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스포츠와 국민생활
영국사람들처럼 스포츠를 좋아하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 축구 럭비 탁구 수구 등 수많은 근대 스포츠가 영국에서 발원하였으며, 또한 다른 많은 주종경기가 영국사람들에 의하여 오늘날과 같은 형식으로 완성되었다. 스포츠라는 말이나 스포츠맨십이라는 것도 이 나라에서 생성되어 세계 공통의 것으로 전파되었다 한다. 영국사람들이 이처럼 많은 스포츠를 개발 육성해 낸 결정적 요인은 이들이 선천적으로 무엇에서든지 '놀이'(disport)의 요소가 있으면 발굴해 내 즐기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얼음판 위에서 작은 맷돌 짝 같은 화강석반(花崗石盤)을 미끄러뜨려 보내 표적을 맞추는 컬링(curling)이라는 게임은 언뜻 보면 마당 쓸기 시합이라도 하는 양 선수들은 줄곧 미끄러져 나아가는 석반의 앞쪽을 정신없이 쓸어대는 것이다. 다츠(darts)라는 것은 주로 팝(pub; 일종의 선술집)에서 선수들이 맥주를 마셔가며 경기를 진행하고, 당구의 일종인 스누커(snooker)는 상대방이 신기에 가까운 솜씨와 컴퓨터로 조작한 듯한 정확성으로 대(臺) 위의 여러 색깔의 공들을 룰에 따른 순서로 하나씩 맞춰 모두 귀퉁이의 구멍으로 떨어뜨리는 게임이다. 그동안 상대방은 피를 말리는 듯한 긴박감 속에서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다가 게임이 끝나버리는 경우도 있다.
경마·마술·폴로 등은 사람이 말을 도구로 이용하는 스포츠라고 하면 사력을 다하여 뛰게 하는 그레이하운드의 경주는 동물만이 참여하는 경기라 하겠다. 일정한 지점에 양치기가 서서 건너편 산을 향하여 휘슬로 지시를 하면 이에 따라 그의 개가 산기슭으로부터 여러 마리의 양 떼를 정해놓은 코스를 따라 몰고 내려와서 우리 안에 가두는 경기는 양과 개와 인간이 삼위일체로 힘과 지혜와 기능을 합하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와 같은 기발한 스포츠들이 골든아워의 TV화면에 시리즈로 나타나 축구 크리켓 경마 럭비 골프 테니스 등 주종경기 못잖은 높은 흥미로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다. 물론 스포츠의 전 종목이 '보는 스포츠' 대상이라면 그중에서 대체로 축구 크리켓 골프 가든 볼링은 각각 청소년 장년 중년 노년층 사이에 일상생활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서 '하는 스포츠'이기도 한 것이 아닌가 한다.
영국에서 가장 대중화되어 성행하는 운동경기 즉 국기(國技)를 든다면 축구와 크리켓이라 할 것이다. 이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인기 있는가를 꼭 가린다면 축구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크리켓은 가장 영국 신사의 품위에 맞는 경기라 하여 그 인기 또한 대단하다. 축구나 크리켓은 이곳 사람들이 동네 곳곳에 잔디 구장을 갖고 여가 선용으로 즐겨하는 말하자면 동네운동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나 둘 사이에는 흥미로운 차이가 있다.
축구가 역동적이고 한정된 시간 내에 끝내는 비교적 단순한 경기인데 크리켓은 야구처럼 시간제한 없이, 그러나 한쪽 팀 타자 전원의 아웃으로 공수를 교체 진행하여 경기 자체는 지루하며 개인과 팀 기록에 흥미의 비중을 두는 복잡한 경기이다. 그래서 축구는 이로부터 유래한 럭비와 함께 청소년 일반 노동자 등 중하류층들이 더 열광하는데 비하여 크리켓은 골프와 더불어 관리직계급 등 상류층에 영합하는 스포츠인 듯하다. 우리 런던지점의 현지 직원만 하더라도 영란은행 출신으로 나이가 지긋한 고문과는 크리켓이나 골프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화제를 풀어나가는 실마리가 되는데, 딜러와는 축구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욱 친근감을 갖는 것이 된다.
크리켓은 하절기 경기로서 여름철 TV 화면을 독점하다시피 하다가도 가을이 도래하며 시즌이 끝난다. 늦가을부터는 축구가 시작되어 겨울의 싸늘한 하늘을 향해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면서 이듬해 봄까지 계속되기 때문에 누구나 두 종목 모두 즐길 수 있다.
또한 크리켓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서인도제도 등 영연방국가들끼리만 상대하여 경기를 벌리고 있는데 비하여 축구는 유럽 제국과만 노는 것 또한 흥미롭다.
영국 스포츠를 이야기하면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매년 한 번씩 거행되는 테니스와 골프의 전 세계오픈선수권 전이다. 골프는 1860년, 테니스는 1877년부터 각각 대회를 갖기 시작하였으니 백 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에 빛나며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선수권전으로 발전하여 각국의 한다 하는 선수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이 대회에 참가, 챔피언 자리를 넘보고자 하는 것이 꿈이리라.
오픈 론 테니스선수권대회는 런던의 윔블던 지구에 위치한 구장에서 거행된다고 하여 통칭 '윔블던 테니스'라 하며 센터 코트를 비롯하여 17개 면의 잔디코트로 되어있으며 특히 센터코트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잔디 구장'으로 오직 이 대회에 한번 사용하기 위하여 일 년 내내 손질해 놓는다고 한다.
골프는 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생겨나 15세기경부터 지금과 같은 요령의 경기로 성숙하였으며 1754년 22명의 귀족이 모여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클럽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세계최초의 골프클럽이다. 후에 윌리엄 4세가 붙여준 로열 앤 앤션트 골프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골프경기에 관한 총본부 격이 되어있으며 이의 주관으로 1860년 처음으로 오픈대회를 열어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테니스와 골프를 막론하고 근년에 와서 미국 세에 눌려 영국인의 이 대회에서의 우승 기대는 희박한 상태에 있으나 그 해 세계적으로 가장 우수하고 명예로운 선수는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하여 수많은 사람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이다.
영국사람들은 생활하는 가운데 무엇보다도 가장 흥미를 갖는 분야가 스포츠로서 이들에게 있어서 스포츠가 없는 생활은 빛 잃은 태양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은행 딜링 룸에 설치된 로이터 스크린에도 정해진 코드를 누르면 국내외 최신 스포츠뉴스를 알려주는 장치가 되어있다. 학교에서 한두 가지 스포츠를 하도록 의무화하여 하키 채를 들고 다니는 여학생이나, 자기가 속해있는 축구클럽 마크를 교복에 달고 다니는 남학생들을 흔히 보게 된다. 웰링턴 장군이 이끄는 군대가 "워털루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이튼 교정에서 익힌 축구 때문이었다"는 유명한 말도 있다.
스포츠는 체력과 기술이 근간을 이루며 그것을 겨루는 것이 기본이나 실상은 여러 가지 건전하고 유익한 정신력을 함양시켜 주는 데에 더 큰 의의가 있다. 인내와 용기, 순간적으로 내리는 정확한 판단.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으로서 이것이 있고 없음에 따라 그 게임의 사활이 좌우되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오죽하면 크리켓이란 용어 자체를 페어플레이의 다른 말로도 쓸까?
페어플레이 정신은 이들의 생활 속 깊이 뿌리 박혀 있어서 어린아이들조차도 조금만 사리에 어긋나게 대접받는 듯하면 즉각 반발하여하는 말이 "Its not fair."이다. 영국 의회는 여당과 야당 사이에 벌어지는 가장 흥미로운 운동 경기장이며 여기서 페어플레이로 요약·집결된 의회정치가 바로 이 나라 민주정치를 발전·정착시킨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국민은 공정을 존숭(尊崇)하게 되는 국민이 되는 것인가?(8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