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감(7)

by 김헌삼


7.영주일경(瀛州一景) 성산일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감회는 누구나 각별할 것이다. 그래서 정초의 덕담은 아무리 반복해서 듣거나 또는 베풀어도 지나치게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다.

조상을 모시는 차례행사가 구정이라 불렸던 것이 다시 설날로 자리 잡혀감에 따라 신정 연휴는 그야말로 부담 없이 쉬며 새로이 시작하는 한 해를 기리고 설계하는 의식으로 그 개념이 바뀌어 가는 듯하다. 그중에서 가장 뜻깊은 신년맞이는 첫 일출을 보러 산이나 바닷가로 떠나는 게 아닐까?

성산일출(城山日出)은 영주 12경(瀛州十二景)중 첫 번째로 꼽힌다. 나는 그 열두 경치를 일삼아 모두 찾아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성산 앞바다에서 해 뜨는 장면만은 꼭 봐둬야만 제주에 와서 지낸 값을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소중한 어느 휴일 이른 새벽을 할애하여 큰맘 먹고 나섰는데 제주시에서 성산까지 가는데 10여 분간의 차이로 일출의 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때 꼭 다시 한번 오리라던 다짐을 이제 신년을 맞아 실천하려는 것이다.

1월 초의 일요일 아침, 일찍이 일어나 창 밖을 보니 밤하늘의 별들이 총총하다. 어제 해 뜨는 시각이 7시 39분이라 했으니 7시 반까지 성산 현장에 도달할 목표로 12번 국도를 따라 내쳐 달리면 될 것이다. 일출 1시간 전쯤의 먼동은 뿌연 어둠 속에서도 이미 붉은 기운이 배어있다.

일출봉 부근 신양리 해변에 도착한 것은 지난번과는 달리 해뜨기 전 넉넉한 시간이었다. 일출봉 위에서보다는 그 비스듬한 사다리꼴 봉우리를 끼고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의 모습이 더 아름답게 느껴졌던 기억을 되살려 호젓한 이곳 바닷가를 조망 장소로 택한 것이다.

물 빠진 해변의 이끼 낀 암반에서 새벽 공기 속으로 풍겨오는 풋풋한 해조류의 내음이 싱그럽다. 먼바다에는 어선 두어 척이 떠있고 한 아낙이 너른 바위 틈틈을 뒤적이며 무언가를 채취하고 있는 사이로 작은 물새 떼들이 새해를 열듯 낮게 휘이익 지나간다.

동쪽 하늘 멀리 엷게 퍼져있던 여명의 붉은 기운이 점차 한 곳으로 모이며 짙게 변하더니 장막처럼 낮게 깔린 구름의 터진 사이로 용광로 속 쇳물보다 더 시뻘건 해 덩이가 엿보이고 차차 구름 상단이 찬연한 빛을 발하며 커다란 황금알을 토해내듯 둥그런 태양이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숭엄한 모습으로 솟아오른다. 어느 누가 이것을 지켜보며 각오를 새롭게 안 할 것인가.

마침내 높이 떠올라 눈부신 새해 새 태양을 우러르며 나 스스로, 그리고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기에 실로 보람 있는 한 해가 되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욕구가 온몸으로 전율처럼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서서히 일출봉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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