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심판했고, 넌 망가졌다
교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형준은 언제나처럼 정연 옆에 앉아 오글거리는 멘트를 날리고 있었다.
“야, 정연아.
너는 숨만 쉬어도 예쁘다는 거 알지? 그냥 존재 자체가 반칙이야~”
정연은 순간 당황하며 고개를 돌렸다.
“… 난 그냥 사람이야. 그런 거 아니라고.”
볼까지 새빨개진 얼굴로 그렇게 말한 정연을 보고
형준은 흐뭇하게 웃었다.
우덕은 뒷자리에서 킥킥대며 말했다.
“병이다, 진짜. 정연이앓이 말기 환자.”
덕군 컴퍼니의 학년 전체 투표 개표시간
형준은 우덕, 규만, 대용, 예린과 함께 책상 아래로 몸을 낮췄다.
며칠 전부터 1학년 전체에 돌렸던 익명 투표.
오늘은 그 개표일이었다.
“투표 끝났고, 결과도 나왔어.”
형준이 조용히 말했다.
“99퍼센트 찬성. 나래랑 수빈, 이젠 진짜 끝났네.”
우덕이 가방에서 하얀 마스크 다섯 장을 꺼냈다.
“형준 이거 필요하다 했지?”
형준은 마스크를 쓰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경호팀 아이들 쪽으로 다가가 말했다.
“오늘, 타깃은 나래. 겁만 주는 거 아냐.
다시는 정연이한테 그리고 우리에게 그런 소리 못하게 만들어.”
경호팀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저녁.
학원 수업을 마치고 나온 나래는 혼자였다.
가방에 매달린 루비코 인형이 덜렁거리며 흔들렸다.
집으로 가는 골목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뒤에서 낯선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지금이야.”
누군가가 나래의 등을 세게 밀쳤고,
나래는 비명을 지르며 계단 아래로 구르듯 미끄러졌다.
팔꿈치와 무릎이 바닥에 찍혔고,
찢어진 바지 틈으로 피가 번졌다.
이마엔 푸른 멍이 퍼졌고, 입술이 터져 피가 흘렀다.
나래가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두 명의 마스크를 쓴 아이들이 계단을 내려왔다.
“야. 웃긴다.
지금은 아무 말도 못 하네?”
주먹이 복부를 향해 날아들었고,
나래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까불면 이렇게 되는 거야.”
이어지는 두 번째 가격에 나래는 고개를 떨구었다.
눈물이 맺히지도 않았다.
그때, 한 아이가 바닥에 떨어진 루비코 인형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주머니에서 노란 커터칼을 꺼냈다.
“이거, 네가 그렇게 아끼던 거잖아?”
눈알이 찢겼고,
입술이 찢겼다.
인형의 배를 갈라 솜이 터져 나왔다.
“이제 웃지도 못하게 됐네.
너도 마찬가지야.”
마지막으로 인형의 머리를 나래의 얼굴 위에 툭, 던졌다.
“또 까불면 네가 저렇게 되는 거야.”
그리고 발로 가방을 걷어찼다.
학원 책들이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이들은 말없이 사라졌다.
남겨진 나래는 피범벅이 된 채로,
루비코 인형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조금 뒤,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피 흘리는 아이를 발견했고
구급차가 도착했다.
루비코 인형 머리만 들고 실려 가는 나래를
누구도 따라오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조회 시작 직전.
“너!!!”
교실 문이 벌컥 열렸다.
나래 어머니의 어머니다.
얼굴은 눈물 자국으로 번져 있었고,
목소리는 떨렸다.
그녀는 교실 앞으로 달려와
정연의 머리를 세게 가격했다.
“너잖아!!
네가 시켜서 우리 애 이렇게 만든 거잖아!!!
애가 병원에 실려 갔어!! 지금도 안 일어나!!”
형준이 벌떡 일어났다.
“뭐 하는 거예요 지금!!!
정연이를 건드려!? 감히!?”
분노로 떨리는 목소리.
이미 눈은 돌아가 있었다.
“앞으로 이나래? 내가 책임지고 고개도 못 들고 다니게 할 거야.
전학 갈 학교 미리 알아보시고요.
자기 딸 귀하면 남의 딸 귀한 줄도 알아야죠!!!”
담임 선생님이 소리쳤다.
“형준아! 어른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지금!!!”
하지만 형준은 이미
나래의 책상과 필통, 연필꽂이, 공책 전부를 복도 밖으로 집어던지고 있었다.
“꺼지라고!!! 감히 정연이를 건드려? 넌 끝이야!!! 이 학교에서!!!”
규만, 우덕, 대용이 뛰어와 형준을 붙잡았다.
“야야야 진정 좀 해!!!”
“형준아 안 돼!! 이제 진짜 큰일 나!!!”
정연은 말없이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담임은 어머니를 조용히 복도로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형준과 정연에게 말했다.
“둘 다 교무실로 와.
지금 당장.”
교실은 다시 조용해졌다.
복도엔
찢긴 루비코 인형의 머리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무도 그걸 주우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만든 ‘정의’는,
누군가의 지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