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몰몬 선구자들이 걸어온 길
나는 종교에 대하여 인색하다. 그것은 아직 어떠한 종교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받을지도 모른다. 종교라는 것이 저를 위하여 갖는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냐 하고. 여하튼 아직은 종교를 가짐으로 얻는 정신적인 안정보다는 내 몸과 마음이 그 틀에 매이게 되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에 종교와 무관하게 사는 편을 택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왜 몰몬교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번 여행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주 우연한 계기였다. 솔트레이크시티를 지나칠 무렵, 아는 것만큼 보이게 되는 것인가? 철호 부인 조여사가 “여기 몰몬교 본부가 있다는데.” 했다.
그러나 우리는 솔트레이크시티를 지나치기로 작정했었는데 그 이유는 아침 먹을 곳을 찾아다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써 버려서이었다. 오늘따라 일찍 길부터 뜨고 식사는 예의 피크닉에어리어가 나타나면 그때 어디서든 하기로 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아, 결국 들어간 곳이 해발 3천 미터 가까이 되는 마운트 나오미 피크(Mount Naomi Peak; 9,979 피트)의 잔설이 여기저기 있는 캠핑 장이었다. 따라가다 보니 꽤 먼 거리를 허덕이며 올라가야 했고 그래서 시간도 많이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또한 식사시간도 한없이 늦어졌던 것이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콜로라도의 주도 덴버시를 I-25N을 타고 지나며 쓱 휘둘러보는 것으로 끝낸 것처럼, 유타주의 수도 솔트레이크시티도 I-15S를 타고 통과하며 일별 하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 것이다.
그랬음에도 우리는 운명적으로 몰몬교 본부를 보게 되었던 것 같다. 또 다른 몇 가지의 이유로 후리웨이를 이탈하여 결국은 솔트레이크시티 시내로 들어간 것이다.
첫째로, 오늘은 유난히 식사 운이 따르지 않는지 점심때도 식사할 공원을 찾았으나 좀처럼 나타나지 않아 할 수 없이 패스트 후드(fast food)로 때우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그것이 있을 만한 곳은 시내 외에 없을 것 같은 예감이었다.
둘째의 이유는 앞으로 며칠간 유타주의 점찍어놓은 명소들을 찾아다니려면 세밀한 지도를 손에 쥐어야 일사불란할 터인데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였으며 그것을 구비하고 있을 가장 확실한 곳은 방문자센터(Visitor’s Center)이며, 그것은 솔트레이크시티 시내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란 판단이었다.
셋째로, 조여사의 간절한 소망이 몰몬교 본부를 안 보고 지나치면 서운할 것이 그 눈빛에 역력히 나타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솔직히, 또 하나 본다는 가벼운 마음으로 몰몬교의 성지라 할 수 있는 35 에이커의 꽤 크게 차지한 템플 스퀘어(Temple Square)로 따라 들어갔을 뿐이다. 가서 놀란 것은 일개 교회의 한 종파가 아무리 본부라 해도 큰 도시의 한복판에 버젓이 대단히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도, 11,623개의 파이프로 되어있는 파이프 오르간이나 6,500명을 수용한다는 대예배당(Tabernacle)의 크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경내 남쪽에 자리한 한낱 몰몬 손수레 기념동상(Mormon Handcraft Monument)이었다. 꼭 필요한 가재도구와 어린아이를 실은 두 바퀴 손수레를 부부가 앞에서 힘을 모아 끌고 뒤에서는 큰아들이 미는 모양의 동상과 그 아래에 씌어있는 내용 때문이었다.
1856년부터 1860년 사이 몰몬 파이어니어들이 손수레를 끌고 밀며 아이오와시티로부터 1,300마일을 때로는 악천후를 겪기도 하고, 굶주림과 극심한 피로를 견디며 또는 동료나 가족이 죽어가는 것을 목격하기도 하며 여기 솔트레이크시티까지 찾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온 사람들이 무려 3천여 명에 수레 수는 653개였다니 수레당 평균 5명이 딸린 셈이다.
그러나 1846년 브리검 영의 영도로 이주를 시작한 이래 1869년까지 몰려온 숫자가 7만 명 이상이라 한다. 솔트레이크시티의 인구변동사항을 보면 1852년에 2만이던 것이 1880년에는 14만 명으로 부쩍 늘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20년이나 지난 2천 년에도 18만 명에 불과하다.
몰몬교란 어떤 종파이며 이들은 왜 이런 고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몰몬교의 공식 명칭은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로서 창시자는 조셉 스미스이다. 그가 18살 때인 1823년 옛 예언자 몰몬의 기록이 고대어로 새겨진 금판을 집 근처 땅속에서 우연히 찾아내게 되었다는데 이것을 자신이 번역한 것이 모르몬경(Book of Mormon)이다. 그에 의하면 콜럼버스 이전에 미국에서 번성했던 전통적 신앙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것을 부흥한 것을 말일성도 예수그리스도교라 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추종자가 많았고 그들은 지상에 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치다시피 열정적이어서 교세는 급격히 성장한다. 그러나 외부에 대하여는 배타적인 면이 강해 주변에 의구심을 유발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기까지 한다. 이를 피하여 뉴욕에서 오하이오로, 미주리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 정착한 곳이 일리노이주 너부(Nauvoo)였다.
여기에 와서도 세력의 팽창 속도는 줄지 않고 스미스는 미 대통령 후보로 추천되기까지 한다. 이렇게 되다가는 이들이 미국 전체를 지배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주변 사람들의 우려가 높아진다. 더욱이 교리로서 일부다처제를 인정한다는 것은 미국의 도덕과 문화적 전통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일리노이주당국과 몰몬교도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스미스 등을 형사입건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법의 심판이 있기 전에 분노한 군중들 손에 스미스 형제는 살해된다.
후계자 브리검 영(Brigham Young)은 이 같은 박해를 피하려고 당시 미국 영토가 아닌 곳을 물색한다. 록키산맥 넘어 사람이 살지 않는 멕시코 땅 사막지대에 새로운 성도들의 왕국을 세울 수 있다고 믿고 1846년 너부를 떠난다. 아이오와, 네브래스카를 지나 1847년 솔트레이크에 도착, 터를 잡고 몰몬랜드를 건설한다. 이렇게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찾아온 길이 유명한 「몰몬 파이어니어 트레일(Mormon Pioneer Trail)」이다. 그리고 솔트레이크시티라는 도시는 몰몬교도들이 불모지를 일궈 탄생시킨 도시이므로 그 중심에 이들의 대성전(大聖殿)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몰몬 선구자들이 걸어온 길에 대하여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갖고 더듬어보고자 하는 것은 이 길의 많은 부분이 우리가 온 길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아이오와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고 우리가 일박한 네브래스카 그랜드 아이얼런드부터 플래트강(Platte River)을 끼고 오가랄라(Ogallala)까지의 약 2백 마일은 동행했다. 우리는 옐로스톤을 향하여 북상했지만, 그들은 I-80W 방향을 계속하여 여기 솔트레이크시티로 온 것이다. 여기에서 그들과 다시 마주친 셈이다.
솔트레이크시티를 그냥 지나쳤더라면 그저 200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했던 도시, 쇼트트랙 경기에서 오노라는 미국선수의 할리우드 액션 정도나 기억하고 말았을 것을 이곳을 들리게 됨으로써 몰몬 파이어니어들이 걸어온 길을 알아보게 된 것이다. 모르면 또 모르는 대로, 살아가는데 큰 불편이야 없겠지만 특별히 방문할 기회를 잡아 여기에 와 본 실마리로 해서 이렇게 장황한 이야기를 하게 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