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단상(斷想)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는 산행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도록, 내 나이 50이 다 되도록 지리산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 그간의 여건으로는 서울에서 하루나 이틀을 가지고는 도저히 결행할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멀고 큰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리산을 밟아보는 것이 오랜 꿈이었고 이 산에 관계되는 기록이라면 그것이 시가 되었든 소설이든 산행기이든 가림 없이 찾아 읽으며 그 꿈을 키워왔다. 지리산 안내도를 펼쳐놓고 도상(圖上) 산행은 또 얼마나 반복하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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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을 끝낸 남부군은 피아골을 출발, 임걸령재에 올라 다시 주능선을 타고 서쪽으로 방향을 잡고 노고단으로 향했다. (이병주 『지리산』)
소설 속 인물들의 이야기에 대한 흥미보다 살아 숨 쉬는 지리산의 숨결을 느껴보려는 기대가 더 크게 작용하여 대하소설 『지리산』을 읽은 바 있다. 6권까지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좀처럼 지리산의 실체는 등장하지 않아 실망감이 컸는데 마지막 7권에 이르러서는 빨치산들의 입산 이동 전멸과정과 함께 첫 장부터 끝까지 지리산의 구석구석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래서 아예 지리산 안내도를 옆에 놓고 짚어가며 마지막 권을 다시 정독하니 작가 후기의 첫마디처럼 ‘해방 직후부터 1955년까지 꽉 차게 10년 동안 민족의 고민을 집중적으로 고민한 무대’로서의 지리산 공부를 철저히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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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수백 번 오른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아직 지리산을 잘 모른다고 말한다. 횟수가 많아질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은 산이라고 말한다. (『山 』<91년 6월호>「지리산 개관」)
산을 안다면 무엇을 아는 것이며, 모른다는 것은 또 무엇을 뜻하는가. 산의 생태, 산의 역사 아니면 산의 철학인가. 그런 것이 다 무슨 상관되는 일인가.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길이나 알고 다녀오기에 어느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가를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춰 실행하면 족한 것이 아닌가.
이러한 과정에서 산의 풀, 새, 바위, 바람 소리, 나무, 때로는 나뭇가지 위에 걸린 초승달 또는 그 사이사이에서 반짝이는 별들과 교감하며 그 감흥을 소중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그토록 그리던 지리산에 처음으로 발을 들이밀 수 있게 된 것은 부산에서 근무하던 90년 6월이었다. 천왕봉을 최단 거리인 중산리코스로 올라 정상에 입산신고를 했다. 그 후 8월에 대성리계곡, 10월 반야봉, 이듬해 6월에 세석고원을 밟은 것. 지금까지 내 지리산행의 전부이다. 2백 회 또는 5백 회 이상 다닌 사람들과는 지리산을 밟고 익힘에 천양지차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을 대면하고서 갖은 감흥의 깊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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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전화(戰禍)에 의한 제1차 수난과 도벌에 의한 제2차 수난에 뒤이어 최근 개발이라는 제3차 수난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자연 그대로의 이 산을 개발하고자 함은 무슨 뜻일까? (김명수『지리산』)
산이 공원으로 지정된 뒤에는 으레 개발계획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계획의 실천에 따라 자연인 산은 가공 즉 훼손되기 시작한다. 아이러니이다.
자연은 자연스러워야 아름다운 것이고, 자연은 자연일 때 탐방 가치가 높은 것이다. 그런데 개발한다고 자연에 잘못 손을 대서는 분명한 훼손 오손행위가 된다는 것을 개발당국은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자연개발의 어려움이 여기에 있다.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잘 보존하는 범위 내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개발이 아닐까.
진입차도, 산장, 화장실, 안내판, 휴지통 등의 시설은 자연과 조화를 이뤄 눈에 거슬리지 않게 하려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개발이라는 표현으로는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나 원초적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문명의 쓰레기가 없도록 유지하고 가공한 것 같지 않게 자연 그대로를 잘 보존 관리하는 것이다. 지리산은 그 유명세 하나만으로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 몸살을 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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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워라
세석고원 구릉에 파도치는 철쭉꽃
선혈이 반짝이듯 흘러가는
분홍강물 어지러워라 (고정희 「세석고원을 넘으며」)
6월 첫 일요일 부산의 안내산악회들은 소백 덕유 지리 세석 등 대대적인 철쭉 산행을 계획하며 대목을 보려 하였을 것이다. 하필 이날 남쪽 지방에 전날 밤부터 줄기차게 내리기 시작한 폭우로 인하여 무릅쓰고 간다는 것은 무리일 뿐 아니라 하룻밤 사이 예약 손님이 발을 뚝 끊어 모든 산행은 취소되었다. 만약 이날 날씨만 좋았더라면 아마도 지리산은 철쭉꽃보다 더 많은 인파로 붐볐을 것이다. 나는 부득이 나흘 뒤 현충일 휴일을 기하여 세석을 찾게 되었는데 맑게 갠 날씨에 컨디션도 좋아 모든 게 잘 맞아간다는 생각이었다.
일행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오르고 있는 중에도 이미 세석 쪽에서 하산하는 축들도 많았다. 그들과 지나칠 때마다 “반갑습니다” “수고하십시오”등의 통례적인 수인사보다는 철쭉이 어떻더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어차피 올라가면 더도 덜도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볼 텐데 미리 김 뺄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철쭉의 상황에 대하여는 기대로서 간직하며 힘내어 올라가기 위한 촉진제로 삼기로 했다.
드디어 대망의 세석에 올랐으나 평전(平田)을 향해 눈을 비비고 보아도, 시원한 옹달샘 물을 한 바가지 쭉 들이켜고 기분을 새롭게 하여 다시 보아도 철쭉이란 온데간데없었다. 지난 주말 세찬 비를 흠씬 두들겨 맞고 꽃은 이미 다 떨어지고 더욱 싱그러워진 잎들만 무성할 뿐이었다. 그래도 크게 실망하지 않았던 것은, 산뜻해진 녹원(綠園)은 또 그 나름으로 신선한 아름다움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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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은 오랫동안 막연히 그려오던 관념의 산이었으나 서너 차례 다녀봄으로써 개괄적이나마 거대한 실체의 윤곽이 머릿속에 자리 잡힌 경험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앞으로는 시시로 변화하는 기후, 기상과 자리한 위치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여주는 장엄함과 세밀한 아름다움을 요모조모로 찾아 틈틈이 지리산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다. (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