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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레논 Jul 08. 2024

The Foundation of Stones 4

Brian Jones 1942 ~ 1969

1968년의 역작 “Beggars Banquet"은 스톤즈의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브라이언은 그렇지 못했다. 1965년 (I Can't Get No) Satisfaction의 대히트와 함께 밴드에 더 이상 나의 자리는 없다는 생각에 신경쇠약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며 일찍이 약물에 손을 대고만 브라이언은 1966년 경부터 밴드가 완벽히 재거 - 리차즈 콤비의 주도로 재편되면서 설자리를 점점 더 잃어간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특유의 사운드메이킹을 통해 스톤즈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만들어내며 그 음악적 재능을 만개하지만, 그의 블루스에 대한 갈증과 갈망은 더해만 갔다. 거기에 더해 약물에 대한 탐닉은 걷잡을 수없을 정도로 브라이언의 몸과 정신을 좀먹어 간다. 결국 브라이언은 Aftermath와 Between The Buttons 작업의 사이의 시기 1차적으로 밴드에서 이탈하겠다는 의사표명을 하게 된다.

1968년 경의 브라이언. 아직 26세의 젊은 나이임에도 약물중독과 신경쇠약이 심해지며 피폐하고 초췌해보인다.

하지만 매니저 앤드류 올드햄은 인기멤버에 다재다능한 능력의 브라이언이 밴드에서 이탈하는 것을 탐탁지 않아 했다. 브라이언에게 계약상의 이유를 들먹이며 밴드에서 탈퇴할 시 심각한 법적 책임을 물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 이어졌고, 브라이언은 어쩔 수 없이 밴드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와중에 브라이언의 약물복용은 점점 더 심해져 갔고, 각종 교통사고와 폭력사건들을 일으키며 빛나는 그의 재능은 점점 파멸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그와 밴드의 사이에 결정적인 막장사건이 터지고야 만다. 브라이언의 심각한 마약중독의 치료를 위해 모로코에 위치한 요양소에 브라이언을 입원시키기로 멤버들과 브라이언의 연인 아니타 팔렌버그가 합의를 하고 그를 모로코의 요양소에 입원시키고 돌아왔는데 그 와중에 아니타는 키스 리처즈와 불륜관계에 빠져버리고 만다. 요양소에서 돌아와 이 광경을 목격한 브라이언의 멘탈은 그야말로 산산조각 나고 만다.

좌측 브라이언과 아니타, 우측 키스와 아니타

속된 말로 개막장 그 자체였다. 브라이언이 돌아왔을 때 아니타는 이미 키스의 아이까지 임신한 상태였다. 브라이언은 법적문제니 계약이니 다 필요 없고 그저 밴드를 떠나 자신만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요양원을 다녀왔음에도 그를 둘러싼 가혹한 상황들은 그의 마약복용을 더욱 부추겼고, 그의 사건사고는 끊이질 않았다. 결국 1969년 초 믹 재거가 직접 브라이언의 자택을 방문하여 밴드의 결정을 통보했다. “브라이언 더 이상 안될 것 같아”. 여기에 브라이언은 “응 그래 나도 그런 것 같아”라고 간단히 대답했다고 한다. 사실상 밴드에서 해고당했지만 매스컴에 발표하는 것은 브라이언에게 맡겼고, 그 해 6월 경 브라이언의 공식 탈퇴 소식이 기사화되어 발표되었다. 그로부터 고작 3주 후, 브라이언은 자택의 수영장에서 익사체로 발견되고 만다. 공식적인 사인은 익사였지만, 생전 그는 코카인이나 암페타민 등 각성제에 심하게 탐닉하였고 이러한 약물이 심각한 심혈관 손상을 유발했고, 수영 중 갑작스러운 심장발작을 경험하고 그대로 익사한 것이라는 추론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롤링 스톤즈를 만들어 내고 이끌어 왔던 빛나는 재능이자 카리스마 브라이언 존스는 이렇게 허무하게도 그 삶을 마감하고 만다. 향년 27세였다. 27 Club의 악명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이전에 사망하며 60년대 최초의 27 Club 멤버에 그 이름을 올리고 만다.

말년의 브라이언과 그의 부고뉴스

빛나는 재능을 지녔음에도 그의 삶은 불행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27세라는 젊디 젊은 나이에 그 재능을 전부 불태우고 그는 사라졌다. 하지만 이후 50년 이상을 굴러가게 될 롤링 스톤즈의 단단한 반석을 세운 것은 브라이언의 불멸의 재능 덕분이었다.


흔히 롤링 스톤즈는 긴 커리어를 구분할 때 기타리스트로 구분 하는 경우가 많다. 초기 브라이언 존스 시대, 믹 테일러 시기의 전성기, 이후 론 우드의 가입과 현재까지로 구분한다. 전술했듯 그들의 전성기는 믹 테일러가 기타를 잡았던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까지였지만, 그 전성기는 브라이언 존스의 블루스와 음악에 대한 열정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진 위대한 축조물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브라이언 존스의 발자취를 계속해서 되새겨 보아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Rest In Peace

The Foundation of Stones 1942 ~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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