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이라는 오해

:에피쿠로스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

by 오늘도 약간 웃김

“에피쿠로스? 걔 그냥 맨날 고기 굽고 놀던 철학자 아냐?”

이쯤 되면 에피쿠로스는 저승에서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그는 쾌락을 인생의 목적이라 했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쾌락이 너무 저렴해서 그렇다. 삼겹살, 와인, 일확천금? 그건 딴 사람 이야기다.


에피쿠로스에게 쾌락은 **‘고통이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는 “빵과 물만으로도 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다”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 입장에선 “배달앱 없이는 신은커녕 인간도 아닌데요”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그에게 ‘신’은 그저 고요하고 흔들림 없는 존재였다. 즉, 아타락시아(ataraxia) — 마음의 평정. 이것이 그가 진짜로 좇은 것이었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정작 그가 말한 쾌락은 빼기의 철학이었다.

• 배가 고프지 않으면 행복하다.

• 불안이 없으면 평온하다.

• 욕망이 사라지면 만족이다.


그래서 그의 쾌락은 웃고 즐기는 유쾌함이 아니라,

**“휴…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다”**에 가까운 감정이다.

에피쿠로스는 쾌락이란 결국 불편함이 없는 상태라고 보았다. 고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단지, 고기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을 뿐이다.


그는 아테네 외곽에 정원을 하나 샀다. 정치, 전쟁, 경쟁이 판치는 도시를 떠나 조용히 살고 싶어서였다.

이 정원에는 노예, 여성, 평민도 함께 지냈다. 출신도 신분도 따지지 않는 유토피아적 공동체였다.


그들이 추구한 삶은 단순했다.

• 정치 얘기 금지 (스트레스받음)

• 사치 금지 (돈 스트레스)

• 과식 금지 (소화 안 됨)


“덜 흔들리고, 더 고요하게.”

그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은 고고한 개념이 아니라, 마음이 아플 때 먹는 응급약 같은 것이었다.


“죽음을 걱정할 시간에 산책을 하세요”


에피쿠로스 철학의 진수는 바로 죽음에 대한 태도다.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있을 때 죽음은 없고, 죽음이 있을 때 나는 없다.”


현대어로 바꾸면 이렇다.


“죽음은 우리랑 연락이 안 된다. 그러니 걱정할 이유도 없다.”


죽음을 걱정하며 불안에 떠는 것은 에피쿠로스가 가장 멀리하고자 했던 상태, 불안(ataraxia의 반대) 그 자체였다.

그에게 철학은 죽음을 이기는 방법이 아니라, 죽음을 걱정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이었다.


에피쿠로스가 평생 붙잡고 있던 단어, 바로 아타락시아(ataraxia, 평정심).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한 마음 상태.


그것은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소란스러워도,

혼자 있는 자동차 안에서 나만의 음악이 흐를 때처럼,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마음의 공간.


에피쿠로스에게 철학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그 음악을 찾아내는 기술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많이 즐기려 애쓴다.

그런데 에피쿠로스는 말한다.


“욕망을 줄이는 자가 가장 부유한 자다.”


진정한 쾌락은 어디에 있을까?

그는 우리 귀에 조용히 속삭인다.


“그 쾌락, 거기 없어.

진짜 쾌락은 아무 일도 없는 어느 평범한 저녁에 숨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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