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횡단여행(23)

by 김헌삼



23. 캐년 캐년 캐년


우리가 6월 5일 토리(Torrey)에서 하루, 6일부터 커냅(Kanab)에서 이틀, 8일 카메론(Cameron)의 인디언들이 일하는 랏지(lodge)에서 또 하루, 이렇게 유타 남부와 애리조나 북부에서 집중적으로 여러 날 묵게 된 것은 이 일대에 퍼져있는, 붉은 지형들로 천태만상을 이루는 국립공원들을 골고루 찾아보기 위한 것이었다.

중부의 여러 주들에게는 하나나 있을까 말까 한 국립공원관리소 소관의 말하자면 '국립'자가 붙은 천혜의 공원(park), 기념물(monument), 유원지(recreation area)가 부지기수로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4박 5일 동안 우리가 들러본 것만도 개시를 한 캐피톨 리프(Capitol Reef)를 비롯하여 브라이스캐년(Bryce Canyon), 시다 브레이크스(Cedar Breaks), 자이언 캐년(Zion Canyon), 글렌 캐년(Glen Canyon) 그리고 그랜드 캐년(Gland Canyon)으로,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에 여기서 본 것과 저기서 느낀 것이 서로 헷갈릴 지경이었다. 입장료가 각각 10달러에서 20달러까지 받는 것을 연 회원카드를 갖고 무료 통과하였으니 배도 더 들었을 것을 연회비 50달러로 해결된 셈이다. 아니 각 집이 따로 다녔더라면 거기에 또 세 배를 해야 할 판이니 우리가 미국 땅에 와서 얼마나 번 것인가.

그렇게 많은 곳들을 짧은 시일에 봐 치우자니 차로 달리며 협곡을 보는 이른바 주차간곡(走車看谷)이요, 전망장소(view point)에 내려서 잠깐잠깐의 시간을 할애한 깜짝 관망이 대부분이었다. 그것도 한편에서는 그만 통과하자는 것을, 다른 쪽에서는 이렇게라도 하는 게 낫다고 해서 이뤄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 무수한 자연현상들은 지질학자들의 추정에 의하여 수백만 년, 수억 년, 또는 수십억 년에 걸쳐서 이뤄진 것으로 기간은 각각 차이가 있지만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장구한 시간 동안 대기온도의 변화와 풍우에 시달리며 솟아오르고 가라앉고 부서지고 깎이며 흘러내린 뒤, 기기묘묘하고 아름답고 장려한 모양으로 형성된 것이리라.

첫정이 무엇인지? 각각 생김과 풍기는 분위기는 다르지만 붉은 색깔을 주제로 한 대자연의 걸작품들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성이 있는 여러 지형 가운데, 뜨겁던 태양의 열기가 식어갈 무렵 도착하여 석양 속에서 본 적갈색으로 변해 가던 캐피톨 리프의 아름다움을 잊을 수 없다고들 했다. 둘째 셋째로 보는 손자손녀들도 귀엽고 예쁘기는 해도 첫아이만큼 신기함이 더하지는 않듯, 그다음에 보는 것들은 그저 색다른 맛일 뿐이라고들 했다.

브라이스 캐년의 섬세하고 화려한 빛을 발하는 맛. 열두 폭 거대한 병풍을 한눈에 대하는 것 같던 시더 브레이크스. 뭉턱뭉떡한 스케일과 자동차로 대관령을 넘듯, 구불구불한 옆구리 길에 붙다가 터널을 통과하던 자이온 캐년. 크루즈로 직접 협곡을 누비며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 아프게 올려보던 글렌 캐년. 또한 이들 모두의 종합판이라 할 수 있고 1,540년경 가르시아라는 스페인 사람이 유럽인으로는 처음 방문하고 뱉은 소감이 "오! 그란데"(Oh! Grande) 한마디였다는 그랜드 캐년에서도 이 첫정으로서의 신선함은 없었던 것 같다.

다른 생각 없이 하나하나를 따로따로 떼어놓고 보면 모두가 개성이 있는 감탄할 만한 걸작품들인 것이다. 누른 듯, 붉은 듯, 갈색인 듯한 색조는 특히 조명효과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으로서 한낮의 따가운 햇볕보다는, 따스하게 비치기 시작하는 아침 햇살이나 여위어 가는 석양에 더욱 환상적인 색채와 분위기를 연출할 것이다. 마침 우리는 캐피톨 리프를 황혼이 깃들 무렵에 대할 기회를 잡았기 때문에 더욱 강한 인상을 받았는지 모른다.

그럼에도 그랜드 캐년은 스케일이나 장엄함이 쉽사리 물러가지 못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 카메론에서 64번을 타고 접근한 코코니노 림(Coconino Rim) 쪽에만 10여 개의 조망 포인트가 있고 각각이 받는 감상에 차이가 있지만, 나로서는 야바파이 포인트(Yavapai Point)가 가장 망연한 느낌을 갖게 하는 곳이었다. 황적갈(黃赤褐)의 양각(陽刻)과 회감청(灰紺靑)의 음영이 조화를 이뤄 펼쳐진 일망무제의 숨 막히는 파노라마이다.

유타주에서 위의 5가지 외에 우리가 처음에 넣었다가 일정상 부득이 빼놓게 된 아치스(Arches) 국립공원을 더 얹어 그랜드 캐년 하나하고 바꾸자 한다 해도 애리조나주가 “노오!”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다.

그랜드 캐년국립공원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1,217천 에이커)은 글렌 캐년(1,254천 에이커)에 비하여 약간 빠지나 2003년 연간 방문객 수가 4백1십여만 명으로 글렌 캐년의 1백88만여 명 보다 2배 이상으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왔다. 여기서 잠시 넋을 잃었다가 다시 수습해 간 사람들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일 것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에 이 부근에서는 그랜드 캐년만이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자는 그랜드 캐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그랜드 캐년은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웅대하고 유명한 협곡일 것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 경관에 매료되어 사로잡히고 만다.

특이한 모양의 바위, 다양한 빛깔의 지층,

고원, 바위산, 눈이 아찔할 만큼 깊은 골짜기.

그리고 계곡 밑을 흐르는 콜로라도 강.

때로는 갈색의 무표정한 강물이 흐르다가

때로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굉음과 함께 흘러가기도 한다.

이보다 웅장하고 감동적인 광경은 없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미국 횡단여행(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