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국토 최남단 마라도
마라도(馬羅島)를 애써 찾아가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거기에 사람이 살고 있거나 아니 거나를 불문하고 우리나라 최남단의 땅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참으로 묘한 존재여서 별 것도 아닌 일에 무슨 큰 의미를 부여하길 좋아하고 어떻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에 눈시울이 더워지거나 코끝이 찡해오는 감흥에 빠지기를 예사로 한다. 어느 나라든 국토의 끝은 반드시 있게 마련인 것을 단지 막바지 땅이라는 한 가지 상징성 때문에 이곳을 탐방하려는 것이다.
전라남도 해남군 끝 부분 토말(土末)이라는 곳에도 기념비를 세워놓고 관광지로 삼아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모양이다. 말하자면 토말은 대한민국 육지의 끝이고 마라도는 섬까지 포함한 최남단인 셈이다.
평소라면 특별히 갈 엄두조차 못 내고 국토 최남단이라는 상식 정도로 그칠 것을 제주에 와서 지내다 보니 그 이점을 살려 언젠가는 있는 동안 가봐야 할 곳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다시 바다를 건너야 하고 또한 그 뱃길은 서남풍의 길목이어서 바람이 심하고 파도가 높은 날은 피해서 선택해야 하는 번거로움과 망설임이 수반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일주일 내내 찌푸리고 음산한 날씨여서 이번 계획도 무산되는 게 아닌가 염려되었으나 하루 밤을 지내며 거센 바람도 자고 맑게 개여서 날은 잘 받았다는 생각이었다.
관광유람선 송악산 1호는 2백 명 이상 태울 수 있다는 큰 배여서 마음이 놓였다. 갑판 난간에 기대서서 미지의 섬 마라도를 향해 다가가는 설렘만으로도 내 삶의 존재이유와 의욕에 큰 보탬이 되는 듯했다. 출렁이는 감청색 청정해역에 흰 포말을 길게 늘이며 멀어져 가는 송악산, 산방산 그리고 한라산의 중첩된 그림을 한 눈 안에 보는 감회가 그지없이 상쾌하다.
송악산 선착장을 떠나 마라도로 가는 중간쯤에 이 섬의 5,6배나 되는 가파도를 만나지만 그저 지나치는 것은 다름 아닌 최남단에 발을 디뎌보겠다는 일념 때문이리라. 사실 마라도에는 볼만한 것이 별로 없다. 1시간 정도면 골고루 눈길을 줄 수 있는 0.3 평방 킬로의 땅덩이, 나무다운 나무 하나 없이 덩그러니 풀만이 수북한 위에 그것을 뜯고 있는 너덧 마리의 흑염소와 두어 마리의 조랑말이 한가로이 서성일뿐이다.
조금 나은 건물이래야 고작 태평양 위를 지나는 선박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하는 등대와 총 학생 한 명을 위한 교실 하나의 가파초등학교 마라 분교 교사 정도이며, 그리고 고구마 모양의 자그마한 섬 가장 남쪽에 세워진 '대한민국최남단비'가 볼거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 같지만 볼 것이 없기 때문에 그 볼 것 없음의 황량함을 보기 위하여 이곳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우르르 몰려왔던 관광객들은 1시간 여를 헤집고 다닌 뒤 또 주르르 빠져나가는 것이었는데 그렇다 해서 이곳에 한가롭게 살고 있는 26 가구 64명(94년 이후 다소 변동이 있었을 것임)의 주민들이 외로워할 일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야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게 떠나가지만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무리들이 끊임없이 찾아들 것이기 때문이다.
떠나며 점점 멀어져 가는 마라도가 마치 한 마리의 거대한 고래로서 바다 위에 떠서 제주 본도는 물론 대한민국 남단을 굳게 지키고 있는 듯한 듬직한 모습처럼 보인다.(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