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가까운 산(47)

by 김헌삼

산에서 자연을 배운다


산에 들어서면 숱한 풀과 나무들을 만나고 그 사이에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듣는다. 그들은 모두 제 각각의 이름이 있으나 모르는 것이 많아, 예쁜 꽃을 보고 싱그러운 냄새를 맡으며 곱고 맑은 새소리를 들어도 그 느낌을 제대로 즐기고 전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래서 알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우리 산에서 가장 흔하게 보는 나무가 도토리나무 또는 참나무라 부르는 참나뭇과 식물이다. 열매를 도토리라 해서 도토리나무라 하지만 정식 명칭은 따로 있다. 도토리가 열리는 참나뭇과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등 크게 여섯 가지가 있다.

잎이 가장 넓은 떡갈나무는 잎을 채반에 깔고 떡을 놓는데 쓴다 해서 그렇게 부르게 되었고, 이보다 잎의 크기가 조붓한 신갈나무는 나무꾼들이 짚신 바닥에 깔창처럼 이용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며, 졸참나무는 도토리 크기가 졸(卒)처럼 작다고 붙여진 것이라 한다. 열매는 모두 도토리라 하는데 상수리나무 열매만 상수리라 불린다. 상수리는 알이 굵고 구슬처럼 동그랗게 생겨 우리가 어렸을 때는 좋은 놀이 기구였다.

봄이 되어 제일 먼저 피어 칙칙하던 산을 환하게 빛내주는 꽃이 진달래와 생강나무다. 진달래는 붉은 넋을 떠올린다. 어린 시절 산자락을 헤집고 다니며 진달래를 꺾어 모아 꽃방망이를 만들어 놀다가 먹기도 했는데, 외진 곳에는 가지 마라 용천배기가 숨어 있다가 간을 빼간다 주의를 주던 어른들 말씀이 있었다.

노란 생강나무 꽃은 아파트 주변의 산수유와 같은 시기에 비슷한 모습으로 꽃을 피워 혼동하기 쉽지만 엄연히 다르다. 눈으로 봐서 쉽게 구분하는 법은 수피(樹皮)가 거칠게 일어나 있는 산수유에 비하여 나뭇가지가 매끈매끈한 것을 생강나무라 보면 된다. 물오른 작은 가지를 부러뜨려 맡아보면 생강 냄새가 난다. 그래서 생강나무다.

생강나무 꽃의 노란색은 따뜻한 느낌이어서 봄에 잘 어울린다. 동백꽃이라고도 하여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에 등장하는 것은 중부지방 산간에 널리 퍼져있는 이 생강나무 꽃을 지칭한다.

나무마다 싹이 터 연초록의 잎이 피어나 점차 진한 녹색으로 변해갈 무렵, 수피(樹皮) 속에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알에서 애벌레들이 부화하여 퍼져 나온다. 나뭇잎을 갉아먹으려 다퉈 나오지만, 그중에는 새들의 먹이로 희생되어 일찍이 ‘나비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들도 많다.

맑고 영롱한 꾀꼬리 소리는 도저히 흉내 낼 수가 없고, 가지 사이를 옮겨 앉으며 지저귀는 잡새들의 왁자한 수다는 어디서 어느 것이 내는지 통 분간이 안 된다. ‘뻐꾹뻐꾹’ 제 이름을 부르며 우는 뻐꾸기 소리는 어딘가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온다. ‘아무개야! 잘 있니? 보고 싶다.’ 멀리 시집간 누님이 그리움 가득 찬 마음으로 안부를 묻는 듯 애련(哀憐)하다.

여름으로 들어서며 요사스러운 소리를 지르는 새가 있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웬만한 남자들은 대부분 이렇게 듣는다. 이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어떻게 생겨 먹었기에 저와 같은 망측한 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것인가. 이름이라도 하는 심정으로 알만한 측근들에게 묻고는 했다. 자신 있게 답해주는 이 없어 전전긍긍하며 해를 넘겨왔는데 최근 신문에 이 새 이야기를 다룬 칼럼을 우연히 발견하여, 이름이 검은등뻐꾸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계기로 사진으로라도 생김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 꾸준히 관심의 끈을 놓지 않은 덕이라 생각한다. 뻐꾸기와는 내는 음역(音域)이 전혀 다르지만 생김은 이름처럼 비슷한 것도 알게 되었다.

청계산을 오르다가 쉼터에 앉으면 주변을 맴도는 새 중에 나의 친구 동고비와 곤줄박이가 있다. 자주 다니는 산이고 그때마다 나타나다시피 하여 친구라 여기기로 했다. 동고비는 몸길이 14센티 정도로 참새 크기의 작은 새이며 몸의 윗면은 잿빛이고 아랫부분은 흰색으로 통통하다는 느낌을 주는 새다. 이에 비하여 곤줄박이는 크기는 동고비와 비슷하나 비교적 날씬하고 배 부분이 주황색에서 갈색을 띠는 것이 확연하게 다르다.

이들의 이름을 확실한 내 것으로 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 놈을 놓고 동고비 이름을 애써서 기억해 내면 곤줄박이가 생각나지 않고, 곤줄박이를 떠올리면 동고비가 깜깜하기를 거듭하다가 이제는 확실하게 입에 붙었다 싶은데 장담할 일은 아니다. 생각이 멀어지면 언제든지 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이나 들을 막론하고 식물들의 사생활은, 집성을 이루는가 하면 희성바지가 드문드문 끼어 어울려 살아가는 인간사와 흡사하다. 풀들만 해도 군락을 이뤄 퍼져있는 각시둥굴레가 있는가 하면 드물게 만나는 각시붓꽃도 존재한다. 각시라는 접두어가 따르는 것은 둥굴레나 붓꽃 종류 가운데 작은 편에 속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식물학자도, 새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면서 이만큼 알고 또 아는 체를 할 수 있는 것은 산을 다니면서 자주 부딪치는 현상에 관심을 집중하고 부단히 탐색한 결과라고 믿는다. 이들과도 통성명을 하지 않으면 자주 보는 이웃과 인사 없이 서먹하게 지내는 것처럼 갑갑하고 어색한 기분이기조차 하다.

요즈음은 친절하게도 간단한 정보를 곁들인 이름표를 매달아 이를 실마리로 식물도감을 찾아봄으로써 지식의 폭을 더 넓히게도 된다.

지리산 종주를 하다가 피어있는 모양과 풍겨오는 그윽한 향기가 5월의 캠퍼스에서 보던 라일락과 대단히 흡사한 꽃나무와 마주쳤는데 매달린 명패에는 수수꽃다리라 씌어있었다. 웬 라일락이 여기 있으며 우리말 이름은 이런 것이겠지 짐작했는데 국립생물자원관의 설명에 의하면 관상용으로 재배하는 라일락과 비슷하지만, 라일락은 잎 길이가 폭에 비하여 긴 편인데 수수꽃다리는 길이와 폭이 비슷한 점이 다르다고 되어있다. 자생지에 대한 정보가 명확하지 않다고 하니 어쩌면 토종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꽃이든 나무든 또는 곤충이건 간에 우리가 공생하는 자연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과 애정으로 관찰하고 관련 서적을 들춰보며 탐구하면 앎의 정도는 넓고 깊어질 것이다.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수많은 인총(人叢) 가운데 면식 있는 사람을 만나면 반가운 마음이 들듯이 무수한 생물 중에서도 아는 것을 대하면 저절로 친근감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다음 산행에서는 어떤 살아있는 것을 만나 새로운 교감을 해볼까?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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