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19)

by 김헌삼


19. 버펄로 빌(Buffallo Bill)


이번 미국여행을 하기 전에는 나에게 있어서 버펄로 빌의 이름은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관심 밖의 인물이었다. 미국 역사상 이런 사람이 있는지도 몰랐고, 그래서 당연히 알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콜로라도주를 지나며 와이오밍주 일대에서 가장 부각되어 있는 인물이 바로 버펄로 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눈에 띄고 발에 채는 것이 그의 이름 두 자이었기 때문이다.

버펄로 빌이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눈에 들어온 것은, 록키 산맥 국립공원 가운데 에스티스 공원(Estes Park)을 다녀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내려가기 위하여 덴버 옆의 골든(Golden)이라는 곳을 지날 무렵이었다. 「버펄로 빌 묘지(Buffalo Bill's Grave)」라는 갈색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첫 대면이 하필이면 주검의 장소였다. 그러나 생의 마감을 마주하여 그의 생애를 더듬어 보는 것, 이야기를 풀어 가는 한 방식이기는 하다.

와이오밍주의 첫 숙박지인 척 워터(Chug Water)에 와서 그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모텔 방에 걸려있는 그림 두 점이 모두 그에 관한 것이었다. 하나는 나중에도 자주 보게 되는 그의 초상화였고, 다른 하나는 피차 말을 탄 채로 그와 인디언이 싸움이라도 하는 듯 뒤엉켜 힘쓰고 있는 현장 그림이었다. 그리고 이들은 복사본인 듯 다른 방에도 똑같은 것이 붙어있었다. 그에 관한 그림으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윌리엄 후레디릭 코디 대령 Col W. F. Cody)’(*1)이라는 본명을 명시하고 그 밑에 ‘Buffalo Bill’이라는 닉네임도 함께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은 언제나 카우보이 복장이다. 치렁치렁 숱이 여기저기 늘어진 가죽옷에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부츠, 챙이 넓은 카우보이모자. 곱상한 얼굴이지만 눈매가 날카롭고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수염은 커다란 털붓[毛筆] 세 개를 붙여놓은 것 같다. 양편으로 굵다랗게 갈라진 코밑수염이며 좁게 늘어진 턱수염이. 그의 뒷머리는 목이 가려질 정도로 항상 길게 드리워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보고 희미한 기억이지만 존웨인 주연의 『역마차』에 함께 타고 가던 너덧 명의 일행 중 해맑은 도박사 모습이 자꾸 겹쳐 어른거린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지역으로부터 불과 50여 마일 떨어져 옐로스톤의 동쪽 관문이랄 수 있는 코디(Cody)라는 곳은 아예 버펄로 빌의 본명을 따서 이름한 도시이다. 그런 이유인지 이곳에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버펄로 빌 역사박물관(Buffalo Bill Historical Center, BBHC)과 버펄로 빌 주립공원이 있으며 또한 외곽에 버펄로 빌이라는 이름을 붙인 댐도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 지방에서는 대통령보다도 인기가 좋다는 말인가.

역사박물관(BBHC)은 30만 평방 피트 이상 되는 자리에 다섯 개의 특성별 박물관과 갤러리, 도서관 등이 있는 복합적 문화센터로서 소설가 제임스 미체너는 서부의 스미소니언이라고 했다 한다. 다섯 개 중에 버펄로 빌 박물관이 있다. 볼 것은 많은데 시간이 넉넉잖아 속도를 내야 했다. 긴 문장으로 설명을 붙인 것은 대충대충 적당히 끊어야 했지만 그래도 여기를 둘러보며 그가 무엇을 하던, 누군가 대강은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알고 싶은 것에 비하여 알게 된 것은 아주 미진하다.

귀국하여 시간의 여유를 갖고 인터넷으로 들어가 「Buffalo Bill」을 찾아본다. 그만한 인기의 동기가 무엇인가. 그에게는 무슨 카리스마가 있는 걸까.

아버지가 부실하고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는 아이오와주 스콧 카운티에서 태어났지만 11살 때 캔자스로 이주하여 어린 나이에 다양한 직업전선으로 뛰어든다. 메신저, 카우보이 소몰이꾼, 포니 익스프레스 배달원 등을 전전하며 14살에 벌써 가장 노릇을 한다.

버펄로 빌(Buffalo Bill)(*2)이란 애칭이 붙은 것은 캔자스 - 태평양 간 철도회사 건설직원들 식용육으로서 들소(buffalo)를 도살 공급하는 일을 맡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7개월 사이에 4,280 마리를 잡아들였을 정도로 버펄로 귀신이었다니 그런 닉네임이 붙을 만도 하다.

여기서 우리가 미국 들소라고 하는 버펄로에 대하여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펄로는 우리나라 청도에서 연례행사로 하는 ‘소싸움’에 출전하는 황소같이 우람하고 탄탄한 몸집에 전체(前體)가 크고 목덜미나 턱 아래 부분에 긴 털을 갖고 있다. 바이슨(bison)이라고도 하는데 버펄로와 같은 의미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버펄로를 찾아보면 ‘American bison’이라 해놓고, 바이슨을 보면 ‘American buffalo’라 되어 있으니. 한 때 북미대륙에 6천만 마리나 퍼져있어 대륙을 새까맣게 뒤덮다시피 했었다. 원주민들에게는 들소 하나가 의식주를 모두 해결해 주는 아주 유용한 것이었다.

특히 1800년대로부터 의식(衣食)으로서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여 유럽으로 수출까지 하게 되며 매년 20만 마리 이상 도살되었다. 1830년부터 60년까지 40년간은 극심한 도살로 급기야 1893년에는 얼마나 잡아댔는지 그 많던 것이 3백 마리가 조금 넘게 남았을 정도였다. 버펄로 빌이 들소 도살에 종사할 때가 1867년이었으니 심하게 살육할 무렵이었다.

1905년 루스벨트 대통령이 야생동물 보호에 관심을 갖고 보호입법들을 발표한 후로 숫자가 늘기 시작하여 이제는 약 15만 마리가 남아있다. 가장 많은 들소를 볼 수 있는 곳이 옐로스톤공원으로 약 4천5백 두가 방목되고 있다.

버펄로 빌은 22살에 군에 복귀하여 정찰대장을 맡으며 최고훈장인 명예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말을 타고 몰며 마상에서 펼치는 동작이 민첩하고 현란했던 모양이다. 그의 직업은 대부분 말을 타는 것이었던 것만 봐도 그런 짐작이 간다.

그는 쇼맨십에 천부적 자질이 있는 듯 『버펄로 빌의 서부(Buffalo Bill's Wild West)』라는 쇼 단을 조직하여 개척생활에서의 극적인 사건들을 무대에 올려 큰 인기를 누렸으며, 유럽까지 진출하여 30여 년 간의 흥행 기간 중 10년은 거기서 보냈다. 그래서 돈도 많이 벌었지만 목축, 광업, 개간, 출판, 도시건설에 계속 투자하여 죽을 무렵에는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한다.

그러니까 그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 쇼맨으로서의 명성이라면 이 지역에 지명으로 또는 역사적 건축물이나 시설에 실질적으로 남게 된 것은 이런저런 사업에 투자한 결과라고 봄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1) 그의 이름 앞에 붙어 다니는 대령(colonel) 칭호는 군(軍)에서 받은 계급이 아니고 대령 같은 그의 풍모로 인하여 네브래스카 주지사가 붙여준 것임

(*2) Bill은 그의 이름 William의 애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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