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소감(6)

by 김헌삼

6. 설문대할망의 후예


툭 불거진 눈코와 두둑한 배를 안고 근엄한 모습으로 서있는 돌하르방은 흔히 보아왔어도 설문대할망의 흥미로운 설화(說話)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제주에서 지내며 이곳에 관한 서적을 찾아 읽거나 지방방송에서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가 설문대할망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는데 그중 재미있는 한 부분은 이러하다.

설문대할망은 대단한 초인(超人)으로서 그의 치마폭에 흙을 담아 평평하던 섬 한가운데에 일곱 번을 갖다 부어 쌓인 것이 한라산이 되었고, 그러는 과정에서 터진 치마솔기 사이로 졸졸 흘러내린 흙이 여기저기 크고 작게 무더기 진 것들이 곳곳의 오름이라는 것이다.

이 설화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제주도라는 삶의 터전을 꾸미는 대역사(大役事)의 주인공이 왜 여성으로 설정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은 열심히 사는 제주 여성의 강인한 생활력, 구진 것 힘든 것을 가리지 않고 하고자 하는 적극적인 성격을 은연중 나타내는 게 아닐까?

이러한 나의 생각은 늘 대하는 현지 우리 여직원들의 사고와 생활자세, 은행에 드나드는 여성고객들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피상적으로 느낀 것이므로 선입관에 의하여 오도된 편견일지 모르나 다른 사람들도 별 이의가 없는 것을 보면 그다지 잘못된 판단은 아닌 듯하다.

제주 여성들은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려 하고 생활에 유익하다 싶으면 모두 익혀두려는 원초적 본능(?)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닿는 한, 아니 기회를 찾거나 만들어가며 여성으로서 필요한 분야는 물론 운전면허 컴퓨터 외국어 등도 닥치는 대로 배워 가능한 한 폭넓은 자격을 취득하며 이와 관련하여 필요할 때 휴가의 대부분을 요긴하게 사용하기도 한다.

지난여름동안 내 눈에 비친 거리의 이색적인 풍경은 하나의 유행처럼 차양모자를 쓰고 다니는 여자들이 유난히 많은 것이었다. 이러한 차림은 여름에 햇빛을 가려 얼굴 그을음을 방지하려 한다는 예사로운 것이라기보다는 수사관들이 점퍼 청바지에 운동화 등 간편한 복장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무척 활동적인 인상을 심어주었다.

제주 여성들의 성격이 이와 같이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성향을 띠게 된 데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은 그들이 초인적인 힘을 지닌 설문대할망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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