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포스코의 힘
경주 일정을 마치고 포스코로 향하는 마음은 가뿐하고 다소 들뜬상태였다. 높고 푸른 가을 하늘 탓이기도 하겠지만 그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며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를 만난다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포스코는 포항종합제철로서 1968년 4월 창립식을 가졌으니 우리가 대학졸업과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의 초년병으로 일할 때와 맞물린다. 고O봉 이O공 전O효 세 동문은 이 무렵 입사하여 젊음을 다 바치며 평생 봉직하였을 터이니 창업공신이요 포스코 발전의 주역이며 산증인들이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이들 중에 지금은 포스코교육재단 이사장으로서 앞으로 나라를 이끌 젊은이들을 육성하고 있는 이O공 동문의 초청으로 포스코를 방문 견학하는 것이니 남다른 감회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정된 시각 10시 반에 맞춰 홍보센터 건물 앞에 내려 이 동문 부부와 제철소장 등 관계 직원의 영접을 받으며 일정이 시작되었다. 홍보센터에 설치된 대형 조감도를 보며 여러 공장 설비 및 부대시설의 역할 기능과 생산능력을 설명들은 뒤 김O림 회장은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방문록에「국민기업 POSCO가 빠른 시일 내에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 발전하기를 기원합니다」는 글을 남기고 본격적인 공장견학으로 들어갔다. 담당 직원의 숙달된 안내를 받으며 공장 외곽 높이 솟은 고로 등 시설을 둘러보고 「2 열연공장」 안으로 들어가 강판이 생산되는 공정을 직접 체험해 보게 되었다.
철 생산과정은 철광석과 원료탄을 고로에 넣고 섭씨 1,200도 정도의 뜨거운 바람을 불어넣어 쇳물을 생산하는 기초공정으로서의 1단계 제선공정과, 쇳물에서 탄소 인 유황 등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철로 만드는 2단계 제강공정, 액체상태인 용강(불순물을 제거한 쇳물)을 주형(mold)에 통과시켜 슬래브(slab) 블룸(bloom) 빌릿(billet) 등의 중간소재로 만드는 3단계 연주공정, 연주공정에서 생산된 슬래브 등을 회전하는 여러 개의 롤(roll) 사이를 통과시키며 연속적인 힘을 가함으로써 늘리거나 얇게 만드는 4단계 압연공정이 있다. 이중에 우리는 마지막 단계 압연공정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공장에 들어서자 큰 소음과 함께 열기가 후끈 끼쳐온다. 끝이 안 보일 정도로 곧게 뻗은 롤러 컨베이어 위로 화산 폭발로 생긴 용암을 연상케 하는 시뻘건 불덩어리 모양의 슬래브가 빠른 속도로 이동하며 얇은 강판으로 만들어져 마지막에는 롤 형태로 감기는 공정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보며 떠오르는 생각은 역동, 한마디로 「힘」이었다. 이는 산업발전의 원동력이고 또한 우리가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빠른 기간에 남에게 도움을 주는 국가로 도약한 국력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1973년 조강(粗鋼) 연산 103만 톤 규모의 1기 설비 준공 이후 10년 후 4기 준공으로 910만 톤까지 확장되었으며, 광양제철소와 함께 92년 대역사를 마무리하여 총 2,080만 톤을 생산하는 세계 굴지의 철강기업으로 도약 발전하였다는 기록이다.
조정래는 『태백산맥』『아리랑』에 이어 현대사를 조명한 대하소설『한강』에서 등장인물 이상재 기자의 취재 형식으로 포항제철의 설립과 박태준 사장에 대하여 「길을 바꾼 불기둥」이란 제목으로 한 절을 할애하여 꽤 비중 있게 다룬 바 있다. 이에 대한 한 독자의 「소설 『한강』에는 포철, 현재의 포스코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포철을 일구어낸 박태준 명예회장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묘사하시는 데요. 반면에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상반된 상황을 묘사하시는 데 걸림돌은 없었는지요?」 하는 질문에 작가는 이런 대답들을 했다.
「“우리 레닌 동지가 꿈꾸고 추구한 이상향을 저는 여기 포철에서 보았습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했던 꿈이 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모스크바 대학 총장 빅토르 사도브니치는 포항제철을 둘러보며 이렇게 감탄했습니다. (중략) 다 아시겠지만 모스크바 대학 총장이면 소련 최고의 지성이며, 소련공산당 최고급 당원입니다. 그런 사람이 자기네의 주신 격이며 최고최대 영웅인 레닌의 이름을 내세워 포철의 성취를 ‘이상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상향을 이루어낸 것은 누구입니까. 박태준입니다.」
「“제철소의 최신 설비와, 공장답지 않게 깨끗한 관리 상태도 놀랍지만, 그보다도 사원 주택단지와 학교들이 제철소와 가깝게 있으면서도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답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에 정말 놀랐습니다. 공장단지와 주거단지가 이렇게 쾌적하고 청결하게 조화를 이루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박태준을 왜 그렇게 극찬하는지 모스크바대학 총장이 밝힌 이유입니다.
그것은 더하고도 빼고도 할 것 없는 있는 그대로의 명확하고 뚜렷한 이유입니다.」
「“회사는 세우지도 않고 사원 주택부터 짓는다는데, 도대체 무슨 짓이오. 국가 기간산업을 시작도 못 해보고 망치자는 거요, 뭐요!”
국회에서 말썽이 일어났습니다.
“양질의 노동력은 강요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최고의 처우에서 나옵니다.”
젊은 박태준 사장의 단호한 대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원에게 최고의 처우를 제공하기 위해 주택과 아파트를 지어 개개인이 소유하게 했고,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학교까지 지어 사원 자녀를 무료로 가르쳤으며, 두 명의 자녀에게는 대학 학자금까지 베풀었습니다. 그러면서 포항제철은 아무 차질 없이 세워져 날마다 쇳물을 쏟아냈습니다. 사람을 보물로 여기는 참사람 박태준의 진정성이 이룩해 낸 성공이고 승리였습니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철은 ‘산업의 쌀’입니다. 1973년부터 오늘날까지 포스코가 양질의 강철을, 싼 값으로, 모자람 없이 대지 않았더라면 우리의 수출을 주도해 온 가전산업, 자동차산업, 조선산업, 각종 기계산업은 어찌 되었겠습니까.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이르기까지 포스코가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은 계산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박태준은 자원도 없고, 자본도 없고, 기술도 없던 3 무(無)의 상태에서 두 개의 거대한 제철회사, 세계 2위의 철강국가의 신화를 이룩해 낸 인물입니다.」
인용이 좀 길어졌는데 작가의 자전에세이 『황홀한 글감옥』에 실린 내용들이다.
영일만에서 신화를 창출하고 광양만에서 꽃 피워 세계적인 철강기업을 성취한 포스코인들의 이념과 혼을 보존하고 계승 발전시켜 회사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좌표로 삼겠다는 취지로 건립한 역사관에는 2차 대전 당시 롬멜장군 지휘소와 흡사하다 하여 ‘롬멜하우스’라 불린다는 초기 건설지휘본부 건물, 기공식에 쓰였을 하나의 날에 자루가 셋 달린 삽,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냈다는 철제 병풍 등이 전시되어 있지만 내가 가장 관심 있게 본 것은 조선시대 유명한 풍수학자였다는 이성지(李聖智)의 예언시라는 것이다.
어룡사(현재 포스코가 들어선 바닷가를 일컫는 지명)에 대나무가 나면(竹生魚龍沙), 수만 명이 살만한 땅이 된다(可活萬人地).
서양 문물이 동쪽으로 올 때(西器東天來), 돌아보면 모래밭이 없어지리라(回望無沙場).
하늘을 찌를 듯한 제철소 굴뚝이 대나무처럼 우뚝우뚝 서고 일대가 큰 도시로 변하여 많은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터전이 되었으니 이 시가 예언으로 적중했다고 보는 것이다.
견학을 마치고 비즈니스로 포스코를 찾는 손님들을 위하여지었다는 호텔 영일대연회장에서 이O공 동문이 친구들을 위하여 특별히 사적으로 마련한 오찬을 즐기며 환담을 나눴다. 이 자리에서 이 동문은 저출산 현상으로 학생들이 감소추세여서 더 늦기 전에 우리라도 직접 해결해야 하지 않겠냐고 농담 섞인 고충을 털어놨다. 농담 아닌 말로 우리야 괜찮지만 키를 쥐고 있는 사모님들의 반응이 문제일 것이다.
별장같이 아늑한 뜰 앞 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단체기념 촬영을 하고 내연산 보경사를 향해 포스코를 떠났다. 두 팔을 크게 벌리고 배웅하던 이 동문 부부의 모습이 어른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