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살기 위해, 혹은 역사 앞에서
성곤은 기절한 노인을 등에 업고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작은 시골 의원 같은 병원장은 상처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내가 손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오. 당장 더 큰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하오.”
말을 듣자마자 성곤은 다시 등을 내어주고 땀을 흘리며 뛰었다. 그의 발걸음은 경성에서 가장 큰 병원인 종로종합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우리 병원은 내지인만 진료합니다. 조선인은 곤란합니다.”
성곤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 살리는 의사가 할 소리가 그겁니까? 의술이 어찌 국적을 가릅니까! 지금 이분은 죽어가고 있는데!!”
하지만 의사는 경찰을 부르겠다며 고함을 질렀다. 결국 성곤은 맞서 소리쳤다.
“잡혀가야 할 건 내가 아니라, 의사의 도리를 저버린 당신들이지!!”
하지만 성곤만 종로 경찰서 사법계로 끌려갔다.
그 시각, 형준과 우덕은 고문실에서 ‘누가 먼저 입을 열게 하나’를 내기로 술 내기를 하며 잔혹하게 고문하던 중이었다. 채찍이 휘둘러지고, 몽둥이가 땅을 찍을 때 순사가 급히 뛰어와 보고했다.
“김성곤 기자가 병원에서 난동을 부려 지금 사법계에서 조사받고 있습니다!”
우덕은 채찍을 내려놓았고, 형준도 몽둥이를 내려놓았다. 두 사람의 표정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성곤은 형사 앞에서도 굽히지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오. 그런데 그 본분을 버리고 조선인이라 하여 치료를 거부한다니, 이게 법보다도 더 큰 죄가 아니오?!”
성곤이 책상을 쾅쾅 두드리며 항의하자, 형사는 비웃듯 말한다.
“계속 그러면 유치장에 처넣는다. 저 펜 잡는 놈들은 결국 말만 많지.”
긴장된 공기 속에서, 형준과 우덕이 사법계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사법계 형사는 책상을 두드리며 물었다.
“대체 무슨 소란이오?”
우덕이 먼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얘, 제 친구입니다. 좀 살살 다뤄주십시오.”
형준도 한 발짝 나서며 미소를 지었다.
“좋은 데서 술 한잔 대접할 테니, 적당히 조서만 쓰고 내보내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성곤은 참지 못했다.
“너, 우덕! 네가 때린 그 할아버지는 지금 죽어가고 있어! 제발, 제발 나쁜 짓 좀 그만하라고!”
그의 외침은 공허하게 울렸고, 형준과 우덕은 듣지 못한 척한 채 형사와만 눈빛을 주고받았다.
형준은 은근슬쩍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형사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형사는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대일본제국을 대표하는 경찰과 사무라이가 이렇게 부탁하니 이번은 적당히 풀어드리겠습니다! 그러나 김기자, 다음은 어림없소! 알겠습니까?”
성곤은 이를 악물며 외쳤다.
“이게 일본의 법이냐?! 이게 일본경찰의 정의냐?! 이게 무도인이 할 행동이고 사무라이 정신이냐??!!!!”
그러나 성곤은 대답 대신 경찰들의 손에 밀려 경찰서 밖으로 쫓겨났다.
바깥공기 속에서 성곤은 고개를 숙였다. 이미 노인은 싸늘한 주검이 되어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는 흐느끼듯 외쳤다.
“제발 너희들 정신 좀 차려라! 역사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울 셈이냐! 역사의 심판은 늦어도 반드시 온다! 반드시!”
그러나 형준과 우덕은 어이없다는 듯 말하며 다시 경찰서로 들어갔다.
“역사의 심판 오기 전에, 너는 먼저 교도소에서 재판을 받을 뻔했어.”
발걸음을 옮긴 성곤은 규만의 술집으로 향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규만은 이미 일본 전통 요리사 복장을 하고 있었다. 능숙한 일본어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음식을 내놓는 모습은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성곤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먹고살려고 애쓰는구나... 그래, 애국의 길은 지옥길이고 매국의 길은 천국길인 세상이니. 그래도... 넌 그냥 먹고살려고 하는 거니까...”
규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술을 따르며 고개를 숙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