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오갔지만,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원하는 사람과 짝을 지어 보라는 말이 떨어지자, 아이들은 서둘러 자신이 가장 편한 친구 곁으로 모였다.
형준은 망설임 없이 정연 옆에 붙었고, 규만은 민지 옆에 앉아 눈치를 살폈다. 우덕과 예린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결국 나란히 앉았고, 나래는 곧장 수빈의 손을 잡았다. 지수와 태연, 성곤은 당연하다는 듯 함께 모여 앉았다.
그 모습을 보던 나래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지... 그냥 친한 애들끼리 모인 건데”
그러자 정연의 어머니가 나서며 말했다.
“일단 내버려두어 보죠. 제일 먼저 하고 싶은 말을 나눌 상대를 고른 것 같으니까요. 그다음에 우리가 나서서 짝을 바꿔주면 되겠죠.”
형준은 정연을 힐끗 보며 물었다.
“화났어?”
정연은 얼굴을 돌리며 작게 대답했다.
“화났고, 당황스럽고, 정신없고...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겠어. 제발, 남한테 상처 주는 말 좀 그만해.”
형준은 고개를 긁적이며 투덜댔다.
“나도 솔직히 노력하는데 저것들 얼굴만 보면 진짜 슬램덩크를 날려버리고 싶단 말이야.”
정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대꾸하지 않았다.
한편, 우덕과 예린은 다른 쪽에서 대놓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저 나래랑 수빈 때문에 분위기 다 망가졌잖아.”
“맞아, 괜히 놀러 와서 기분만 잡쳤지.”
나래와 수빈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서로를 꼭 잡으며 다짐했다.
“괜찮아. 우린 서로 있잖아. 앞으로도 잘 버티자.”
“응, 네 편은 내가 될게.”
다른 한편에서는 규만이 민지에게 잔소리를 한가득 듣고 있었다.
“넌 왜 그렇게 눈치가 없냐? 나래한테 한 말도 그렇고, 오늘 하루 종일 하는 짓이 다 그래.”
분위기는 대화라기보단 훈육에 가까웠고, 규만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대꾸도 못 했다.
그때, 정연의 어머니가 손뼉을 ‘짝’ 치며 일어섰다.
“좋아, 이제 다들 마음이 좀 풀렸지? 자, 이번엔 짝을 바꿔 보자!”
아이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긴장했다. 이번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형준과 나래, 그리고 우덕과 수빈.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들의 대화를 지켜봤다.
처음엔 서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러나 형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이렇게 지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고 지옥 아니냐? 난 정연이 앞에서는 늘 웃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단 말이야. 그런데 너만 보면 내가 주전자 뚜껑이 확 열려. 그냥 서로 투명인간처럼 지내면 얼마나 좋겠냐?”
나래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럼... 지금까지 나한테 했던 말들, 그 행동들, 사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형준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너는 뭐 잘했냐? 네 말과 행동 때문에 그런 소리 들은 거잖아. 그러니까 그냥 오늘부터 우린 서로 투명망토 걸쳤다고 생각하고 지내자니까? 그게 훨씬 편할 거야.”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자 수빈이 나섰다.
“너희가 한 행동들, 다 나쁘고 비겁했어.”
그러자 우덕이 비웃으며 받아쳤다.
“적어도 난 날 챙겨주고 도와준 사람한테 저주 담긴 편지를 쓰진 않아.”
수빈은 얼굴이 붉어지며 외쳤다.
“그 편지 사건도, 나래가 그렇게 심하게 맞은 것도 다 너희가 한 짓인 거 다 알아!”
우덕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꾸했다.
“그럼 증거 가져와 봐. 우리는 증거 다 있는데, 너희는 하나도 없잖아. 그냥 의심만 하고 떠드는 거 아냐?”
멀찍이서 지켜보던 예린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래도 저 정도면 생각보다 잘 넘어가는 거네.”
성곤도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끄덕였다.
“전쟁 안 터진 게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대화는 다시 날카로워졌다.
나래가 눈물을 흘리며 용기 내어 물었다.
“내가 한 행동이 그렇게까지 상처받을 일이었어? 너희는 다 같이 뭉쳐서 날 괴롭히고 상처 줬잖아. 미안하다는 말... 그게 그렇게 어려워? 넌 정연이한테는 바로 사과도 하고 달래주면서 왜 나한텐 안 돼?”
형준은 미치겠다는 얼굴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앵무새처럼 자꾸 같은 말 반복하게 할래? 나도 너 때문에 짜증 난 순간 많았다고! 그리고 너랑 정연이랑은 비교가 안 돼. 큰 차이가 있다고 몇 번 말했잖아. 좋아, 그러면 둘 다 지난 일 사과하고, 앞으론 그냥 서로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거야. 그걸로 끝내자고!”
우덕도 끼어들었다.
“지금 형준이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너희도 증거 없고, 우리도 뭐 상처 준 거 인정할게. 그럼 서로 잘못 인정하고 사과하고, 앞으로는 그냥 서로 없는 사람처럼 지내면 딱 좋지 않겠어? 괜히 거슬리지 말고.”
아이들은 지켜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대화는 어느새 형준과 우덕, 그리고 수빈과 나래가 맞서는 2대 2 구도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