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시간 속에 없고, 공간 속에 존재한다.

대학로

by 토람

사랑은 시간 속에 없고, 공간 속에 존재한다. 이별 후 그 사람을 완전히 잊은 것 같더라도, 그와의 추억이 있던 곳에 가면 아름다웠던 그때의 우리가 떠올라 가슴 한 켠이 시큰하다. 나에게는 그때의 장소의 느낌과 날씨, 심지어 공기중에 풍겨오는 냄새까지 기억나는 곳이 하나 있다. 내가 첫 사랑을 시작한 곳이자, 술에 달큰하게 취해 그의 등에 업혀 혜화역까지 내려오던 ‘대학로’가 그곳이다.


‘대학로’는 ‘여름 밤’의 선선함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이제 막 시작한 연인들이 오싹한 연극을 보고, 마로니에 공원을 따라 어색하게 손을 스치며 걷다가, 알딸딸하게 취기가 오른 채로 불이 켜진 낙산공원의 성곽에서 그제서야 손을 잡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大學路’, 실제 한자 뜻과 장소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곳이 또 있을까? 대학로에 가면 대학생들의 선선한 여름 밤과 풋풋함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이십대 초반의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이지만, 홍대나 강남처럼 사람으로 붐비지 않는 군중 속 ‘한적함’이 있는 것이 그 분위기에 한 몫한다. 여름이면 대학로를 따라 울창하게 서 있는 초록의 나무들이 사람들을 가려주고, 굽이굽이 있는 좁은 골목도 두 사람만의 비밀스런 공간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작은 소극장들은 어색한 연인의 거리를 좁혀준다. 밤이 되면 상대와 술 한잔 기울일 수 있는 저렴한 술집들이 골목골목 있고, 술을 깨기 위해 오른 낙산공원 성곽은 밤이 되면 아름답게 빛난다. 많은 초록과 좁은 골목들과 높은 언덕, 그리고 아직 바뀌지 않은 노란 가로등까지. 그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어딘가 ‘한적함’을 느끼게 한다. 물리적으로 살펴보면, 그곳은 인구밀집도가 높은 편이고, 언덕도 많아 한여름에 가면 쉽게 땀이 나는 곳이지만, 오히려 선선함을 느낄 수 있는 이유는 둘만의 한적함을 찾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첫 사랑을 시작한 2018년 어느 여름날도 그러하다.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웨이팅이 너무 길어 원하던 맛집을 방문하지도 못한 날이었지만, 그 날 나는 단 한 순간도 우리 주위에 사람이 많다고 생각한 적 없다. 내가 기억하는 건 오직, 혜화역의 초록과 암전된 소극장에서 가까워진 그와의 거리, 낙산공원에서 역으로 내려오는 계단에서 맞잡은 손 뿐이다. 그때 불어오는 바람이 참 선선했고, 둘씩 짝지어 걸어가는 우리와 같은 주위의 연인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나에게 대학로는 그런 곳이다. 이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대학생만이 느낄 수 있는 여름의 낭만이 있는 곳. 토이의 ‘그럴 때 마다’라는 노래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곳. 군중 속의 한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대학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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