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 위에 태어난 세 가지 전술
회의장은 여전히 시끄러운 수다로 가득했다. 술잔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그리고 각 해적단들이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통에 도저히 전략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때, 윤아의 뒤에서 누군가 두 손으로 그녀의 눈을 가렸다.
“누구게요?”
익숙한 목소리에 윤아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너도 선장 닮아가냐? 지금 장난칠 때야? 다들 정말 미쳤어!”
그러자 형준이 번뜩이는 눈빛으로 다가와 유나에게 속삭였다.
“야, 한번 더 해봐. 이번엔 제대로.”
유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윤아의 눈을 가렸다. 그 순간 형준은 재빠르게 몸을 숙여 윤아의 볼에 입을 맞췄다.
“뽀뽀 성공~!”
유나와 아스카는 동시에 “대박!” 하고 손뼉을 치며 깔깔 웃었다.
윤아는 얼굴이 새빨개지더니 그대로 형준의 등을 있는 힘껏 내려쳤다.
“선장답게 행동하라고 했지!!! 이런 유치한 짓 내가 제일 싫어해, 진짜!!!”
형준은 등을 부여잡으면서도 아픈 기색은커녕 활짝 웃으며 소리쳤다.
“좋아, 작전이 생각났어! 다들 잘 들어봐!!”
순식간에 모든 시선이 형준에게 쏠렸다. 그는 곧장 유나를 향해 물었다.
“유나! 너 저격수잖아. 암살할 때 가장 중요한 게 뭐지?”
유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일단 안 걸리고 쏘는 거. 어디서 날아왔는지 모르면 얻어맞은 놈이 정신을 못 차려. 그래야 도망도 쉽고.”
형준은 손뼉을 치며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거야! 50대 6으로 머릿수에서 우리가 불리한 건 사실이지. 하지만 안 보이는 곳에서 때리고, 유리한 곳에서 싸우면 승산이 있어! 조선의 그… 이순신 제독처럼!!”
순간 검은 파도 해적단의 선원들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또 그 이름을 입에 올려?! 그놈이 우리 조상들을 바다에 처박았다고!!!”
형준은 손을 휘저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시끄러워! 지금 중요한 건 원한풀이가 아니라 전쟁 준비라고!!”
이어서 우덕이 잔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맞다. 검은 파도, 그리고 오함마. 너희 배들은 빠른 게 장점이지. 나랑 초승달, 갈레온 해적선은 화력이 강하고. 이 조합을 제대로 살리면… 머릿수 차이를 충분히 뒤집을 수 있어!”
술판 같던 회의장이 처음으로 조금 진지해졌다. 각 해적단 선장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고, 공기 속에는 처음으로 전쟁의 냄새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형준은 규만을 옆으로 불러 세웠다.
“규만아, 각 해적단 배들 한 번씩 좀 봐줘. 뭐가 가능한지 알아야지.”
규만이 고개를 끄덕이자 형준은 손뼉을 치며 말했다.
“좋아. 이제 선장들만 잠깐 따로 보자고.”
그는 술판에서 벗어나 선장들만 따로 모았다.
한편 성곤은 멍하니 잔을 굴리다가, 곁에 있던 카리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우리가 유리하게 싸운다라… 솔직히 뭐가 유리한 건데?”
카리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형준 선장 말대로 안 보이는 곳에서 치고 빠지는 거… 아니면 좁고 파도가 빠른 곳으로 유인하는 거요. 거기선 큰 군함들이 불리하거든요. 또 하나는 칼싸움. 적어도 검 하나 쥔 솜씨는 해군 놈들보다 우리가 훨씬 낫잖아요.”
성곤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잔을 내려놨다.
“… 뭘 하든 내 카페만 찾으면 좋겠다.”
형준은 모인 선장들을 둘러보며 크게 외쳤다.
“좋아, 지금부터 세 가지 작전이 있다! 잘 들어라!”
모두 고개를 끄덕이자 형준이 손가락을 펴며 설명을 이어갔다.
“첫째, 빠른 배가 앞에서 연막을 치고, 뒤에선 화력 강한 배들이 대포를 쏜다. 둘째, 바다 회오리가 치는 곳으로 놈들을 유인해서 우리에게 유리한 전장을 만든다. 셋째...”
형준은 말을 잠시 멈추고 입술을 삐죽였다.
“셋째는 카페 안에서 칼싸움으로 붙는 거다. 해군 놈들은 칼을 제대로 쓸 줄도 모르니까 우리가 이긴다.”
그 말에 우덕이 깔깔 웃으며 물었다.
“야, 근데 성곤이 알면 난리 나지 않겠냐?”
형준은 곧장 손사래를 치며 신신당부했다.
“그렇지! 이건 성곤이 절대 몰라야 해! 카페가 박살 나는 건 불 보듯 뻔하거든!”
선장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다 결국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규만이 돌아와 보고했다.
“검은 파도랑 오함마 해적단 배에도 연막 장치 설치할 공간이 있어. 조금만 손보면 가능해.”
형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좋아! 그럼 작전 회의 끝! 이제 진짜 맘 편히 마시고 떠들자!”
순간, 술잔이 다시 부딪히고, 고기 뼈가 공중으로 날아다니며 회의장은 다시 친목 모드로 돌아갔다. 그러나 선장들의 눈빛은 방금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