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에 취한 바다, 군기에 깨어나다

숙취로 뒤엉킨 여섯 척의 혼돈

by 동룡

아침 햇살이 해변을 비추자, 해적들은 여기저기 뻗어 있었다. 모래사장에 엎드려 코를 고는 놈, 해먹에서 떨어져 모래를 베개 삼은 놈, 심지어 바닷물에 발 담근 채 버둥거리는 놈까지. 모두 술에 절어 반쯤 죽은 모습이었다.

그때 시원한 냄새가 퍼졌다. 긱스가 커다란 가마솥을 앞에 두고 땀을 뻘뻘 흘리며 국자를 휘젓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히 해물탕이다! 속풀이엔 이게 최고지!! 신선한 조개랑 새우, 거기에 해초까지 듬뿍!”

펄펄 끓는 해물탕 냄새에 몇몇 해적들이 눈을 꿈틀거리며 뜨더니,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으으... 냄새는 좋은데... 머리가 터질 것 같아...”

바로 그때였다.
윤아가 해변으로 걸어 나왔다. 눈은 시뻘게져 있고 손에는 버섯처럼 큰 국자를 들고 있었다.


“다들 일어나!”

“싫어... 5분만 더...”

다들 다시 코를 골자, 윤아는 그대로 해물탕 냄비를 발로 차며 소리친다. 국물이 철렁거리며 넘칠 뻔했다.

“일어나지 않으면 이 해물탕에 모래를 퍼부어버린다!!”

그 말에 모래사장에 뻗어 있던 해적들이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안 돼!!! 해물탕만은!!”

순식간에 수십 명의 해적들이 좀비처럼 벌떡 일어나 모래를 털어내고 줄을 섰다.

우덕은 톱을 들고 나무를 켜며 형준에게 중얼거렸다.
“야... 너네 항해사는 항해사가 아니라 그냥 선장 같아. 아니, 선장보다 더 무섭다.”


형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피식 웃었다.
“맞아…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가끔 아니라, 자주.”

옆에서 초승달 해적단 선장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자는 선장 그 이상이야. 내가 보기에 최초의 해적왕까지 노려볼 만하지.”

형준은 괜히 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한참 뒤, 규만이 땀을 잔뜩 흘리며 손을 번쩍 들었다.
“드디어 준비 완료!! 이제 배는 완벽하다!!”

성곤이 환호하며 냄비 쪽으로 달려갔다.
“좋아! 이제 밥 먹자!!!”

하지만 그 순간 윤아의 목소리가 번개처럼 해변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밥은 아직이야.”

모두의 표정이 굳었다.

윤아는 팔짱을 낀 채, 냄비 옆에 쌓인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배가 준비된 건 당연하고 문제는 여섯 척이 같이 움직여야 한다는 거야. 합동 훈련 없인 전투에서 다 죽어!”

그리고 그 모래를 해물탕 위로 턱 하고 흔들며 던질 듯 위협했다.
“그러니까, 지금 당장 전원 배에 탑승! 작전 훈련 시작!! 안 그러면 이 해물탕에 모래를 듬뿍 퍼넣어버릴 거야!!!”

“으아아악!!”
해적단들은 모래가 냄비에 떨어지기 전에 비명을 지르며 우르르 달려갔다.

심지어 오함마 해적단까지 도끼를 팽개치고 제일 먼저 뛰어오르며 외쳤다.
“빨리 타라! 해물탕을 지켜야 한다!!”

아론만 끝까지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선장의 명령 없이는 승선할 수 없다... 그건 규율이야...”


윤아가 모래를 한 움큼 더 집어 들자, 아론은 그대로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선장 명령이요? 지금 이 순간 진짜 선장은 누나입니다!! 전원 탑승!!!”

결국 여섯 해적단은 무서운 항해사의 명령 아래, 합동 훈련을 위해 바다로 나아갔다.


합동 훈련은 시작부터 재앙이었다.

빠른 배들은 연막 속에서 서로 위치를 못 잡고 정면충돌 직전까지 갔다가 간신히 피했고, 큰 배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다가 뒤에서 들이받을 뻔했다. 난간에 매달린 선원들은 술을 토해내느라 정신이 없고, 깃발 신호는 엉망이라 “전진” 깃발을 보고 반대쪽 배들이 “후퇴”로 착각해 뒤로 물러나버리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야! 네가 신호 늦게 줘서 이 꼴 난 거잖아!”
“웃기지 마! 연막을 제멋대로 친 건 너희라고!!”
검은 파도 해적단과 초승달 해적단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려 했다.

오함마 해적단은 도끼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이럴 땐 그냥 정면으로 들이받아야지! 그게 바이킹 방식이다!”
“돌았냐! 훈련인데 부딪히면 배가 다 박살 난다고!!” 갈레온 해적단이 반박했다.


심지어 형준은 지 혼자 신나 있었다.
“좋아! 이쪽으로 바람 타고~!!”
블랙 코메트를 조종해 바다 위에서 마치 드리프트 하듯 배를 빙빙 돌리자, 다른 해적단들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야! 이 미친놈아! 우리까지 꼬이잖아 너 때문에!!!”

결국 훈련은 욕설과 비명만 오가며 산산조각이 났다. 성곤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절규했다.
“아니, 이게 훈련이야? 그냥 난장판이야?!!!”


결국 여섯 척 모두 정박하고 내려오려는 순간
윤아의 고함이 번개처럼 쏟아졌다.

“누가 내리래!!! 연막은 일자로 쫙 깔아서 다 같이 안 보여야 하고!! 큰 배랑 빠른 배 간격도 엉망이야!! 빠른 배들끼리는 박치기 안 한 게 기적일 정도라고!! 이래서 전쟁을 이길 수 있겠냐고?!!!”

모두가 눈을 피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때 형준이 태연하게 배에서 내려오며 두 손을 벌렸다.
“에이~ 다들 해장 좀 하고 술도 좀 깨고 그다음에 다시 훈련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공주님~”

“공주님”이라는 말에 해적단 전원이 “오오오~!!” 하고 환호성을 질렀다.
윤아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

“좋아. 다들 밥은 먹어. 대신!!! 지금부터 전쟁 끝날 때까지 금주야!!”

“에에에 에?!!!” 해적단 전체가 울부짖었다.


윤아는 팔짱을 낀 채 단호하게 말했다.
“카리나! 아린! 유나! 아스카! 네 명은 술 감시조야. 술통 싹 다 뺏고, 누가 술 퍼먹는지 눈에 불 켜고 지켜봐!”

해머가 불만을 터뜨렸다.
“술은 전사의 투지를 위해 꼭 필요하다! 전쟁 전에 술 없인...”

“어제처럼 술 퍼먹고 자다 공격당하면 다 죽는 거 몰라?”
윤아의 팩트폭격에 해머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해적들은 숙연히 줄을 서서 긱스가 퍼주는 해물탕을 받아갔다. 시원한 해물탕 국물을 삼키며 잠시 정적이 흐르자, 윤아와 카리나는 흐뭇하게 미소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진지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형준이 해물탕을 든 윤아 옆으로 다가와 슬쩍 그녀의 볼을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 항해사님~ 이렇게 화내는 것도 귀엽네?”


“으아아아악!!!”
윤아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옆에 있던 긱스의 주방 칼을 낚아채 들었다.

“죽는다, 안형준!!!”

형준은 그릇을 내던지고 전속력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해변에 울려 퍼진 건 해적들의 폭소와 윤아의 분노 섞인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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