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북 웨일스 지방의 성들
4월은 영국 생활에 있어서 가장 기대되는 달이다. 날씨가 온화해지면서 잘 가꿔놓은 정원과 푸르른 언덕에 각종 꽃이 다투어 피고 온 누리에 생기가 충만하여 바야흐로 긴 겨울에서 완전히 깨어나 여행하기 좋은 때이다. 거기에 걸맞게 부활절의 4 연휴가 이달에 끼어있기 때문이다.
부활절의 유래에 대하여 나로서는 잘 아는 바가 없다. 다만 전거(典據)에 의하면 부활절은 원래 3월 21일이나, 이날이 공교롭게도 보름달인 날이 아니면 다음 보름달 이후 최초로 돌아오는 일요일이 '부활절 날(Easter Sunday)'이 된다. 이렇게 결정된 부활절 날 바로 앞의 금요일은 '수난일(Good Friday)'이라 하여 쉬고 또 부활절 다음날인 월요일은 '부활절 월요일(Easter Monday)'이라 하여 공휴일로 되었다. 그래서 부활절은 언제나 나흘을 연이어 쉬는 그야말로 황금의 연휴가 되는 것이다.
내가 영국에서 3년을 체류하는 동안 부활절 휴일은 모두 4월 중에 끼어있었다. 그 첫 부활절 휴일을 맞는 우리 가슴은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었다. 우리 가족을 포함하여 세 집이 3박 4일의 일정으로 가장 이상적인 여행 목적지를 영국 서쪽 웨일스 지방으로 정하고 이곳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장거리 여행에 허술함이 없도록 세심한 노력을 기울였다.
세 집의 가장(家長)들은 모두 이곳에 와서야 비로소 운전을 배워 6개월 미만의 익숙하지 못한 기사들이었다. 그 미숙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어느 길을 택할 것이며 쉬는 곳을 어디로 할 것이며, 서로 길을 잃을 경우 어떻게 하자는 둥 주로 초보운전으로 야기될 문제 예방에 많은 신경을 썼다. 이곳에서 처음 나서는 숙박여행에 가족을 이끌고 잠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큰 혼란이 있을 것 같아 묵을 곳도 예약을 해 놓았다. 그리고 지도를 몇 번이고 들여다보고 익히면서 도상(圖上) 훈련을 계속하였다.
출발하는 날 아침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늘은 맑게 개었고, 모든 준비를 끝내고 약속장소로 향할 때의 기분은 학교 소풍을 위하여 집결지로 갈 때의 공연히 들뜨고 저절로 즐겁던 추억을 새롭게 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여행의 즐거움 대부분이 이처럼 떠날 때의 설렘과 가슴속에 저려오는 뿌듯한 기분이 아닌가 한다.
우리가 둘러보기 위하여 처음으로 멈춘 곳은 런던에서 약 190마일(304킬로) 떨어진 체스터(Chester)라는 곳이었다. 체스터는 북부 웨일스와 거의 접경지역에 있는 잉글랜드의 도시다. 기원전 55년에 로마사람들이 브리튼 섬에 침입하여 약 4백 년을 통치하고 있는 동안 이 주변의 비옥한 땅을, 변경으로 흩어진 토착 웨일스 사람들이나 해적 또는 그밖에 약탈을 일삼는 자들로부터 방비하기 위하여 기원 후 79년에 설치하였던 주요 병영의 하나였다.
영국에는 체스터를 비롯하여 맨체스터, 윈체스터, 도체스터 등 체스터(chester)라는 말이 뒤에 붙는 도시가 많이 있는데 이는 로마어로 병영(兵營)을 의미하는 캐스트라(Castra)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체스터는 군사의 요새답게 시내를 옹위(擁衛)하고 있는 옛 성곽이 그대로 남아, 이 도시의 주요부를 이루고 있었고 보기에도 고풍스러운 튜더 식 목조건물의 은근한 기품은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었다.
갈 길이 바쁜 우리는 체스터에서 두어 시간을 지체하고 다시 서쪽 지방을 향하여 이곳을 벗어나는 도중, 한때 일행이 뿔뿔이 헤어지는 암담함을 겪기도 하였으나 천만 요행으로 곧 재회에 성공하여 다음 행선지로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그사이 우리는 이미 웨일스 땅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으며 푸른 초원 위에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의 평화로운 모습에 모든 피로가 가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치적 단일체로서 영국 정식명칭은 '연합왕국(United Kingdom)'인바 이는 큰 섬인 브리튼의 '잉글랜드' '웨일스' 및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섬 중의 '북아일랜드'를 합한 것임을 뜻한다. 켈트족이 브리튼에 오래전부터 살고 있었으나 나중에 침입한 앵글로색슨족에게 쫓겨 밀려난 곳이 산간지방인 서쪽의 웨일스와 북쪽의 스코틀랜드, 더 멀리는 아일랜드섬이었다. 이들을 더는 쫓지 않고 내버려 둠으로써, 또한 이들도 지리적 이점을 잘 이용하여 버텨냄으로써 근세에 합병할 때까지 잉글랜드와 웨일스, 스코틀랜드라는 각각 별개의 나라로 존속하게 된 것이다.
웨일스는 브리튼 섬에서 위치상으로는 우리나라의 충청남도에 해당하겠으나 그다지 험난하지는 않아도 캠브리아라는 산맥이 남북으로 뻗어있는 산골이라는 점으로는 강원도와 비슷한 곳이다.
북부 웨일스에는 성(城; castle)이 많이 있다. 성은 영국 여러 곳에 수없이 퍼져있지만, 특히 북부 웨일스에 위치하고 있는 성들은 규모가 크고 웅장한 맛이 있다. 영국에 성의 형태가 처음으로 생긴 것은 1066년 노르만족이 침입하면서부터이었다. 노르만 인들은 피지배층이 된 앵글로색슨 인들이 군대를 양성하거나 반란을 일으키는 일이 없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기 위하여 높이 쌓아 올린 흙더미나 언덕 위에 목조의 전망 탑을 설치하였던 것이 성 형태의 시초이었다. 전망 탑 아래로는 군사들을 훈련할 수 있는 넓은 마당을 확보하여 그 둘레에 울타리를 쳐놓고 외곽은 적이 쉽사리 침입할 수 없도록 깊은 못을 파놓았다.
이와 같은 초기의 성은 차차 발전하여 중앙 전망 탑은 견고한 석축 건물로 변하여 영주가 거처하는 저택을 겸하게 되었다. 후에 규모를 확대하여 내성 둘레에 외성을 쌓아 이중의 성벽을 축조하고 성벽 중간중간에 전망 탑을 세웠으며 이중으로 된 성벽 사이에는 통로를 만들어 군사들이 성안에서 편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하였다. 13세기 말경부터는 영주의 독립저택(manor house)도 세로 일자형 또는 십자형의 창을 좁게 만드는 등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굳게 방비할 수 있도록 견고하게 지어놓았는데 이러한 장원저택도 성이라 부르고 있다.
1282년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1세가 웨일스의 르웰린 왕가를 무너뜨리고 그 위세를 널리 떨치기 위하여 웨일스 전역에 수많은 성을 축조하였는데 이들을 '에드워드 시대의 축성(築城)'이라 한다. 이 성들은 난공불락으로 견고한 데다가 건축미가 뛰어나고 호화로운 거실이 함께 하고 있어 유럽 본토에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한다.
웨일스 북단으로 흐르는 콘위강 서편 언덕에 세워진 콘위성은 하프 모양으로 길이가 8백 미터에 이르는 대형의 것이다. 지금은 폐성(廢城)이 되었으나 원형은 거의 그대로 남아있어 타워의 높은 곳에 올라서서 내려다보면 이 성의 구조가 어떠한 것인가를 한 눈으로 알 수 있다. 성 동쪽 끝에서 조감(鳥瞰)되는, 콘위 강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다리―하나는 성문으로 바로 연결되는 조교(弔橋), 또 하나는 성 남쪽을 끼고 돌아가는 기차 철교―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다리 왼편의 작은 만에 정박한 요트들 위에 화창한 날의 포근한 햇빛이 아낌없이 쏟아져 빛나고, 그 위를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날고 있는 한가로운 풍경은 두고두고 보고 싶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한 곳에서 한나절 이상을 머무르지 못한다. 우리는 애초에 떠나갈 것을 예정하고 이곳에 왔으며 또 갈 길이 멀고 바쁜 나그네들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 스쳐 지나가고 말 길을 이제 떠나버리려 한다는 생각에 미치니 이곳을 뒤로하는 아쉬움이 크다.
콘위에서 약 30킬로 정도 거리의 방고르라는 곳에 다다를 무렵, 펜린 성의 표지판을 만나 지나는 길에 이곳을 둘러보기로 했다. 성역(城域)의 입구로 들어서자 바로 깊은 숲이 앞을 가로막는데 숲 속을 가르고 들어갈 때는 동화 속의 성을 향하여 다가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한참 만에 눈앞에 우뚝 성채가 떠오르고 그 밑으로 완만하게 경사진 넓고 푸른 언덕에 노란 수선화가 점점이 펼쳐 만개해 있으니 자꾸만 아련한 꿈속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어쩔 수 없다. 우중충하고 육중한 성(城)과 밝고 깨끗한 점점황(點點黃)의 초원이 대조적이면서도 기막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 중 만난 성들 가운데 가장 스케일이 크고 무게와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을 꼽는다면 주저 없이 카나혼성이라 하겠다. 웨일스를 정복한 에드워드 1세가 그의 힘을 만천하에 과시하기 위하여 1283년에 축조하기 시작하여 37년간에 걸쳐 완성한 이 성은 규모가 가장 크고 견고하여 마치 한 덩어리의 돌산이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왕은 여기서 왕세자를 낳아, 그를 '프린스 오브 웨일스'(Prince of Wales)라 명명하니 그 뒤부터 영국 황태자를 일컬어 '프린스 오브 웨일스'라 한다고 한다. 현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계승하여 차기 왕이 될 찰스 왕자의 황태자 책봉식이 1969년에 이곳에서 거행된 바 있다.
우리는 여행을 하면서 처음에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른 점을 발견했는데 그것은 어디를 가더라도 사람들이 들끓지 않는 것이었다. 정기휴가 때를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연중 보장된 가장 긴 휴일은 부활절의 4 연휴 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크리스마스 때도 주말을 끼게 되면 나흘을 연이어 쉬게 되나 그래도 이때는 겨울철인 데다 낮의 길이가 아주 짧아 나돌아 다닐 시기가 못되니 자연히 만화방창(萬化方暢)의 부활절이야말로 수많은 사람이 몰려다니리라는 생각이 우리 상식이었다.
그러나 어디를 가도 인파가 넘쳐 혼잡을 빚는 일은 전혀 없었으며 적당히 많은 사람이 알맞게 몰려들었다가 각각 제 갈 길을 가는 지극히 평온한 분위기이다. 이른바 명소라는 곳도 아주 한적하기조차 하다.
전혀 산이라고는 없는 잉글랜드에 비하면 웨일스는 산간이라 할 수 있으나 제일 높다는 해발 1,085미터의 스노든산이 있을 뿐 깊은 산골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양들이 구름같이 무리 지어 풀을 뜯고 있는 산기슭과 푸른 구릉지, 갈대 우거진 너른 벌판, 맑은 호수를 끼고도는 숲길, 우리나라 제주도처럼 줄지어 쌓아 올린 지방도로변의 돌담과 생울타리 등이 잘 어울려서 몇 시간이고 달려도 지루하지 않고 피곤한 줄을 모르겠다. 차도는 빈틈없이 포장되어 있으니 먼지가 인다든가 하는 기분 잡치는 일은 전혀 없다.
웨일스의 수도라고 하는 남단의 도시 카디프를 대강 둘러보는 것으로 이번 여행의 관광을 모두 마쳤다. 이제 귀가를 서두르기 위하여 고속도로(M4)에 접어드니 이는 런던과 영국 서부를 잇는 간선도로인 데다가 각처에서 런던을 향하여 돌아오는 차량들로 크게 혼잡을 이루고 있어서 집에 도착한 것은 꽤 늦은 시각이었다.
이튿날 아침 깊은 잠에서 깨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출발할 때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꽃들이― 동네 이름이기도 한 벚꽃을 비롯하여 수선화, 튤립까지도―활짝 피어 온 동네가 환한 웃음을 함빡 웃고 있었다. 이 여행을 통하여 크게 느낀 두 가지는 이 나라 민족이 역사를 끔찍이도 아끼고 보존하며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자연을 자연스럽게 가꾸는 노력이었다. 그 뒤로도 이러한 인상은 영국의 어느 곳을 가더라도 변함이 없이 더 굳어지게 되었다.(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