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산에 가기
어느 산으로 갈까, 누군가와 함께 떠날 것인지, 아니면 혼자 결행할 것인가에 따라 산에서 갖는 분위기와 체감이 각각 다르다.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떠들썩한 코스에서 갖는 산행의 맛과, 우리 일행 몇 명만이 걷는 한적한 길, 또는 나를 빼놓고는 아무도 없는 외로운 산길에서 느끼는 감흥에는 큰 차이가 있다.
산악회에서 모집하는 그룹산행을 따라가면 일행들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선두와 후미 리더의 인솔하에 서로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아연 활기를 띠는 한편, 두서너 명의 가까운 사람끼리 모여 가는 동반 산행은 동행자 사이에 여유 있게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조용한 정겨움이 교류되는 오붓함이 있다.
그런가 하면 홀로 말없이 걷는 호젓한 단독산행은 오로지 대자연인 산 그 자체와 폭넓게 대면하는 가운데 느끼며 떠오르는 많은 생각을 정리하고 깊이 새겨보는 좋은 계기가 된다. 나는 이 산 저 산 바꿔가며 여러 형태의 산행을 고루 하는 편이지만 단독산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에 갈 기회가 마련되었을 때 홀로라고 해서 꺼리지 않는다.
「단독산행이란, 집 뒷산을 오르는 새벽의 조기 산행이나 건강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별다른 생각 없이 반나절 또는 한나절 도시 근교의 산언저리를 산책 정도로 걷는 산행, 혹은 산에는 가고 싶으나 동료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혼자 산행을 하게 된 그런 경우가 아니라 적어도 산에서 홀로 하룻밤 이상을 지내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산행이다.」
이렇게 어느 등산 전문가는 단독산행을 한 차원 높여 논하려 하지만 나는 전문적인 산악인이 아니며 더욱이 산에 가는 것은 여가에 국한되어 있으므로 내가 하는 단독산행은 오히려 앞부분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한적한 코스를 골라 산행 친구들과 함께 가기를 약속했는데 갑자기 많은 비가 쏟아지는 악천후로 돌변하면 ‘우천불구’라고 미리 못 박아 놨어도 이런 핑계 저런 구실을 내세워 예약했던 동행들이 모두 못 간다고 떨어져 나가고 나면 홀로 남은 나는 어쩔 수 없이 단독산행을 결행하게 된다.
언젠가는 지방으로 출장을 갔는데 마침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 부근에 평소 가봤으면 하던 산이 있어서 새벽 이른 시간을 짬 내어 흡사 낯선 암자를 찾아가는 객승처럼 그 산을 혼자 올라간 적도 있다.
한 번은 산악회의 안내 산행을 따르기로 예약하고 출발장소로 가보니 간밤부터 비가 몹시 내리기 시작하여 그칠 기미는 전혀 없고 또 일기예보조차 호우주의보가 계속 발효 중이어서 가기로 했던 손님들 대부분이 나타나지 않아 모든 산행이 취소되는 일이 있었다. 나는 일단 이날 산에 가기로 맘먹고 우중에도 배낭을 꾸려 내친김이니 할 수 없이 가까운 산행지를 즉석에서 물색하여 혼자 다녀오기도 했다.
단독산행을 할 때, 특히 인적이 없는 산길을 홀로 걷노라면 자연은 더욱더 확실하게 더 친근감 있고 정겹게 나에게 다가온다. 들리는 새소리는 더욱 영롱하며 그 새가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두리번거려 찾아보게도 되고 길가에 함초롬히 피어있는 가련한 야생화에 다정한 눈길이 쏠리고 또 그 이름도 알고 싶어 한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산, 그것도 깊은 산이라면 홀로 갈 마음이 선뜻 내키는 것은 아니다. 혹시 산속 깊이 은신해 있던 악인(惡人)이 불쑥 튀어나오지나 않을까, 길을 잘못 들어 낭떠러지에서 실족하면 큰일인데, 급격한 기상변화로 위험 속에서 헤매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독산행을 결행하는 것은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마음 내키는 대로, 발길 놓이는 대로, 힘닿는 대로 걷다가 아무 때 어느 곳에서나 쉬고 싶으면 거리낌 없이 쉬고 다시 가야겠다 싶으면 부스스 털고 일어나 그때그때 발길 닿는 곳을 향하여 떠나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래전부터 혼자 다니는 데에 어느 정도는 익숙해 있다. 중학 시절 여름방학에 고향에 내려가 있으면 집 앞에는 해발 680의 성주산(聖住山)이 마치 도전이라도 해보라는 듯 크게 버티고 있다. 제법 높은 산이므로 만만치는 않지만 아무런 준비도 장비도 없이 어느 날 훌쩍 산초 판자 떨어진 돈키호테처럼 길을 나선다. 사람들의 마을은 차차 멀어져 가고 주위가 고요해지기 시작하면 여러 가지 무서운 생각들이 착잡하게 엇갈리며 바짝 긴장되었던 것은 미성(未成)의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천년의 고독 같은 외로움과 쥐도 새도 모르게 무엇인가에 잡혀갈 것 같은 두려움에 다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생각이 언뜻언뜻 스치는데 하지만 애초에 그럴 마음으로 집을 나섰던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우러진 칡넝쿨, 으름덩굴, 밀림처럼 늘어진 산포도 머루 등속의 나무줄기들을 헤치며 나아가다 불쑥 가로막는 가시나무를 만나 긁히기도 한다. 발길이 한층 무겁고 둔해지지만 물러서지 않는다. 어른거리는 호랑나비, 파닥이는 실잠자리의 가녀린 날갯짓, 톡톡 튀어 멋대로 달아나는 작은 풀벌레들의 움직임은 산의 정적을 더욱 깊이 느끼게 할 뿐이었다. 이때 이름을 알 수 없는 새의 찢어지는 듯 두어 마디 울음에 한낮의 고요가 일순간에 깨어지기도 하는 심심 산속.
정신없이 헤매다가 마침내 정상 부근 시야가 탁 트인 능선에 올라서면 그동안의 역경과 초려(焦慮)를 극복한 성취감에 이제 두려움은 모두 사라지고 온 누리를 발아래에 굽어보며 한층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었다.
혼자 외로운 산길을 가며 부딪는 자연은 예사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은빛 억새꽃 무리를 물결치듯 쓸고 가는 스산한 바람, 강하고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를 내며 천군만마의 진군처럼 영마루를 질주하는 북풍한설, 어느 양지바른 산자락에 연약하게 자라난 작은 풀꽃의 끈질긴 생명력, 찌는 듯이 더운 날 시원스레 내리꽂는 폭포수의 우렁찬 굉음 등은 여럿이 떠들며 만났을 때보다는 홀로 차분히 대면하였을 때 갖는 감회가 더욱 진하지 않던가.
아무 때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단독산행을 주저 없이 할 수 있으며 그것을 또한 즐길 줄 아는 사람만이 산의 아름다움, 산의 장쾌함, 그리고 산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를 누구보다도 더 많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고 한다면 독단의 생각일까?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