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짧고도 긴 날들의 시작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 당시에 가졌던 벅찬 감흥도 가라앉았으나, 뉴욕에서 연수를 받는 중에 내가 런던사무소를 지점으로 승격 개설하기 위한 준비위원 중의 한 사람으로 선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예사의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 있는 아내에게 이 소식을 알렸더니 몹시 감격한 반응이었다.
당시 우리뿐만 아니라 상업은행과 제일은행도 지점인가를 받아 준비 중이어서 영국의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은 한국계 은행들이 일시에 몰려 들어오는 것이 보기에도 좋지 않고(?) 해당 은행들도 처음부터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 몰입하는 것보다는 적절한 시차를 두어 단계적으로 개점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이분들이 '의견'이라 표현하는 것은 명령과 다름없는 것이라 했다. 그래서 상업은행은 이미 개점단계에 있으니까 차치하고라도 제일은행과 우리 은행 중 하나가 연내에, 나머지는 양보해서 돌아오는 해에 개점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관계 당국의 이야기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 준비위원들은 그래도 수속이 되는대로 현지로 가느니, 늦춰서 가야 하느니 분분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후 2개월 반 만에 처자를 거느리고 1978년 6월 5일 오후 1시 15분 발 대한항공편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출국하는 날 김포공항은 처가와 우리 집 친척들로 메워져 있는 듯한 벅찬 분위기였다. 우리 부부는 세련되지 못하여 이 사람 저 사람이 주는 대로 양손에 무엇인가를 잔뜩 들게 되었고, 제멋대로 흘러가다시피 하는 2년 7개월 된 작은아이는 제 언니가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언니래야 처음 발령받았을 때 TV에 영국 풍물이 소개되어 “저것이 네가 갈 영국의 아이들이다."하고 가르쳐 주니까 "그럼 나도 영국 가면 머리가 노랗게 돼?" 하고 묻던, 동생보다 한 살 많지만 역시 철없는 어린것이었다.
하네다에서 옮겨온 지 얼마 안 되는 도쿄 나리타국제공항에서 6시간쯤 기다려 런던행 JAL 편으로 갈아타고 앵커리지 경유, 목적지인 런던에 내리게 된 것은 현지시간으로 다음날 아침 6시가 지난 무렵이었다. 서울시간으로 오후 2시, 그러니까 김포를 출발하여 만 24시간이 지난 뒤였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집사람이나 나는 흥분에 싸여 거의 눈을 붙이지 못했다. 기대에 부풀고 희망이 넘쳐 앞으로 생활할 것이 꿈같이만 생각되었고 걱정 같은 것은 아예 하려 들지 않았다. 피로한 줄도 몰랐다. 타고 있는 비행기가 아무리 점보라 해도 줄곧 좁은 자리에 붙어 오자니 답답하고 짜증이 날 터인데, 아이들에게도 어른의 이러한 기분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별로 괴로워하거나 지루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런던의 시가 모습은 새벽의 먼동이 트이기 전인데도, 공원이 참 많다더니 과연 여기저기 녹지가 많이 눈에 띄어 산뜻해 보였다. 여권 수속을 끝내고 짐 가방들을 찾아 카트에 실어, 밀고 나오면서 반입물 검사하는 데가 왜 이리 안 나오나 생각하는데 이미 택시 타는 곳에 도달해 있었다.
영국은 통관절차가 자진신고제여서 신고할 물건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출구가 따로따로 나뉘어 있었으며, 게시문에 열거된 신고 물품이 없는 사람은 그대로 빠져나오면 되는 것인 줄을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입국해 버렸던 것이다. 사실 짐이래야 입을 옷과 당분간 먹을 기본 식품 조금으로 신고할 물건을 지니지 않았으니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마중 나온 우리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C대리의 안내로 택시에 실려 우리가 앞으로 살게 될 동네―런던의 서남쪽 '퍼트니(Putney)'라는 곳의 '체리우드 드라이브'에 도착하였다.
이때 비친 이 동네의 정경을 잊을 수 없다. ㄷ 자형으로 큰길에서 꺾어 들어오면 길 양편으로 2층짜리 연립주택이 줄지어 있는데 길까지 나오기에는 각 집의 정원으로 주로 벚나무 등 교목과 장미로 꾸며져 있었다. 오전 8시경 이른 아침이라 주위는 아무도 없이 조용하고 한낮처럼 퍼져있는 햇살은 탐스럽게 피어있는 각종 장미에 비쳐 화사함을 돋우고 있었다. 그 뒤로도 이때처럼 잘 핀 장미를 봤다는 기억이 없다. 장미를 특히 잘 가꿔놓는다는 퀸 메리 가든의 것도 이 보다 나을 것이 못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영국장미의 첫인상 때문인지도 모른다.
택시에서 내려 짐을 챙기는데, 혈색 좋고 건장하지만 백발이 성성하고 나이가 상당히 들어 보이는 영국사람이 나타나 우람한 손을 내밀며 "헬로, 미스터 킴, 어쩌고 저쩌고..."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고 우리가 입주할 집 열쇠 꾸러미를 건네주었다. 이 사람이 바로 아프리카 잠비아에 취업차 나가 있는 우리가 살 집주인의 이웃 친구로 그의 부재중 집 관리를 맡아하고 있는 토마스 패리 씨였다.
이렇게 해서 3년이란 짧지만, 보고 느낀 것이 많아 때로는 길게 느껴지기도 했던 우리의 영국 생활이 시작되었다.(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