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가까운 산(45)

by 김헌삼


힘겨운 금수산



시종, 올라탈 때나 내려올 때 모두 힘든 산행길이었다. 온 누리에 윤기가 흐르고 풍성함이 충만해야 할 계절에 오랜 가뭄으로 메마른 산하(山河)와 목마른 초목을 대하자니 더욱 고역을 치렀던 것 같다.

퇴계 이황이 ‘비단에 수놓은 듯 아름답다’ 해서 원래 이름 백운산 대신 금수산(錦繡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단양군수를 지냈던 선생이 가까이 있는 이 산을 자주 둘러보고 느낀 소회(所懷)이리라. 김형수의 『한국 400산행기』에 금수산 편을 찾아보면 ‘명산 금수산은 산 명에 걸맞게 비단에 수를 놓은 것같이 고운 산에 단풍이 들면 수많은 백암(白岩)과 어우러져 황홀하고 초여름 녹음의 색깔 또한 너무나 선명하고 아름답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찾은 시기가 여름도 아니고 가을이라 하기도 어중간해서인지, 10여 개의 코스 중 용추계곡으로 하여 용담폭포를 거쳐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으로 오르기로 했다. 금수산 정상을 밟자마자 내리꽂는 정낭골코스 등 두 곳만 겪어보고 무어라 말하기는 지극히 자제할 사항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저 고역을 애써 견뎌내고 있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꾸준히 발걸음을 옮김으로써 이 시련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당일로 일정을 끝내야 하는 점, 일단 금수산을 목표로 하였으니 정상 표석을 옆에 하고 포즈를 취하던지, 직접 밟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회원들의 성향을 고려하여 코스 선택을 하다 보니 이 산의 특징적인 아름다운 포인트가 본의 아니게 빠졌는지는 모르겠다.

‘숨은 비경 용담폭포’라는 표석을 우람하고 멋진 돌에 아로새겨 우뚝 세워놓았지만, 우리가 똑똑히 본 폭포의 모습은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듯 한 가닥의 가녀린 물줄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쫄쫄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 수직 바위에 붙여놓은 나무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926고지의 망덕봉 턱밑까지 1시간 반인지 2시간 동안인지 계속하여 유격 훈련의 한 과정을 치르듯 암릉을 힘겹게 올라야 했다.

지나야 하는 바위를 앞에 두고 우물쭈물하는 일행 손을 잡아주거나 힘겨워 보이는 여성 대원의 엉덩이에 감히 손을 대 받치며 오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려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띄고는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암릉 중간쯤에 올랐을 때 왼편 저쪽 능선 위에 우뚝 선 기암(奇巖)이 두엇 눈에 잡혔다. 그것은 산행지도에도 표시되고 이 산의 대표적인 경관사진으로도 낯익은 족두리바위와 독수리바위에 틀림없을 것이다. ‘리’자 항렬이니 남매바위라 칭해도 무방할 듯하다.

도대체 요즘 왜 이렇게 대책 없이 가문지 모르겠다. 나무에 매달린 과일들에 단맛을 더해주고 들판의 곡식이 알차게 익게 하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며칠 전 다녀온 고향의 저수지 물도 바짝 줄어 바닥을 드러낸 부분이 한없이 넓어 보였었다. 이곳 산골짝과 멀리 보이는 충주호도 계곡이나 호수다운 면모를 상실할 지경에 이르렀다. 산중에도 발길에 먼지가 뽀얗게 일고 나뭇잎들은 생기도 윤기도 없이 시들한 모습이다.

우리는 그동안 나이 들어가면서 몸 사리고 비교적 짧고 쉬운 코스만을 골라 다니다시피 했었는데 오랜만에, 실로 오랜만에 임자를 단단히 만난 듯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다. 친구들을 감언이설로 데려와 안 할 고생을 시키는 것 같아 미안스럽고 후회되기도 하였다.

망덕봉 턱밑 880고지에서 우회하여 도달한 망덕봉과 금수산 정상 사이 우묵한 곳이 얼음골재라는 고갯마루였다. 상천휴게소를 떠나 약 2시간 반 만인 12시 50분경이 되었으니 여기에 모두 자리 잡고 뱃속을 달랬으며, 식사 후 모여 추억으로 남길 한 장면을 사진에 담기도 하였다.

얼음골재에서 북쪽으로 넘어가면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이고 남쪽으로 바로 곤두박질치면 동문내를 거쳐 애초에 시작했던 용담폭포로 직행하는 어댕이골이다. 하산 길로 이쪽을 택하면 거리와 시간을 상당히 단축하고 따라서 힘도 크게 비축하는 것이련만 그렇게 하면 불과 25미터 높이를 앞에 두고 정상을 밟지 못하니, 당장 몸 편하겠다고 두고두고 맘 불편할 일은 안 하려는 듯 서로들 남의 눈치만 볼 뿐 지원자가 한 명도 없나 보다.

모처럼 여기까지 와서. 언제 또 오랴. 보아하니 일행들도 대부분 체력의 전성기는 지난듯하여 차후 다시 와서 저기까지 가리라고 보장하지 못함을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 터이다. 절정에 이르러 사정(射精)없이 사정(事情) 안 두고, 한 것도 그렇다고 안 한 것도 아닌듯하게 내려가는 것 같은 찝찝함은 싫다는 태도들이다.

산행에 있어서 정상을 밟는다는 것은 상징적인 것 외에 무슨 특별한 뜻이 있을까? 그러나 허영 같은 그 상징성이 때로는 삶의 목적으로서 온 힘을 기울여 다가가려는 목표가 되기도 하는 것이 아닐까.

정상을 거치고 직하하는 정낭골 하산로는 빠른 만큼 급한 경사 길이었다. 게다가 날카롭게 잘려나간 뾰족뾰족한 돌과 바위들이 질펀하게 깔리고 널려있어 그것을 요리조리 피해 딛으려니 여간 신경 쓰이고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우리 주위에는 원만하고 두리뭉실한 성향의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나고 날카로운 성격을 지닌 인물도 섞여 있듯이 돌들도 둥글고 부드러운 것과 칼날 같고 뻣뻣한 것들이 공존한다. 이런 날카로운 상대 앞에서 화를 면하려면 늘 신중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일행은 비록 힘은 들었지만 모두 끝까지 무사히 내려왔다. 험한 만큼 조심하고 신중한 산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고는 오히려 험한 곳보다는 평탄한 곳에서 잘 일어난다. 넘어져 다치는 사람은 급한 경사 길보다 마지막 평지에서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가.

무려 네 갈래 길이 용담폭포 부근에 모여들게 되어있고 폭포 표석이 있는 데까지 도달하니 하산이 끝났다는 분위기이다. 여기서 주차장까지도 20여 분 소요되는 만만찮은 거리이지만 누렇게 익은 황금들판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길 왼쪽 논배미는 벌써 베어져 묶인 볏단이 군데군데 서 있다. 보는 마음이 뿌듯하고 그동안 힘들었던 생각들은 어느새 머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었다.

멋모르고 달려들어 뜻밖의 고행을 겪었으나 우리도 하겠다고 마음잡으면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앞으로 낯선 산을 찾을 때 함께한 우리 친구들은 어려움의 강도를 아마 이렇게 물으리라. ‘금수산과 비교해 어떠냐?’ 고.

나로서는 언젠가 기회가 닿으면 코스를 바꿔 다시 찾아오고 싶다. 오늘 비록 공감에 실패했지만 퇴계선생이 아름답지 않음을 아름답다 할 사람도, 그렇게 심미안이 무딘 인물도 아니란 생각이거니와 후세 사람들도 듣기 좋게 하려고 그의 말을 두고두고 인용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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