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의 끝, 새로운 시작

새로운 대화의 장, 그러나 해답은 아직 멀었다

by 동룡

잠시 적막이 흘렀다.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가운데, 수빈이 조용히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된 거... 다들 더 솔직하게 말해보자. 정연이 말처럼 매일 싸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나래를 병원에 입원하게 만든 게 너희 넷이라고 생각해. 누군가는 아이디어를 내고, 누군가는 준비를 돕고, 누군가는 실행에 옮겼겠지. 안 그래?”

순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덕이 코웃음을 치며 손을 털었다.
“증거는? 우리가 그랬단 증거 있어? 말은 아무나 하지.”

수빈이 눈을 번뜩이며 반박했다.
“그럼 너희가 아니라는 증거는 있어? 그동안 나래를 그렇게 막 대해온 건 너희뿐이잖아.”


예린이 어깨를 으쓱이며 차갑게 웃었다.
“의심받는 게 우리니까 우리가 피해자지? 왜 없는 일을 우리가 없는 증거까지 찾아서 설명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지.”

민지와 지수는 이미 얼굴에 피로가 가득했다. 더 이상 이 상황을 풀 수 없다는 듯, 포기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자 형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우리가 그랬다고 치자. 그렇다면 쟤를 더더욱 구할 이유가 없었지. 시간 내서 작전까지 짜서 사라지길 바라는 애가 알아서 빠져 죽게 생겼는데, 잘됐다 하고 내버려 두었겠지.”

나래는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내버려두려다가 정연이가 시켜서 한 거잖아!!”

형준은 입꼬리를 비틀며 경멸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
“그래. 근데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정연이가 알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걸? 내가 왜 너 같은 하찮은 존재 때문에 보물 같은 정연이한테 평생 미움받을 행동을 해야 돼? 계속 말하지만 정연이는 내 인생의 보석이고, 넌 내 발톱 때만도 못한 존재야. 알아들어?”


정연이 급히 형준의 팔을 붙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만해, 제발 그만해... 더 말하면 안 돼.”

그 순간, 성곤이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아이고... 큰일 났네.”

모두가 성곤이 바라보는 쪽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어른들이 서 있었다. 정연의 어머니, 나래의 어머니까지 모두. 충격과 혼란이 뒤섞인 얼굴이었다.

아이들은 숨조차 쉬지 못한 채 얼어붙었다.

나래의 어머니는 눈물이 고인 얼굴로 아이들을 바라봤다.


“우리 나래가... 왜 그렇게 밉고 싫으니? 아줌마가 오해하고 그런 건 정말 미안해. 하지만 그렇다고 친구한테 그렇게 심한 말까지, 비교까지 하면서 해야 하니?”

순간 모두가 고개를 숙였지만, 규만이 뒤통수를 긁으며 중얼거렸다.
“뭐 민지가 최고지만... 사실 외모로만 봐도 정연이가 보석이고, 나래는 때만도 못한 건 사실이지...”

민지가 눈을 치켜뜨며 규만의 옆구리를 세게 찔렀다. 규만은 헛기침을 하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성곤은 그 광경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그동안 학교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어른들에게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래의 어머니는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수빈아... 네가 나래의 친구가 되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하지만 예린이 차갑게 끼어들었다.
“다 들으셨잖아요.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가 없어요.”

형준도 곧바로 말을 보탰다.
“저는 사실... 이나래보다 최수빈이 더 싫어요. 정연이랑 있었던 안 좋은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고요.”

분위기가 다시 얼어붙는 순간, 정연의 어머니가 나섰다.
“그래서 헤어졌니? 내가 보기엔 둘이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 같은데? 형준아, 너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는 말 들어봤니?”

형준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비 오면 땅 젖고 진흙탕 되잖아요?”

아이들 사이에서 피식 웃음이 터졌다. 긴장이 잠시 풀렸다. 태연이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그 말은, 고생을 하면 더 튼튼해진단 뜻이야! 너랑 정연이는 힘든 걸 같이 버티면서 더 단단해졌다는 거라고. 제발 책 좀 봐라, 책 좀!”


형준은 멋쩍게 웃더니 태연의 팔뚝을 쓱 꼬집었다.
“나 매일 슬램덩크 보거든!”
태연은 “만화책 말고!!”라고 말하며 형준의 등을 후려쳤다.

정연의 어머니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고 빙그레 웃더니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좋아할 수도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미워할 이유도 없지 않겠니? 우리 정연이 남자친구가 그렇게 속이 좁은 사람은 아니겠지?”

형준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이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정연의 어머니가 그 침묵을 깨며 말을 이었다.
“물놀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있네. 다들 원하는 사람과 짝을 지어서 속마음을 솔직하게 말해 보자. 상처 주지 말고, 하지만 진심으로. 우리 어른들이 곁에서 도와줄게.”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고개를 돌렸다. 새로운 국면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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