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17)

by 김헌삼


17. 미국은 어떻게 발전했나


나는 이 거창한 주제 앞에 당당하지 못하다.

미국이 어떻게 성장 발전해 왔나 한 번 말해봐, 하고 채근한다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내 나라 챙겨보기도 벅찬데 남의 나라 사정을 평소 깊이 생각해 본 것도 아니고 지금이라도 무엇이라고 집어내어 “내 의견은 이러하오” 할만한 자격과 능력이 미약하다.

그럼에도 감히 이러한 제목을 취한 것에 대하여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이다. 그것이 바로 「파이오니어 빌리지(Pioneer Village)」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27일 밤을 데모인에서 묵고 다음날은 네브래스카로 들어오자마자 맞게 되는 오마하(Omaha)에서 또 하룻밤을 보내기로 계획했는데 원래 여기까지는 거리가 짧기도 했지만 이 도시에 너무 일찍 도착하고 그렇다고 여기서 달리 할 일이 있는 것도 숙소를 정해놓은 것도 아닌 막연한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더 멀리 갈 때까지 움직이다가 적당한 곳이 나타나면 거기서 머무르기로 했다. 그런 가운데에도 각자 그 적당한 곳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었기 때문이었을까? 철호가 불쑥 말한다.


“파이오니어 빌리지라고 있더라.”

“그게 뭔데?”

“거기 모텔이 있다고 돼있어. 방도 많고.”


그 파이오니어 빌리지라는 곳은 아직 멀리 있었고, 그전에 숙소를 찾아보기 시작해야 할 시간, 저녁 6시가 되어올 무렵 그랜드 아이얼런드 부근에 몇 군데 숙소 표시가 나타난다. 어디 한번 잘만한 곳인가 보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어서 여기서 후리웨이를 이탈, 멀지 않은 위치에 이름도 거창한 USA인(USA inns of America)이 있다. 이름은 거창한데 한눈에 들어오는 모습이 대체로 초라한 인상이다. 그래도 이 모텔에서 유숙하기로 결정할 만한 중요한 메리트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옆에 호수까지 끼고 멋지게 펼쳐 보이는 공원이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이렇게 두 끼의 식사를 시원한 공원에서 상쾌한 기분으로 하였음은 물론이다. 바람이 세게 불어와 몸이 흔들리도록 시원하기는 하였지만. 이곳이 「Mormon Island State Recreation Area」라고 옛날에 몰몬교도들이 6.25 때 우리의 피난 행렬처럼 지나다가 머무르던 지역일 터이다.

USA인에서 일박하고 출발하는 우리 앞에 다음날도 파이오니어 빌리지 간판은 계속하여 시선을 끈다. 그런데 다시 보니 이제는 숙소로서가 아니라 볼거리로서 다가오는 것이었다. 똑같은 광고판인데도 어제는 모텔이 부각되던 것이 오늘은 관광지로서 소개되는 부분이 눈에 띈다. 크게 내세우는 캐치프레이즈가 「미국, 어떻게 발전했나」(The story of America and how it grew)이었다. 279번 출구를 빠져나가 12마일 지점에 있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으나 하이웨이를 이탈하여 만나는 길에서 왼쪽으로 꼬부려야 할지 오른쪽으로 그대로 따라가야 할지 안내가 없다. 그렇다면 길 따라가면 되겠지 하고 오른편으로 간다.

오른쪽으로 따라가면서도 조금만 더 있으면 나오겠지, 조금만 더 하다가 결국은 낌새가 이상하여 어느 공장 마당 같은 곳에서 차에 올라타려는 사람 하나를 겨우 붙잡아 물어보고는 우리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다. 도로표지가 잘 되어있다는 미국도 완벽한 것은 아닌 것인지, 우리 머리가 못 따라가서인지 헷갈리게 되는 요소들이 가끔씩은 나타난다. 그래서 워낙 먼 거리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애매할 때는 물어봐 답을 구함이 상책이고 빠를수록 상지상책이다.

I-80상에서 파이오니어 빌리지가 위치한 민든(Minden)까지 12마일 구간은 모르몬교도들이 정처 없이 가로질러 흘러가던 길이었으며, 포니 익스프레스가 급한 소식을 갖고 바람을 가르던 벌판이기도 하다. 수많은 들소 떼들이 귀중한 생명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마냥 질주하기도 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길옆에 세워놓은 표지판에서 알리고 있는데 빠른 속도로 자동차를 몰아가다 보니 미쳐 꼼꼼히 읽어볼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어렵게 찾아간 빌리지 매표소 앞에서 우리는 또 주춤하지 않을 수 없다. 1인당 입장료 9달러가 만만치 않게 느껴졌고, 그렇게 지불하고 들어간다면 그 값에 걸맞도록 보고 소화해야 하는데 5만 점 이상 되는 전시물을 언제 다 꾀어보느냐는 것이었다. 고증을 거친 물건들을 20 에이커의 땅 28개 건물 안에 발전 단계별로 전시해 놨으며, 옛날에 쓰던 모양을 재현한 모든 기계들은 작동까지 가능한 상태로 준비해 놨고 몇 점은 버튼을 누르면 돌아가게 되어있다고 팸플릿에서는 전하고 있다. 「네브래스카 넘버 1의 볼거리」(Nebraska's #1 Attraction)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말하자면 1830년이래 오늘날까지 이르는 동안 물건들을 어떻게 개발하여 사용했으며 어느 정도 수준 높은 생활로 발전해 왔는지를 요모조모로 보여주는 전시물이 있을 터였다. 우리는 진열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몇 점만 둘러보고 미련 없이 돌아서기로 했다.

지금의 미국은 어떻게 하여 있게 되었는가? 충실한 공부를 하려면 한이 없겠지만 대충 이것저것 들쳐보며 생각해 본다.

아메리카 대륙에 인류가 처음 들어오기는 지금부터 약 3만 년 전, 당시는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베링해를 통해서였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륙에 잠입한 이들은 일부는 가까운 곳에 적응하고 일부는 따뜻한 다른 곳을 찾아 남하를 계속하여 대륙 전역에 퍼져 살게 된다. 이들은 농사도 짓고 사냥도 하며 조용하게 살고 있었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여왕 이사벨라의 지원을 받아 1492년 발견한 이 대륙이 인도인 줄 알았듯이 이곳에 이렇게 오래전에 정착해 살던 이들도 인도인으로 오인하여 불리게 된 인디언이다.

평화롭던 이곳에 회오리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부터이다. 스페인을 필두로 유럽인들의 미 대륙에 대한 탐색과 탐험은 끊임없이 계속되고 줄줄이 사람들을 보내어 심어놓으니 이른바 식민지다. 시작은 스페인이 했지만 그들의 세력 중심은 중남미로 흐르고 북미 대륙에는 영국의 입김이 점점 커진다. 영국령 식민지 사람들은 영국정부의 도움이나 간섭 없이 독자적으로 그들의 식민지를 개척해 나간다. 한편 영국정부는 자치적으로 움직여가던 식민지를 정부의 통제 밑에 두어 조이려 하고 식민지 피치자(被治者)들과 영국정부사이에 좋지 않은 감정이 쌓이고 대립과 갈등이 증폭된다. 급기야는 전쟁으로 발전하고 상대도 안될 것 같던 식민지인들이 이겨 독립을 쟁취한다.

이야기가 너무 지루하고 길게 계속되는 것 같아 서둘러 결론을 내리자면, 미국은 외지인들이 들어와 미개한 원주민을 압살 하며 건설한 나라인데 흘러 들어온 외지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나 공통적으로 근면하고 독립심이 강하다. 따라서 그들 앞에 전개되는 많은 역경과 고난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개척정신으로 온 국민이 합심하여 극복하고 나아가 이러한 것들은 오히려 보다 나은 국가를 건설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미 대륙은 자원이 풍부하고 땅이 넓으니 잘 살 수밖에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늘날 미국의 풍요와 부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이룩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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