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영국생활을 끝내고
아무도 얼마만 가 있다 오라 공언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3년쯤 지내다가 돌아올 생각으로 영국을 향해 떠났으며 그 기간이 거의 채워질 무렵 돌아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날아온 이동발령 텔렉스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몹시 바쁘게 만들었다. 그사이 뿌려놓은 생활의 자잘한 부스러기들을 주워 모아 꾸리는 일도 그렇지만 우리로부터 이 사회에 '정착'이라는 것을 위하여 내린 숱한 가는 뿌리들을 잘라내는 일들도 하나둘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학교, 홈닥터, 크레디트 카드, 은행계좌, 임차 TV, 자동차보험, 무슨 무슨 멤버십 등 손꼽자면 아마도 스무 가지도 더 될 일들을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으므로 취소하겠다."는 통지를 보내고 또 그렇게 마무리가 잘 되었는지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터로서 최종적으로 봐둬야겠다고 정선해둔 몇 곳이 그리니치 천문대와 수필가 찰스 램이 살던 라이(Rye)의 집, 그리고 아룬델 성의 세 곳이었다.
그리니치는 언제인가 한번 가본 일이 있지마는 본초자오선이 지나는 표시가 있다는 천문대는 못 보고 해양박물관만을 일부 관람하다가 문 닫을 시간이 되어 쫓겨 나오면서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고 벼르던 곳이다. 더욱이 영국은 일찍이 바다로 진출하여 대영제국의 깃발을 여기저기 드높였던 나라로 그에 관한 유물들이 이 왕립해양박물관에 보관·진열되어 있을 것이니 영국이라는 나라를 이해하기에는 그 유명한 대영박물관을 보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곳이기도 하다.
'수필은 마음의 산책'으로서 '그 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 있으며' 또한 한 편의 수필 작품은 파편처럼 짤막짤막하게 끊어지는 조각의 여가를 선용하기에 적당한 양이어서 즐겨 읽게 된다. 영국은 어느 다른 나라보다도 수필문학의 꽃이 화려하게 만발한 곳이 아닌가 한다. 후란시스 베이컨을 비롯하여 찰스 램, 조지 기싱, 가드너, 체스터튼, 린드, 밀른으로 이어지는 기라성 같은 산문의 대가들. 언젠가 접한 밀른의 「아카시아 길」에 묘사된 어떤 교외의 산뜻하고 행복해 보이는 정경은 잊히지 않고 있던 것으로서 영국에 온 김에 그 소재가 된 지역을 방문해보려고 하였으나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밀른이라는 이름조차 찾아낼 수 없었다. 에세이 분야에서 이름을 떨친 그렇게 많은 사람 가운데 겨우 찰스 램이 살던 집만이 영국의 남단 도시 라이라는 곳에 있어서 일반에게 공개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 이곳을 내가 찾아가고 싶은 곳들의 목록 속에 점지해 두고 미뤄 왔다.
영국 전역에는 크고 작은, 또한 형태와 양식에 있어서도 각양각색의 성(castle)들이 무수히 산재해 있다. 완벽한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부터 이제는 파괴되어 터만 남은 것에 이르기까지 내가 보아온 것만도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지만 아룬델 성을 택한 것은 이를 본 본토인이나 한국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한번 보아 둘 만한 아름다운 곳이라고 추천하는 데다가 램의 집이 있는 라이와 같은 방향이어서 하루 코스로서 두 곳을 잡아도 별로 무리가 안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곳 생활을 종결지으려 하니 체류 중에 해보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한 아쉬운 일들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것만은 하고 그리니치와 램의 집 그리고 아룬델 성 심방을 귀국 전에 할 나의 과제쯤으로 정하고 영국 생활을 마감하는 작업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이들은 단지 수첩에 메모해 둔 것에 의의가 있었을 뿐 하나도 가보지 못한 채 출발할 날은 다가왔다.
식솔들을 이끌고 공항 출국담당자 앞에 여권과 그동안 소지했던 외국인 등록수첩의 반납을 위하여 이를 함께 내미니 "끝났느냐?"라고 묻는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이곳에서의 체류를 끝내고 우리나라로 돌아간다."라고 대답하고 출국수속을 마치니 비록 내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3년여를 몸 붙여 살던 곳을 아마도 영원히 떠난다는 생각을 하니 무엇인가 계량할 수 없는 전율과도 같은 감회가 전신에 퍼져 드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적은 것이긴 하나 여기저기 맺힌 그동안의 정의를 거두고 또 한편으론 아쉬움을 남기며 떠난다는 것은 단순한 떠남의 의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냉엄하게 생각해 보면 애초에 돌아갈 것을 정해놓고 왔다가 때가 되어 떠나는 데 있어서야 마냥 감성에 젖어있을 일도 아니다. 우리가 탄 비행기가 힘찬 발진과 함께 이륙하여 본괘도에 진입, 영국이란 나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동안 승무원들은 음료수들을 나누어주는 등 부산하게 왔다 갔다 하며 감상에서 쉽사리 벗어날 수 있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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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몇 개월 만에 보는 서울은 생소할 게 별로 없었다. 이미 그 열 배가 넘는 37년간을 살아본 경험이 있는 나의 조국이기 때문이리라. 가까운 친·인척 중에도 몇 분은 타계하여 반길 길이 끊어진 반면 몇몇의 새 생명이 태어나 낯선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에 띄게 달라져서 놀란 것은 어쩌면 그렇게 전기구이 통닭은 씨도 없이 사라지고 켄터키 프라이 치킨이라는 것이 판을 치게 되었나 하는 것이었다. 저것은 무엇인가 하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본 적이 있는 흑염소·개소주 광고는 아직도 위세 등등 한데 간혹 토룡탕(土龍湯)이라는 생소한 것이 덧붙어 약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물겹도록 인상적인 것은 높다란 건물에 큰 글씨로 부동산 투기시대는 이미 아니라는 것과 '인플레와 더불어 살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하고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미리 겁먹고 어떻게 대처할 가를 여러 번 생각해 본 일이 있는 매연공해는 예상보다 덜 고통스러웠고 가장 확실하고 절실하게 느낀 것은 이 서울에는 감당하기에 너무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구나 하는 것으로서 이 생각은 자주 머릿속에 자리하곤 하였다.
기실 귀국하여 출근한 첫날은 다소 얼떨떨하기도 하였지만, 곧 우리 식의 불편에 익숙해져 갔다. 어느 일요일 아침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아름다운 우리 조국 금수강산은 그 밑으로 구석구석에 널려있을 쓰레기들은 보여주지 않았으므로 시종 뿌듯한 감동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질서를 지키자, 새 질서를 확립하자 하는 내용의 표어는 눈이 미치는 곳마다 TV의 표제 자막처럼 힘차게 확대되어 어지럽게 압박하지만, 여기에는 전혀 개의함이 없이 전부터 갖고 있던 좋지 않은 습관들을 과감히 버리려는 결의는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동행이 되어 더 멀리 가는 지기(知己)의 몇 푼 안 되는 버스요금을 적선이라도 하듯 내주겠다고 애쓰는 태도 등은 고쳤으면 하는 생각이 망령처럼 따라다닌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지만 어떠한 계기가 있어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니면 자주 맞닥뜨리더라도 못 본 체하려 하거나 원수진 사람처럼 외면하는 것, 그래서 서먹서먹한 사이가 되는 것을 흔히 보는 것도 할 일 없는 사람처럼 신경이 쓰인다. 국민학교 1, 3학년의 아이들이 저들의 대화에서 늘 써왔던 영어를 철저하게 배제할 뿐 아니라 그것을 입에 올리기를 거부하며 무서운 속도로 우리말의 구석구석에 도통하고 있는 것과 보조를 같이하여 귀국 후 1년 여가 지나는 사이에 영국에서의 기억들은 많은 부분이 희미해져 가고 있음을 절감하며 그곳에 관한 기록을 계속하려면 상당한 무리가 따를 것이란 생각이 든다.(8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