는데.”
숨을 삼킨 병사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초승달 해적단. 그놈들은 포로를 전부 노예로 팔아버린대. 차라리 그냥 죽는 게 낫다더라...”
공포가 카페 안을 휘감자, 결국 불만까지 터져 나왔다.
“능력도 없는 두 제독들 때문에 다 죽게 생겼네”
“도대체 어떻게 제독 자리까지 올라간 거지? 영국이나 스페인이나 똑같군.”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것은 두 나라 해군의 위용이 아니라, 해적 연합에 맞서다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