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초등학교] 132화 속마음은 칼날이었다

말은 독이 되었고, 웃음은 사라졌다

by 동룡

계곡 옆 바비큐 파티. 고기가 지글지글 익어갔지만,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아까 나래가 계곡에 빠졌다가 형준에게 구출된 일은 아이들 마음속에 여전히 생생했다. 서로 웃는 척했지만 속은 곪아 있었다.

태연이 갑자기 두 손을 번쩍 들며 외쳤다.


“얘들아! 이대로는 안 돼. 우리 빨리 속마음 롤링페이퍼 하자. 하고 싶은 말 다 적고 풀자.”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나래와 수빈은 보이지 않았다. 울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간 뒤였다. 정연이 벌떡 일어나 “내가 데려올게”라고 했지만 민지가 막았다.


“아냐. 네가 가면 더 싸움만 커져. 나랑 지수가 가는 게 맞아.”


민지와 지수는 계곡 바위 뒤로 향했다. 거기서 수빈과 나래가 서로를 꼭 잡고 웅크려 있었다. 수빈의 눈은 빨갰고, 나래는 울음이 목에 걸려 아무 말도 못 했다. 민지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안 오면 더 욕먹어. 네 얘기는 네가 해야지. 남들이 대신 정하게 둘 거야?”
지수도 무릎을 꿇고 조곤조곤 덧붙였다.


“맞아. 억울해도 말 안 하면 끝이야. 직접 네 말로 해야 해.”
수빈이 나래 손을 세게 잡았다. “계속 도망만 다니면 아무것도 안 바뀌어. 같이 가자.” 결국 나래는 울음을 닦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자 종이가 돌기 시작했다. 지수가 먼저 적었다.


“싸우고 화내도 결국은 친구다. 중요한 건 끝까지 끊기지 않는 거다.”
태연이 이어받아 적었다.


“우린 다 달라서 시끄럽지만, 그래서 더 배운다. 방학 끝나도 꼭 같은 반이었으면 좋겠다.”
성곤은 눈을 감았다가 한 줄을 남겼다.


“오늘의 말은 독처럼 들려도, 언젠간 약이 된다.”


잠시 공기가 풀리는 듯했지만, 곧 형준이 펜을 들자 분위기가 급격히 바뀌었다.


“나래를 구한 건 내 선택이 아니다. 정연이가 시켜서 억지로 들어갔다. 그런데 돌아온 건 욕과 협박. 고맙단 말은커녕, 나래 엄마한테 ‘죽일 놈’ 소리까지 들었다. 그런 소리 들을 거면, 그냥 물에 가라앉게 두는 게 맞았다.”

우덕도 곧바로 글을 남겼다.
“나래 엄마는 원래부터 문제다. 교무실에서 난리 쳤던 거 다 기억나지? 자식 문제는 부모부터 반성해야지, 남 탓만 하니까 애도 똑같아진 거다. 우리 반이 욕먹는 건 전부 그 집 탓이다.”

규만은 글씨를 꾹꾹 눌러썼다.
“나래는 반 분위기만 망친다. 또 시끄럽게 만들 거 뻔하다. 학교가 아니라 병원에 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예린도 차갑게 덧붙였다.
“이번 사건은 나래 엄마가 우리를 ‘범죄자 모임’ 취급했을 때부터 끝났다. 고맙단 말은커녕 협박부터 했잖아. 그런 부모 밑에서 컸으니 나래가 이런 거지.”


네 장의 글은 칼날처럼 나래와 그녀의 엄마를 겨눴다. 아이들 얼굴은 굳어갔다.

민지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이건 그냥 욕이야! 잘못을 말하는 거랑 사람을 짓밟는 건 다르다고!”


수빈이 펜을 낚아채며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나는 나래 편이다. 잘못이 있더라도 이렇게까지 몰아세우는 게 더 잘못이다. 나래 힘들었던 거 다 알면서 모른 척했잖아. 지금 와서 은인 코스프레? 역겹다.”

나래는 눈물을 훔치며 적었다.


“맞아. 너희는 처음부터 나만 나쁘다 했어. 근데 다 똑같아. 때리고 욕하고 비웃은 애들, 다 기억해. 언젠간 누가 진짜 나쁜 애인지 드러날 거야. 이번엔 안 물러나.”

신혁이 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누가 옳은지 모르겠다. 근데 한쪽만 몰아붙이는 것도, 끝까지 억울하다 하는 것도... 둘 다 별로야. 솔직히 지금 이건 속마음이 아니라 그냥 싸움이지.”


그 순간까지 조용히 있던 정연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정연은 형준을 향해 말했다.


“넌 맨날 용감한 척하지만, 결국 내가 등을 떠밀어야 움직여. 그렇게 해놓고 ‘차라리 가라앉게 둘 걸’ 같은 말은 하지 마. 네가 한 일을 네 입으로 욕처럼 만드는 건 비겁한 거야.”

그녀는 우덕을 향했다.
“너는 머리 굴리는 건 빠른데, 정작 책임질 땐 항상 뒤로 숨지. 사업 얘기만 잘하지, 막상 중요한 순간엔 안 나서잖아.”

규만에게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는 민지한테만 잘 보이려고 해. 그 외엔 다 비웃고 욕만 하지. 그런데 네가 그렇게 웃으면서 욕할 때마다, 사실 제일 불안해 보여. 누굴 무너뜨리기 전에 네가 먼저 무너지지나 마.”

예린에게도 단호하게 말했다.
“넌 똑똑하지. 근데 그 똑똑함을 남 상처 주는 데만 써. 한 번이라도 옆에 있는 애들 도와준 적 있어? 정의로운 척하지만, 넌 그냥 차갑기만 해.”


마지막으로 나래를 바라봤다.
“너도 억울한 거 말할 수 있어. 근데 ‘너희 다 나빠’라는 말만 하면 아무도 안 들어. 피해자 자리만 붙잡고 있으면 네 말은 진심으로 안 믿겨. 네 얘기는 네 말로, 솔직하게 해.”

정연은 모두를 둘러보며 마지막으로 던졌다.
“다 똑같아. 다 잘못했어. 큰소리만 치지, 정작 자기 속은 안 보여주잖아. 이게 우리가 원하는 반이야? 매일 싸우고 끝내고 싶어?”

정연이 앉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불판 위에서 고기가 지글거리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렸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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