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아름다운 와이오밍
미국의 여러 지역들, 가보지는 못했어도 책을 통하여 또는 다른 다양한 문화적인 현상들로 인하여 머릿속에 입력되어, 어디 하면 특정의 이미지로 연관 지어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가령 켄터키 하면 켄터키 옛집이요, 따라서 통나무집이 떠오른다. 앨라배마는 너른 목화밭에서 일하는 흑인들이, 테네시는 페티 페이지의 테네시왈츠로 감미로운 선율이 피어나고, 세인트 루이스는 마크퉤인의 미시시피강을 가르는 증기선의 뱃고동이 아련히 연상된다. 보지는 않았어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의 추억에 빠지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와이오밍은 헨리 폰다 주연 영화 『태양은 가슴마다』에서 화면 가득히 펼쳐지던 아름다운 경관이 연상된다. 그리고 와이오밍은 경치가 빼어나게 좋은 곳이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와이오밍은 막연한 추억 속의 것과는 달리 옐로스톤에 진입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아름다운 곳이 아니었다. 옐로스톤의 동쪽 관문인 코디(Cody), 아니 그보다 조금 더 뒤로 물러난다면 우리가 오랜만에 여유 있게 시간을 할애하여 한국식 온천욕을 하며 며칠간 쌓인 피로를 푼 써모폴리스(Thermopolis)에 오기 전까지는 산은 있어도 그런 것은 처음 본다 할 정도로 황폐한 모습이었다. 띄엄띄엄 서 있는 나무들이라야 가난에 찌들어 잘 자라지 못하는 아이 같이 왜소하고 곧 말라죽을 듯이 목마른 관목들이었다. 흙인지 돌인지 메마를 대로 메말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코디에 도착했을 때부터 옐로스톤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떠 오르는 기분을 어쩔 수 없었다. 그만큼 옐로스톤은 가볼 만한 곳이라는 말을 무수히 들어왔고, 따라서 가보고 싶었고 또 꼭 가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드디어 그 문 앞까지 당도한 것이다.
옐로스톤 공원이 차지하는 면적은 약 9천 평방 킬로미터 정도이며, 특성별로 5개로 나뉜다. 석회가 함유된 온천이 흘러나와 단구(段丘; terrace)를 형성하는 서북쪽의 매머드 지역(Mammoth Country). 그 아래쪽으로 지열로 인한 여러 현상과 함께 세계적으로 유명한 올드 훼이스풀(Old Faithful)을 비롯한 수많은 간헐천이 널려있는 간헐천 지역(Geyser Country). 공원의 동남쪽으로 거대한 옐로스톤 호가 있는 호수 지역(Lake Country). 동북쪽으로 여울을 따라가는 역마차 사슴 들소 늑대 등을 보며 옛 서부를 느끼는 루스벨트 지역(Roosevelt Country). 그리고 루스벨트와 호수지역 중간에 위치한 협곡 지역(Canyon Country)이 그것이다.
특히 협곡지역은 옐로스톤의 그랜드캐년으로서 나이아가라의 두 배 되는 높이에서 내리꽂는 아랫폭포(Lower Falls)와 폭포 양쪽 황금빛 협곡에 눈길을 주며 왜 이곳을 옐로스톤(Yellowstone)이라고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우리는 매머드 핫 스프링스와 간헐천지역의 올드 훼이스풀에 각각 하루씩 숙소를 미리 정해놓고, 동서남북과 북동쪽의 5개 관문 중 코디로부터의 동쪽 입구를 통해 들어섰다. 며칠 전 에스티스 국립공원으로 들어갈 때 50달러의 연간회원권을 구입했기 때문에 20달러의 입장료를 따로 낼 필요가 없다. 앞으로 1년 간은 카드와 ID만 보여주고 어느 국립공원이든 무료로 입장한다. 이곳은 이미 해발 2천을 넘어 3천 미터에 이르는 고지대이므로 높은 봉우리는 물론 길옆에도 잔설이 널려있다. 눈이 많아 겨울철에는 11월부터 5월 초까지 막아놓는 길로서 이곳으로의 진입이 가능해진 지가 얼마 안 된다.
동문을 지나 40여 킬로 간 지점에 위치한 레이크 뷰우트(Lake Butte)는 일종의 전망대이다. 옐로스톤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하는 포인트이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있고 그 아래 흰 눈 덮인 산의 연봉들, 다음 줄에는 시원하게 병풍을 두른 듯한 늘 푸른 침엽수림대, 물론 그 아래쪽은 드넓게 펼쳐진 호수다.
옐로스톤에는 곳곳에 호수가 많지마는 가장 넓은 옐로스톤 호다. 총면적 136평방 마일로 서쪽 끝은 시야가 따라가지 못한다. 호면에는 물질하는 오리무리, 우아한 몸짓으로 서서히 떠있는 듯 이동하는 백조 한 쌍의 모습이 한가롭다. 말하자면 아름다운 풍광의 그림 모델을 현실로 보는 것이라 하겠다. 다른 더 넓은 지역이 황폐하고 불모에 가까워도 이 장면 하나만으로 와이오밍 앞에 ‘아름다운’이라는 수식어를 받을 자격이 충분히 있다는 생각이다. 이 호반을 쉽사리 뜨지 못하는 우리는 호숫가 세즈베이(Sedge Bay) 부근 피크닉 에어리어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주변 풍광의 감상시간을 끌었다.
옐로스톤에는 할 것과 볼 것이 수없이 많다. 어느 책자(99 Things to Do in Yellowstone Country)는 책제가 말하듯이 할 수 있는 일을 99가지나 열거하고 있다. 하필이면 99가지일까? 아무리 쥐어짜도 채울 수 없어서일까, 그보다 하나는 각자의 것으로 넣으시오 일까? 일생을 두고 해도 못할 것을 어찌 짧은 기간에 다 할 수 있겠는가. 우리도 2박 3일간 보느라고 봤지만 그중 내 나름으로 이것은 꼭 하라고 권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다. 순서는 일정과 어느 방향으로 진입하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한 순서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해발 2,544미터의 레이크뷰트(Lake Butte) 전망대(자동차 진입 가능)에 올라 건너편 고원과 호수가 일궈내는 아름다운 파노라마를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 캐년 빌리지로 이동해 예술가의 포인트(Artist Point)에서 아랫폭포와 양 협곡의 장려한 아름다움과 현란한 색채를 감상하는 것이다. 이 부근에는 전망 포인트(Lookout P)와 또 감화 포인트(Inspiration P)가 있어서 그 지점에서 관망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매머드 핫 스프링스의 일련의 테라스들. 온천수가 석회와 함께 나오며 만들어진 황색 갈색과 흰색이 조화를 이뤄 여러 보석 같은 색채와 모양이 형성된 단구들을 보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올드 훼이스풀은 꼭 가야 할 사유가 몇 가지 있다.
넷째, 그곳에서 일정한 시간에 하늘 높이 분출하는 간헐천을 꼭 봐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옐로스톤의 간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올드 훼이스풀은 매 90여분 간격으로 김 나는 물을 3,4분 동안 평균 약 40미터 이상의 높이로 뿜어 올린다. 방문자 센터에서는 몇 군데의 다음 예상 분출시간을 알려준다. 기다리는 시간은 주변의 수없이 많은 다른 이름 붙은 간헐천, 풀(pool), 웅덩이(basin) 등을 산책 삼아 둘러보는 것도 좋다.
다섯째, 올드 훼이스풀 인에서 잠을 자며 세계 최대의 통나무 건물을 감상하면 더욱 좋겠지만 숙박이 여의치 못하더라도 이 건물에 들어가 로비 한가운데 서서 또는 덜 편안할지는 몰라도 적당한 자리에 비치된 고풍스러운 나무의자에 기대앉아 음미하며 이 숙소의 예술적 가치를 나름대로 평가해 보는 것도 보람된 일이리라. 2층 테라스에 나가면 올드 훼이스풀 간헐천을 편히 의자에 앉아 칵테일이나 한잔 마시면서, 마시지 못하는 이라도 멋있는 자태로 들고 서서 그동안의 여정을 동료와 나누면서 여유를 갖고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이 인에서만 갖는 특별한 혜택이다.
이들을 찾아다니는 사이사이에 울창한 침엽수림 숲, 1988년 큰 산불로 처참하게 불탄 자리, 뽀글뽀글 솟는 온천, 지글지글 끓는 에메랄드빛 웅덩이, 풀떡풀떡 진흙방울을 만들고는 사라지는 머드 볼케이노(Mud Volcano), 작은 호수들, 폭포 등과 수없이 만났다가는 헤어진다. 야생동물로 뮬 디어(mule deer) 엘크(elk) 무우스(moose) 등 사슴 종류도 가까운 거리에서 서성이며, 특히 이곳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버펄로와 조우하기도 한다. 이 놈들은 우리가 가는 자동차 길을 막을 특권이 있다. 가로지르거나 점령하고 서있으면 마냥 기다려야 한다. 우리는 길이 막혔다는 불편보다는 가까이서 자세히 관찰할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할 지경이다.
옐로스톤 관광을 끝내니 이번 여행의 핵심이 되는 중요한 하나를 마친 기분이다. 여러 프로젝트 중에 큰 사업하나를 완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일정으로 보면 반밖에 지나지 않았으며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으니 다음 기착지를 향해 서둘러 악셀러레이터 페달을 힘차게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