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령 ‘헤이 복합 문화공간’에서 진행한 농촌관광 융복합 콘텐츠 개발, 체험관광기획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에 참여했다. 농촌 체험관광기획 전문가 양성과정은 농촌 6차 산업 활성화를 위한 디딤돌 중 하나다. 좋은 농산물 생산도 중요하지만 이를 소비하는 과정도 절실하다. 농산물 소비 과정은 단순히 먹거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하며 한번 다녀간 곳을 다시 찾게 만드는 선순환 고리가 필요하고 그 강력한 연결고리는 농촌체험관광이다. 이번에 보령 헤이 복합 문화 공간에서 진행한 농촌 체험관광기획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은 매우 의미가 있었다.
사진: 홍안유 <연수원 돌담 위에서 익어가는 머루들>
내가 농촌 마을 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이 농촌 공동화 현상이다. 여주시 능서면 광대 2리, 흥천면 상대 1리, 지평면 옥현리, 송현리 모두 아직까지는 어르신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고 귀농하는 분도 간혹 있어서 마을이 유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연로하신 어른들이 세상을 뜨시면 과연 마을이 지켜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경기도 이외의 지역에서는 상권이 발달한 몇몇 마을을 제외하고는 마을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빈집이 지역의 골칫거리로 대두되고 공동화를 막기 위한 여러 가지 특별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 하지만 효과는 크지 않다. 그 이유가 일시적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래서 늘 고민하게 되는 게 지속 가능한 도시민 유입 콘텐츠다.
보령의 재발견
이번에 농촌 체험관광기획 전문가 양성과정 교육을 마치고 보령 일원을 돌아보았다. 보령시는 모두 다 잘 알고 있는 대천해수욕장. 무창포 해수욕장. 보령 머드 축제로 유명한 고장이다. 1995년 대천시와 보령군이 통합해 도농(都農) 통합의 보령시가 되었다. 이번에 보령시를 돌아보니 아름다운 풍광이 너무 많아 일찍 알아보지 못한 게 미안할 정도다.
다음(Daum) 백과에 나온 보령 자연환경을 옮겨 본다.
차령산맥의 남서단에 위치하여 장항선을 경계로 동북부는 주로 산지이고 서쪽은 대체로 평지이다. 그 사이는 남북으로 길게 산록 완사면이 발달되어 산지와 평지의 점이지대를 이룬다. 차령산맥은 점차 낮아져 낮은 구릉을 형성하며, 미산면·청라면·성주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에 비옥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북동부에 오서산(791m), 동부에 성주산(680m)·성태산(631m), 중부에 옥마산(602m) 등이 솟아 서쪽 해안부로 갈수록 평지가 넓어진다. 오서산은 삽교천·무한천·대천천·광천천·진죽천의 발원지이며, 이 하천들은 시내 벼농사의 젖줄이 되고 있다. 대천천이 흘러드는 홍천 저수지에서 지류인 복병천·의평천이 합류하여 서해를 흘러든다. 대천천·주교천 유역에는 대천 평야 등의 유역 평야와 청천저수지를 비롯한 많은 소택지들이 분포하고 있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남동부 산악지대에는 웅천천·풍산천에 의해 협곡이 형성되었으며, 산 간곡저를 따라 평야가 좁게 발달했다. 특히 보령시에서 제일 긴 하천인 웅천천은 성태산에서 발원하여 미산면 중서부를 지나 웅천 평야를 이루고 서해로 유입한다. 대천동·내항동·갓바위 일대의 해안 간석지는 간척지로 조성되어 농경지화 되었다. 보령시는 15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를 포함하고 있다. 해안 일대는 리아스식 해안으로서 간만의 차가 크고(7.2m) 수심이 얕아 어족의 번식에 적합하여 각종 수산물 양식의 최적지이다. 신흑동의 대천해수욕장 일대에는 대규모의 해안 사빈이 형성되어 있다. 서해안에 접해 있어 대천해수욕장을 비롯하여 도서 지역을 포함, 9곳의 해수욕장이 있다.
보령 9경 : 외연도, 죽도, 다보도 (출처:보령 관광 포털)
보령시 브랜드 ‘공직자 감성 경영’
산과 바다, 아름다운 해변, 낭만적인 항구, 그리고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갯벌을 보유한 보령시를 돌아보면서 이곳에서 <공직자 행복한 성공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2019년 12월에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고 공무원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지칠 대로 지쳐 있다. 공무원을 만나보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일상의 쉼표 힐링을 원한다. 열 가지를 잘하다가도 한 가지 실수를 하면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다. 긴장을 풀어주지 않으면 마음의 근육이 뭉치고 경직된다. 그러면 회복 탄력성이 떨어져 작은 충격에도 유리잔처럼 깨진다. 나는 공무원이 살아나야 대한민국이 산다고 믿는 사람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존중받으며 행복한 삶을 영위하려면 공직자의 수고가 있어야 한다. 공무원이 손을 놓으면 대한민국은 돌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공무원에게도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을 전해줘야 한다고 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라고!
논어(論語)에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을 것이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는 말이 나온다. 공무원 교육이 실효를 거두려면 생각하면서 배우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생각이란 감동이다. 감동은 감성을 자극했을 때 우러난다. 감성. 감동을 수반하지 않은 공무원 교육은 1차원적으로 1회성으로 흐르게 된다. 농촌이 6차 산업으로 성장을 도모하듯이 공무원 역량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려면 감성 경영이 필요하다.
이번에 보령시를 공부하면서 다산 정약용 콘텐츠를 살려 부자가 된 전남 강진군을 떠올렸다. 공직자의 덕목을 담은 다산 정약용의 저서 덕분에 강진군은 공직자 교육의 메카로 자리매김됐다. 강진군은 지난 2011년 행정안전부가 주관하는 공무원 교육을 전국 최초로 위탁받아 운영했다. 전국 16개 시·도 자치단체 7·9급 신규 공직자를 대상으로 운영해온 <다산 공직관 학습 및 체험교육>이 입소문을 통해 알려지면서 다산의 목민심서를 배우기 위해 전국의 공공기관과 자치단체 공직자들이 강진 다산수련원에 대거 몰려들고 있다.
갈수록 공직자의 청렴성이 강조되면서 강진군은 이미 포화상태다. 해마다 연초에 이미 1년 치 교육 과정이 모두 마감된다. 보령시는 공무원 교육 새로운 블루 오션으로 충분하다. 바로 토함 이지함 선생이 계시기 때문이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최근 보령시가 2021년 토정 이지함 상 수상 후보자를 공개 모집 중이다. 이 상은 보령시가 낳은 ‘위대한 철인(哲人)’토정 이지함 선생의 애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지난 2016년에 제정했다. 이웃사랑과 선행을 몸소 실천하고 청렴을 겸비한 토정이 구현했던 애민 사상을 실천하는 시민을 대상으로 8월 20일까지 추천받는다.
나는 보령시가 여기서 한 걸음 두 걸음 더 나아가 토정 이지함 선생을 <공무원 교육 콘텐츠>로 발전시키길 기대한다.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나 해가 바뀌면 토정 이지함 선생이 편찬했다는 <토정비결>을 본다. 토정비결을 보면서 희망을 품고 무엇을 경계하면서 살아야 할지 삶의 좌표를 그려보는데 토정비결의 핵심은 <겸손하고 조심하라>는 것이다. 누구를 대하든지 매사에 겸손하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듯 조심하라 했던 토정 이지함 선생의 삶은 <애민과 청렴>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러면서 바람처럼 자유롭다.
‘구름 먹고 바람 숨 쉬는’ 철학자이자 예언가였던 토정 이지함 선생은 벼슬에 욕심이 없었다. 환갑이 다 되도록 벼슬을 하지 않다가 늦은 나이에 종 6품 벼슬을 얻어 포천 현감으로 잠시 재직하다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천거를 받아 아산 현감으로 재직하면서 한 고을을 다스리는 수령의 본보기를 보였다. 전임 현감이 했던 폐단을 없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줬고 걸인청을 만들어 굶고 떠도는 백성을 구휼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과 토정 이지함 선생을 비교해보면 두 분 모두 애민과 청렴은 기본이다. 조금 다른 점을 굳이 찾아본다면 다산 선생은 강직. 근면이 앞서고 토정 선생은 자유와 힐링의 요소가 들어 있다. 요즘 공무원에게 딱 필요한 요소다.
속담에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토정 이지함 선생을 보령시 브랜드로 콘텐츠화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예시를 들자면 토정 이지함 선생을 기리는 화암서원과 연계한 <토정 이지함 학습 및 토정 관련 보령 체험> 같은 거다. 공무원 교육 기획 전문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빅 피쳐가 그려진다. 구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차차 이 브런치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토정 이지함 선생의 일화 일부를 다음 백과 <한국 인물 열전 – 이상각 저>에서 옮겨 싣는다.
<토정 이지함 일화 – 출처 이상각 저 한국사 인물 열전>
이지함은 양반의 상업 활동을 주장했을 만큼 뚜렷한 경제관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양반 중에 도덕을 갖춘 군자가 상업 활동을 해야만 그 이윤을 백성에게 골고루 되돌려 줄 수 있다고 단언했다. 아울러 방치되고 있는 나라 안의 자원을 적극적으로 이용하여 민생을 향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지함은 평소 “내가 1백 리 되는 고을을 얻어서 정치를 하면 가난한 백성을 부자로 만들고, 야박한 풍속을 돈독하게 하며, 어지러운 정치를 다스려 나라의 보장(保障)으로 삼을 수 있다.”라고 자부했다. 그는 민생안정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직접 실천에 옮겼다. 조선 팔도를 떠돌며 백성들에게 장사와 기술을 가르쳤고, 그들에게 자급자족의 중요성을 설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