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정착기(定着期)
장기간 체류할 목적으로 영국에 입국하고 나면 도착 후 1주일 이내에 경찰서를 찾아가 외국인등록을 마쳐야 한다. 그래서 교부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과 흡사한 외국인등록증이다. 나라 안에서는 여권을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이것을 소지하고 다니라 하지만 실상은 갖고 다니며 쓸 일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집 가까이 써저리(surgery;의사 서너 명에 진찰실 두셋을 갖춘 의원)를 찾아 홈닥터를 정하고 아이들은 나이에 맞춰 학교에 입학시키면 우선 급한 대로 발등의 급한 불들은 끄는 셈이 된다. 이러한 수속들이 모든 별다른 서류를 해 대는 일 없이 한번 찾아가는 것으로 끝낼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빨리 이곳 생활에 자리 잡고 쉽사리 안정하기 위해서는 자기 차가 있어야 한다고들 입을 모아 말한다. 차를 갖고 빨리 굴리면 그럴수록 안정이 빠르다는 것이 먼저 온 사람들의 한결같은 충고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렇게 선뜻 이뤄지지 않는 것이,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에게는 자동차를 직접 다루는 것이 생소한 데다가―솔직히 말해서 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형편임―차종은 숱하게 많이 있는 까닭이다. 게다가 귀임할 때 처분할 것까지 고려한다면 새 차를 택할 것인가 중고 중에서 쓸만한 것을 취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부터 '기어'는 무엇으로 할 것인가 등 생각만으로도 골치 아픈 걱정들을 줄줄이 해야 한다. 이런 일 저런 일 다 그만두고 자동차 없이 견뎌볼까 하고 한두 번 생각해보기도 하면, 일은 성사 안 되고 시간만 부질없이 흐른다. 그러던 끝에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어느 날 갑자기 결단을 내린다. 중고차 수동식으로 낙착을 보고 차를 구입한 것은 6개월이 지난 뒤였다.
그사이에 헷갈리면서 어지럽게 춤추던 동서남북의 방향감각이 제자리를 찾았고 이웃들과는 어디서 만나더라도 반가움을 못 이기는 듯한 눈웃음을 치거나, 손을 들어 보여 잘 아는 사이라는 것을 표시할 정도로 안면도 익어졌다. 아이들은 이제 영어를 제법 체계적으로 그럴싸하게 흉내 내고 있었다. 책으로만 읽거나 들어서만 막연하게 알고 있었던 역사 속의 문화유산들도 이곳저곳 찾아보게 되었다.
영국은, '좌' 다음에 반드시 '우'가 뒤따르듯이 미국 다음에 올릴 정도로 잘 알려진 나라이면서 구체적으로 이 나라에 대하여 무엇을 알고 있는가 파고들면 실상은 별로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데에 스스로 놀랐다.
우리나라와는 또 다른 형태로 토끼에 유사한 지형의 섬나라에 앵글로색슨족이 끼어 들어와 런던을 수도로 해서 살다가, 산업혁명이라는 것을 일으켰고, 한때 수많은 식민지를 거느려 대영제국이라 불렸었다는 것 외에 윈스턴 처칠 경의 검은 옷 위에 받쳐진 살찐 얼굴과 템스 강변에 길게 엎드린 국회의사당의 건물이 떠오르고, 그밖에 이름을 남긴 역사 속의 몇몇 인물들이 기억될 정도였다.
나는 왜 내 여권에 목적지가 우리가 잘 아는 'England' 대신에'United Kingdom'이라고 기재되어 있는지조차도 확실히 모르고 있었다. 세계사라는 기나긴 서사시 가운데 영국의 것을 빼버리고 나면 알맹이 없는 빈 껍질에 불과하다고 흔히들 일컫는데도 나는 이 나라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역사의 흔적들을 직접 찾아 나서, 만져보고 디뎌보고 또 냄새 맡아봄으로써 그것들의 유래를 더듬고 생성부터 지금까지 연면히 이어온 역사의 커다란 줄기 속에 이들이 어느 위치에 있었던가를 알고자 하는 궁금증이 발동하니, 새삼스럽게 깊은 관심을 갖고 영국역사를 기술한 서적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생활하면서 무엇보다 가장 답답하게 벽에 부딪는 것은 말[言語]이 아니랄 수 없다. 얼른 귀가 뚫려야 할 텐데 빨리 귀가 뚫려야 상대방이 전달하려 하고 호의를 베풀고자 하며 때로는 도움을 청하고 물어보는 뜻이 무엇인가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아듣고 거기에 맞는 적절한 대처를 취할 텐데, 그게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엿장수 가위 쩔그럭거리듯 그렇게 용이치 못한 것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세계가 놀랄 커다란 사건이 터졌어도 영어로 보도되는 TV나 라디오 또는 신문에 의해서만 진상을 캐볼 수밖에 없다. 영어로 기재되어 날라 드는 고지서에 의하여 세금을 바치며 엉뚱하게 걸려오는 전화나 잘못 찾아드는 사람들의 말도 영어일 수밖에 없다. 하다 못해 주위의 소음조차도 영어의 리듬으로 들려오는 환경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 온 끝에 죽순 자라듯 영어 실력이 저도 모르게 잘도 뻗어 날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니 그것이 문제다. 오히려 눈치와 요령과 감각이 먼저 익숙해져 언어의 발전을 저해하는지도 모르겠다. 해외생활을 먼저 해보고 돌아왔던 한 친구가 환송해 주는 자리에서, "다만, 이 사람들과 맞닥뜨렸을 때,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르고 어쩔 줄 몰라하던 것은 사라졌다"라고 하던 말을 상기하고 스스로 위안으로 삼는다.
결국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언제 어디서나 꾸준히 지속적으로 연마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에서 살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언어를 익히기 아주 좋은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의미가 강한 것이지 그 나라 말을 이제 익숙하게 구사하겠거니 여겨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기는 하나 이 고마움을 선뜻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나만의 것인지?
어쨌거나 반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영국에서 생활하는 데에 대한 기본적인 감은 잡혀가고 있었다.(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