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청소보다 중요한 걸 하고 있었거든
다음 날 아침, 예린은 덕군 컴퍼니의 견학을 시작했다.
형준의 안내로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학교 뒤 주차장이었다.
그곳에선 구슬치기와 딱지치기가 한창이었다.
“그냥 노는 거 같지? 다 돈 걸고 하는 도박이야.”
형준은 주머니에서 100원짜리 동전을 굴리며 말했다.
“게임하고, 돈 따고, 돈 없으면 우리한테 빌리지.
1000원 빌리면, 다음 주에 1500원으로 갚는 거야. 간단하지?”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표정은 무덤덤했지만, 눈빛은 예리하게 반짝였다.
두 번째 장소는 간식 창고.
대용이 제티 봉지를 흔들며 말했다.
“임원진들은 매일 아침 이걸 받아.
먹기도 하고, 뇌물로도 쓰지.”
예린은 피식 웃었다.
“형준이랑 규만이는 뇌물 말고... 사랑에 쓰던데?”
대용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연이랑 민지는 VIP야. 뭐, 사심도 좀 있고.”
형준이 뒤에서 툭 끼어들었다.
“대용이는 문방구에서 젤리랑 사탕 떼다 팔아.
100원짜리를 300원에. 의외로 장사 잘 된다.”
규만은 PSP를 들고 있었다.
“난 방과 후에 진짜 시작돼.
문방구 앞 철권 오락기에서 도전받아.
수업도 해. 한 판 500원, 레슨은 흥정.”
예린은 그의 손을 바라보다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견학 장소는 급식 로비 현장이었다.
우덕은 식단표를 보고 미소 지었다.
“갈비찜 나오는 날이지. 오늘 완벽해.”
그는 급식당번에게 제티와 500원을 건넸다.
“갈비찜이랑 떡은 우리 쪽으로.
나래랑 수빈은 당근이나 국물만 줘.
밥은 콩 없는 쪽으로 퍼주고, 걔넨 콩만.”
아이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거래 감사합니다~”
예린은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리된 시스템이었다. 치밀했고, 무섭도록 당당했다.
아침 청소 시간.
교문 앞은 여느 때보다 붐볐다.
청소 당번은 형준, 규만, 우덕, 예린, 나래, 수빈.
하지만 빗자루는 단 두 개, 나래와 수빈만 들고 있었다.
형준은 간식을 나눠주며 말했다.
“우린 지금 새로운 임원 예린을 견학시키고 있어. 청소 대신 해줄 사람~?”
아이들은 사탕 하나에 고개를 끄덕였다.
형준은 웃으며 말한다.
“오케이~ 오늘도 쉴 수 있겠네~”
하지만 막상, 구석지고 더러운 자리는
모두 나래와 수빈에게 맡겨졌다.
“야, 여긴 너네가 해.”
수빈이 조용히 말했다.
“같은 당번인데 왜 우리만…”
그러자 누군가가 사탕을 씹으며 말했다.
“우리랑 너네랑 같냐?”
“어제 화장실 청소 때도 그러더니 오늘도 이러네.”
나래는 고개를 숙였고, 수빈은 대꾸 없이 먼지를 쓸었다.
예린은 바로 옆에서 그 모든 걸 보고 있었다.
형준이 젤리를 건네며 물었다.
“어때? 잘 굴러가고 있지?”
예린은 젤리를 받으며,
청소하고 있는 두 아이를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씩 웃었다.
그 미소는 따뜻하지도, 따가운 것도 아니었다.
딱, 어제 화장실에서 마주친 그 장면을 떠올리는 듯한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수빈과 눈이 마주쳤다.
예린은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더 웃었다.
덕군 컴퍼니는 오늘도 잘 돌아가고 있었다.
간식이 화폐고, 화폐가 규칙인 이곳에서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한 사람이, 더 웃는다.
예린의 견학은 끝났고,
진짜 ‘일’은 이제부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