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삼삼회 시카고에 모이다
우선 삼삼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동일이와 철호 그리고 나는 각각 다른 은행에 다니고 있었지만 90년인가 91년인가 같은 시기에 부산지역의 지점장으로 부임하여 홀아비 생활을 함께 하고 있었다. 게다가 숙소도 걸어서 서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남천동 바닷가, 같은 동네여서 서울 집에 가지 않는 주말에는 자주 만나 인근의 산들을 다니고 돌아와 저녁을 같이 한 후 주로 동일이 방에 모여 바둑을 두다 헤어지고는 했다. 이렇게 맛 들인 산행을 서울에 와서도 계속하게 되고 나중에는 아내들도 끼어 정례화하면서 산행 후에 먹는 점심값을 매번 서로 내겠다고 신경전을 벌이느니 회비를 갹출하여 경비로 쓰는 것이 간명하고, 자연히 기록 관리가 따르고 그러자면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 편할 것은 정한 이치였다.
모임의 명칭을 짓는데 우연히 아내로 두고, 아니 모시고 있는 세 여자의 이름이 모두 '숙'으로 끝나 「삼숙회」로 하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아무리 여성우위시대라 해도 남자들도 버젓이 눈뜨고 있고 따지고 보면 남자들 때문에 이런 모임이 생겼는데 그놈들을 아주 떼어버리고 이름을 짓는 것은 너무한 것 같았다. 또 한 가지 껄끄러운 점은 그렇게 되면 내 이름의 '삼'과 우리 집사람의 '숙'을 합한 꼴이니 우리만의 회로 오인될 우려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잡티 하나 없이 여자 셋 남자 셋을 대등하게 놓아 『삼삼회』라 하니 삼삼한 모임이라는 의미도 자연히 나타내게 되었다.
우리는 모이면 서로들 여기 가자 저기 가자 생각나는 대로, 앞뒤 생각 없이 늘어놓았으며 그래서 대부분이 말로 끝났지만 그런 와중에도 세어보면 꽤 다양하게 다녔다. 굵직한 것만 꼽으면 일찍이 대청봉 등정을 무난히 해냈으며, 외진 섬 홍도에 가서 하룻밤 자고 오기도 했고, 남도 1번지라는 목포 해남 부근도 섭렵하고, 남자만의 자리였고 돌아올 때는 기진맥진했지만 지리산 천왕봉도 확실하게 찍었고, 또 한라산에 올라 환상의 눈꽃을 보고오기도 했다.
이럭저럭 공식기록으로 일백 회를 넘게 되고 그 기념으로 미대륙횡단의 꿈같은 이야기가 누가 꺼냈는지 모르게 튀어나오더니 마침내 실현단계에 온 것이다. 그것은 동일이와 우리 집 애의 학교 졸업이 원동력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차피 그때는 한번 가봐야 하고, 가는 김에 자동차 여행을 해보자는 것이었고 우리 백수들이 시간은 넉넉하니 기왕이면 길게 뽑는 것이 결국은 싸게 친다는 것이었다. 동일이 부인 정여사의 물불 안 가리는 밀어붙임이 가속화하면서 일은 마침내 성사단계에 들어섰다.
원안대로 대서양 쪽 워싱톤에서 시작하여 태평양 연안도시 LA에서 끝내야 온전한 대륙횡단이라 할 수 있으나 나는 개인적으로 미시간의 큰처남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어 거기서 불과 2시간 거리의 시카고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동일이 딸 지희의 졸업식이 5월 23일 워싱톤에서 있어 그것을 끝내고 오자면 25일쯤이 적당하다고 했고, 철호와 나는 여유로운 시간을 거기에 맞추면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각자 무슨 큰 일을 저지르기로 약속한 사람들처럼 동일이는 워싱톤을 떠나 디트로이트를 거쳐, 나는 내시빌을 일찍이 출발하여 미시간주 세인트 조셉 처남 집에 며칠 머물고 있다가, 철호는 서울 본부를 막 바로 떠나 긴 여정 끝에 5월 25일 한날 시카고에 모여들었다. 그리고는 "야! 우리가 여기서 이렇게 만나는구나." 하는 한편으로는 얼 띠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철호가 묵을 호텔 로비에서 만났다. 우리가 만난 당일은 몸도 추스르며 각자 자유롭게 보내다가 다음날 2시에 모여 공식행사에 들어가기로 했다. 공식행사란 6인 1조 부대행동으로 스타트의 총성을 발하는 것을 뜻하며 이제부터 일체의 비용은 세 가족으로부터 갹출한 공금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사실상 우리의 여정은 5월 26일 리버 이스트 플라자(River East Plaza) 북 부두에서 시발하는 아키텍튜럴 크루즈(Architectural Cruise)의 출발신호로부터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