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커지고, 희망은 더 간절해진다
규만의 술집은 그날 밤 경성에서 가장 떠들썩한 공간이었다.
제국 경찰과 카즈야 집안의 사무라이들, 그리고 권력에 빌붙은 이들이 모여 술잔을 부딪혔다.
규만은 주방과 홀을 바쁘게 오가며 음식을 내놓았다.
“정말 기가 막힌 하루 아닙니까? 오늘은 마음껏 드시고 즐기십시오.”
다나카는 술잔을 높이 들어 형준과 우덕을 바라보았다.
“오늘, 너희는 제국의 자랑이었다. 잘 해냈다.”
형준은 잔을 비우며 이를 악물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이태한... 반드시 내 칼로 베어버리겠어.”
우덕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고래고래 소리쳤다.
“오늘은 마신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다르다! 이태한은 물론 숨어 있는 결사대원들까지 모조리 잡아내겠다!”
다나카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시장이나 골목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무도인의 손과 정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의심되는 자는 모조리 잡아 조사해라.”
우덕은 기분이 최고조에 달해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덴노 헤이가 반자이!”
술집은 일제히 따라 외치는 함성으로 울렸다.
“반자이! 반자이! 반자이!”
규만까지 두 손을 높이 들었다.
같은 시각, 허름한 주막 구석.
성곤은 흐릿한 등잔불 아래서 홀로 탁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눈앞에 떠오르는 건, 장도의 최후와 만세를 외치던 군중들의 얼굴뿐이었다.
그는 속으로 씁쓸히 중얼거렸다.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규만... 권력에 미쳐 날뛰는 형준과 우덕...
저 길이 편한 길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래선 안 돼. 절대로.”
펜을 내려다보는 손이 떨렸다.
“칼은 저토록 잔인하고 매정한데… 내 펜은 왜 이렇게 보잘것없어 보일까. 펜이 칼보다 강하다니, 누가 그런 허튼소리를 했던 거지?”
잔을 비우며 그는 고개를 떨궜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겠지. 누군가는 기록해야 하니까.”
같은 경성의 밤,
한쪽은 권력과 환락으로,
다른 한쪽은 고독과 기록의 다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날이 밝자 시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다.
우덕은 경찰들을 풀어 다나카의 조언대로 사람들의 손바닥과 정권을 확인하며 굳은살이 있는 자들을 가차 없이 잡아가기 시작했다.
형준은 사무라이들을 내세워 여관과 술집, 클럽까지 문을 열어둔 곳이라면 들이닥쳐 뒤집어엎었다.
성곤은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이러지 마라, 얘들아. 제발.”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거리의 공기는 더 차갑고 살벌해질 뿐이었다.
우덕이 한 청년을 거칠게 끌고 가자, 백발의 노인이 달려와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놈아! 같은 조선 사람들끼리 이게 무슨 짓이냐! 이 왜놈 앞잡이들아! 내 아들을 끌고 갈 거면 차라리 나도 같이 데려가라!”
우덕은 비웃듯 노인을 걷어찼다.
“유치장 좁은데 늙은이 집어넣을 데는 없어. 저리 꺼져!”
노인이 바닥에 나가떨어지자 어린 손자가 달려와 할아버지를 부둥켜안았다.
“우리 할아버지 때리지 마! 이 왜놈 똥개야!”
우덕은 곤봉을 꺼내 들고 코웃음을 쳤다.
“때린다! 때린다! 뭐 어쩔 건데!”
노인의 몸 위로 곤봉이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청년은 차 안에서 아버지를 부르짖었고, 어린 손자는 울부짖으며 할아버지를 감쌌다.
보다 못한 성곤이 달려와 우덕을 붙잡았다.
“우덕아! 제발, 그만해라!”
우덕은 씩씩대며 곤봉을 거두고는 경찰차에 올라 경찰서로 향했다. 곧 형준과 합세해 다시 움직이려는 기세였다.
성곤은 정신을 잃은 노인을 업고 병원으로 뛰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렸지만, 마음속에선 더 뜨거운 것이 끓어올랐다.
“악행은 점점 더 심해질 뿐, 절대 약해지지 않는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 이대로는 안 된다.”
성곤은 그렇게, 다시 한번 펜을 움켜쥘 결심을 굳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