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21)

by 김헌삼



21. 메모리얼, 메모리얼 데이


공교롭게도 이번 여행에서는 ‘메모리얼(memorial)’이라는 단어와 연관되는 일이 여러 번 겹쳐, 이를 한번 생각해 보고 지나는 게 좋을 것 같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메모리얼’이라는 어휘는 기념물 기념관 기념비 또는 기념의 라는 보편적인 의미가 아닌 죽은 자에 대한 ‘추도’ 또는 ‘추도의’의 뜻을 갖는 말이다.

5월의 마지막 월요일이었던 31일은 미국의 전몰장병 기념일 즉 메모리얼 데이(Memorial Day)이다. 잘 사는 나라이면서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전쟁터에 나가 죽는다. 그 넋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이날은 정오까지 반기게양하며 군대나 퇴역군인들이 전몰 장병의 묘지까지 퍼레이드를 벌이거나, 병사들이 무덤을 향해 예포를 쏘고 진혼곡 나팔연주를 하는 행사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일반 국민들은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28일 금요일 저녁부터 황금연휴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 기간은 우리가 네브래스카의 그랜드 아이얼런드에서 주로 I-80을 타고 콜로라도까지 와서 록키산맥 국립공원을 거쳐 콜로라도 스프링스로 갈 무렵이다. 계절이 괜찮을 때인 데다 3 연휴라서 차가 많고 숙소 잡기가 어려워질 것이란 예상을 했었다. 그러나 평상시와 다름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교통량이었으니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을 느꼈다면 휴일기간 중에는 물품을 운송하는 대형트레일러 등이 대폭 줄고 대신 RV차량(Recreation Vehicle), 우리와 같은 7인승 미니밴 같은 차량이 좀 늘은 것인데 전체적으로는 별 변동이 없어 보였다.

와이오밍에서 아이다호와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이웃하며 남하를 시작하여 급기야는 막바지에서 아이다호에 1시간도 안 되게 잠입했다가 얼른 발을 빼듯이 뛰쳐나와 들어온 첫 도시가 유타주의 가든 시티였다. 2천 년 센서스에 의하면 인구 357명, 그 뒤로 줄면 줄었지 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새로 지은 지 얼마 안 되는 듯 아주 깨끗한 캐년 코브 인(Canyon Cove Inn)에서 자고 난 5일 아침, 나는 늘 하는 버릇대로 6시경 일어나 산책길에 나섰다. 엊저녁에는 베어호(Bear Lake) 쪽으로 가보며 인구 4백 명도 안 되는 곳이지만 거기가 마치 다운타운인양 우체국 소방서 도서관등이 모여있는 것을 보았으니, 이번에는 반대방향으로 발길을 옮겨본다.

숙소로부터 5백 미터쯤 되는 거리에 가든 시티 메모리얼 파크(Garden City Memorial Park)가 있고 문을 활짝 열어놨다. ‘메모리얼 파크’란 바로 공동묘지를 말하는 것이다. 미국의 묘지 또는 묘지공원을 먼 빛으로만 보아왔지 이렇게 깊숙이 들어와 가까이 대면하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잘 되었다 싶다. 오늘은 여기 말없이 누워있는 사람들, 그러나 이름은 뚜렷하게 새겨있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기로 하고 이 안을 빙빙 돌며 묘비명을 더듬는다.

관심의 초점은 이 사람들이 얼마 동안, 가능하면 어떻게 살다가 갔나 하는 것이었는데 대체로 70 이상은 산 것 같다. 그러나 그중에는 1년 4개월을 살다 간 아기의 비명도 있고, 세상에 태어나 단지 일주일도 안 되는 6일을 살았다기보다는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던 태아에게도 이름 붙은 묘와 비명이 있기도 하였다. 일부만의 묘석을 더듬었지만 그중에 다복한 삶을 살다 간 사람은 86세까지 수를 한 할아버지와 94세에 돌아간 할머니 부부였다. 슬하의 자녀가 8명이고 마지막 줄에 「가족들은 영원하리라(Families are forever)」라고 씌어있다. 또 다른 곳에는 11명의 자녀를 둔 원 없이 낳고 원 없이 살다 간 할머니 할아버지도 있었다. 여기도 성이 같은 사람들은 한 군데 모여있는 것을 보니 저 세상에서도 가족끼리 지내는 모양이다.

묘지를 가까이서 보니 역시 지저분하게 느끼도록 하는 것은 갖다 놓은 꽃들이다. 생화는 시일이 지나 시들어버리고 어지러이 널려있는 조화들도 과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어쩌겠나, 꽃을 워낙 좋아하는 문화 속에 사는 사람들이니.

이날 우리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93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는 부음을 들었다. TV는 종일, 아니 앞으로 계속해서 전용방송체제로 돌입할 것 같다. 불과 열흘도 안된 5월 27일 그의 소년시절 집을 우리가 방문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그는 열 살 전후의 나이에 그 집에서 3살 위의 형과 함께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이 집에서 지낸 기간은 3년 남짓하지만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여기 딕슨(Dixon)을 떠나지는 않았다. 열 살 무렵 그의 형과 함께 골프장에서 캐디 노릇을 한 적도 있고, YMCA에서 수영을 배워 고등학교 2학년 때는 수상구조원(life guard)이 되어 7년 동안 77명의 생명을 구했다는 기록이 있다. 대통령에 재직하던 1984년 이 집을 다시 방문, 어렸을 때의 일을 회상하고 떨어진 타일 바닥 밑에 동전 숨겨놓던 어린 시절의 일을 재현해 보는 모습이 엽서에 담겨있기도 하다. 이제 세상을 떠나자 그에게 전폭적으로 주어지는 예우를 지켜보며 국민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은 대통령이었음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이날은 또한 한국시간 6월 6일로 현충일 즉 우리나라의 메모리얼 데이이었으니 팔팔하게 돌아다니는 중에도 생명의 정지 즉 죽음에 대하여도 한 번쯤은 깊이 생각해 보라는 의미인가? 비록 여행 중이지만 식탁에 앉은 시간 중에 잠시라도 할애하여 눈감고, 전장에서 채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무수한 전몰장병들이나 한평생 80 또는 90세까지 장수하며 할 일을 모두 마치고 돌아간 이들에게도 똑 같이 추념의 정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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