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대륙횡단 개요
앞으로 약 보름동안 자동차 여행을 할 출발지 시카고. 떠나기에 앞서 어느 정도는 봐둬야 시카고에 갔었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낮에는 워밍업 하듯이 운하처럼 생긴 시카고강을 끼고 1시간 반 동안 설명을 들어가며 각양의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감상하는 아키텍츄럴 크루즈(Architectural Cruise)를 했고, 내일 길을 떠나면 어떨지 모르니 오늘은 잘 먹자 해서 다운타운의 숙소 주변에서는 가장 입맛에 맞을 것으로 생각되는 일식집 베니하나[紅花]에서 철판구이로 만찬을 즐겼다. 이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어스 타워와 생김이 너무나 흡사하여 곧잘 혼동되는, 좀 낮기는 해도 야경은 오히려 더 좋다는 죤 핸콕(John Hancock) 96층 꼭대기로 옮겼다. 칵테일을 시켜놓고 저물어 가는 그리고 보석처럼 빛나는 밤경치를 내려다보며 각자 내일부터 시작하는 여행이 원만하게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다음날 9시가 되기 전 허츠(Herz)에 가서 예약한 대로 마쯔다 7인승 미니밴을 빌려 세 가족의 숙소를 돌며 보름간 각자 갈아입을 옷과 먹을 것들이 담긴 짐을 실으니 사람들은 간신히 끼어 타야 할 지경이다. 보기로는 도저히 다 싣지 못할 것 같았는데 그래도 모두 우그려 넣어진 것만도 다행이다. 10시가 조금 안된 시각에 대장정의 출발시동은 걸렸다.
우리가 간 루트와 숙박 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시카고를 출발 I-88S를 타고 가다가 I-80W와 합류하여 아이오와주 수도 데모인(Des Moines)에서 1박, 다음에 오마하, 노스 플랫 등으로 계획은 되어있었으나 미리 예약을 해놓은 6월 2, 3일의 옐로스톤 두 숙박지와 6월 6, 7일 커냅의 숙소만 맞춰 가면 되고 나머지는 그날의 컨디션과 볼거리에 따라 신축성 있게 운영하게 된다.
그래서 28일은 예정했던 오마하보다 훨씬 더 가서 네브래스카주의 그랜드 아이얼랜드(Grand Islands), 29일 I-70으로 갈라져 콜로라도의 포트 모간(Fort Morgan), 30일 콜로라도 수도 덴버경유 I-25S를 타고 콜로라도 스프링스(Colrorado Springs)에서 1박 한 후 다시 I-25N으로 올라간다. 시카고에서 덴버까지의 직선거리가 1천 마일, 그러니까 1천6백 킬로 4 천리길이다. 이 구간에 꼬박 나흘 걸렸으니 하루 평균 천리씩 달린 셈이다.
덴버까지 오는 동안은 주로 광활한 벌판이다. 때로는 숲, 농토, 초지 그리고 사막이라 해도 괜찮을 황무지가 끝없이 펼쳐져 있어 달리고 달려도 쉽게 벗어나지지 않는다. 콜로라도주에 들며 높지는 않지만 구릉지대가 나타나고 덴버에서는 3천 미터 급 록키 산맥의 흰 눈 덮인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하니 세상이 확 달라진 기분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를 거치게 된 것은 여기에 공군사관학교와 「신들의 정원(Garden of Gods)」이라는 꼭 봐야 할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31일 도시라고도 볼 수 없는 한촌(寒村) 와이오밍주 척워터(Chugwater), 6월 1일 로컬로 들어서 옐로스톤을 지척에 둔 코디(Cody)에서 1박. 2, 3일은 예약한 대로 옐로스톤에서, 4일은 89를 타고 한참 남하하다 아이다호와 유타의 접경이지만 살짝 유타주에 속해있는 베어 호반(Bear Lake)에 위치한 가든 시티(Garden City)에서 하루를 묵게 된다. 아이다호주는 1시간도 안되게 걸치기만 해서 잠이라도 자고 자취를 남기려 전망 좋고 아담하며 깨끗한 하얀 집을 찾아냈으나 비싸게 불러 그만 물러난 것이 아쉽다.
솔트레이크시티를 지나고 나서는 곳곳에 붉은 협곡[Canyon]이 있는 지대로 들어서서 5일은 토리(Torrey), 6, 7일은 예약되어 있는 커냅(Kanab)의 개인집 록 커티지(The Rock Cottage)에서 자게 된다. 이 일대는 캐피톨리프(Capitol Reef), 글렌캐년(Glen Canyon),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 시다브레이크(Cedar Breaks), 자이언(Zion) 등등 줄줄이 국립공원들로 자연이 만들어낸 위대한 예술품 일색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커냅을 떠나 1시간도 채 안되어 애리조나주와의 경계에 레이크 파월(Lake Powell)이 걸쳐있다. 이렇게 큰 호수를 형성하는 것은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크다는 글렌캐년 댐이 있기 때문이다. 파월 호는 애리조나와 유타가 걸쳐있고 애리조나에는 원주민인 인디언들 보호구역이 많아 파월 호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서성이는 사람들에 이들이 많이 섞여있다. 우리는 파월 호반의 도시 페이지(Page)를 지나며 잘만한 곳이 나오는 대로 잠자리로 삼겠다고 하였지만 가도 가도 숙소 비슷한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좀 더 세밀한 지도상에는 시다릿지(Cedar Ridge)나 갶(The Gap)이라는 곳이 표시되어 있었으나 숙소가 될만한 것은 눈을 비비고 봐도 없다.
다음으로 기대해 보는 것이 카메론(Cameron)이었으며 여기도 잘 곳이 없다면 또 기약 없이 얼마를 더 가야 할지 모른다. 이미 어두워진 지 오래였으며 이곳은 멀리서 봐도 불빛이 많은 것이 숙소가 될만한 장소가 없을 수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다행히 있기는 했다. 그러나 기대한 것처럼 많은 것은 아니었고 주변을 몇 번 둘러봐도 카메론 랏즈(Cameron Lodge) 한 군데뿐이다. 그러나 다행히 빈방이 있었고 알고 보니 건물의 모양이나 내부구조 등이 오히려 일부러 라도 찾아올 만큼 훌륭한 것이다. 더욱이 나는 여기서 다음날(6월 9일) 아침 지평선으로 해가 떠오르는 장엄한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지나온 시다릿지나 갶과 함께 이곳은 인디언 보호구역으로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들이다.
카메론에서 그랜드캐년은 1시간 거리. 역시 그랜드캐년은 장관이었으며 여러 각도에서 보느라고 많은 시간을 소비했으며 64번과 I-40이 만나는 지점의 윌리엄스(Williams)에 일찍이 숙소를 정하고 쉬기로 한다. 우리는 며칠간 변덕스러운 기후에 시달려야 했다. 전날은 땡볕에 뜨거워서 허덕였으나 이날은 또 바람이 세게 불고 추위를 느낄 정도로 기온이 뚝 떨어져 떨리는 몸을 가눠야 했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다음날(6월 10일)은 또 열사와 같은 혹서를 견뎌야 했으니 이렇게 시달리면서도 병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무지막지하게 큰 호텔 엠지엠 그랜드(MGM GRAND)에서 하룻밤을 자고 11일 6시경 LA의 한인이 운영하는 것이라는 한남슈퍼 앞에서 우리는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덴버에서부터 여러 국립공원을 돌며 13일간 LA까지 달려간 거리가 어림 잡아 2천5백 마일로 시카고부터 따지면 3천5백 마일(5천6백 킬로)로서 1만 4천 리를 달린 셈이다.
각지에서 시카고로 몰려들었던 우리는 자나 깨나 붙어 다니다가 이제는 달리 만나 보아야 할 사람들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지 않을 수 없다. 예상보다 늦게 LA에 도착하는 바람에, 각자의 연고자가 너무 오래 기다렸기 때문에 해단식이라 할 특별한 의식을 치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