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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Sep 02. 2021

가장 소담스러운 브런치, 미역국

-안나의 브런치(3)

즐거운 기다림

      

매거진 <안나의 브런치>를 시작하자 주말이 더욱 기다려졌다. 라운과 한 약속 덕분이다. 주말 브런치에 우리 모녀의 소소한 일상과 서사의 가치를 담아보자고 작당(?)한 게 이렇게 즐거운 상상과 행복을 불러올 줄이야. 뭐든 은밀하면 더 재미있는 법, 매거진 <안나의 브런치> 1회를 올리고 난 뒤 우리 모녀가 주고받는 눈빛과 대화는 더 깊어지고 풍부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과 남편이 우리의 결속에서 제외된 건 아니다. 모녀 사이가 화기애애하니 집안 분위기가 달콤해서 우리 집 부자(父子)도 톡톡히 덕을 보는 셈이다.  


지난주 브런치 시간에 라운이 만든 파프리카 수프는 완벽한 성공. 소소한 일상을 차려놓은 작은 식탁에 스토리가 더해져 한 주일 내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우리 집 식탁에서도 적용된 셈이다. 가화만사성 역량 강화라는 생각이 들자 내 차례가 된 이번 주 브런치를 정말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이번 주 브런치에 어떤 음식이 좋을까 고민하고 있는데 예쁜 딸이 더 예쁜 제안을 한다. “주말에 할머니 제사도 있어 음식도 많을테고 일요일이 내 생일이니까 이번 주 엄마 브런치 요리는 미역국 어때요?”라고. 라운 제안 한마디로 메뉴 고민이 싹 사라져 쾌재를 불렀다. 브런치가 미역국이라니 그야말로 가장 한국적인 브런치가 아닌가?    


()을 넣고 끓인 전복미역국

  

사진; 손질한 전복과 건미역


라운 생일상을 겸한 이번 주 브런치 전복미역국은 따로 장을 볼 필요가 없었다. 얼마 전에 싱싱한 활(活) 전복이 와서 바로 냉동실에 보관해둔 덕분이다. 어떤 재료로 생일상을 차릴까 고민하다가 전복이 몸에 좋으니 전복 미역국을 끓이기로 했다.   

   

전복은 미네랄과 비타민이 풍부한 식품으로 조개의 황제로 불린다. 관절과 뼈를 튼튼하게 하고 면역력 증강에 효과가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꼭 먹어야 할 보양식 중 하나다. 그리고 중요한 주재료 미역은 기장 미역으로 준비했다.      


나의 전복미역국 레시피 (4인 기준)


건 미역 10g

전복 4마리

국간장 2T

참치액 1T

참기름 1T

다진 마늘 1T

전복 껍데기 육수 1.5L

사진; 전복내장과 미역을 볶고 육수를 우려 국물 내서 완성해가는 과정


전복은 손질이 중요하다. 전복에 날카로운 이빨이 있어 조심스럽게 잘 떼어내야 한다. 관자 끝부분에 있는 이빨을 제거한 후 내장만 따로 떼어내어 참기름에 달달 볶는다. 내장이 고소하게 익으면 미역을 넣고 같이 볶다가 미리 우려낸 전복 껍데기 육수를 넣고 푹 끓인다. 그리고 다짐 마늘을 넣고 국간장과 액젓으로 간을 한 후 뽀얀 국물이 우러나도록 더 끓인다. 깊은 맛이 나면 미리 썰어 놓은 전복을 넣고 한소끔 끓이면 전복미역국 완성!  

    

국이 끓고 있는 동안 잡채를 휘리릭~~ 볶고 미리 갖은양념을 해서 재어둔 갈비찜은 불에 올렸다. 갈비찜이 익어가는 동안 조물조물 손맛을 더해 나물을 무친 다음, 보리 굴비를 노릇노릇 구웠다. 전날 익혀둔 문어를 얇게 썰어 상에 올리니 소담스러운 라운 생일상이 완성됐다.  

 

사진: 전복미역국과 생일 밥상

친정엄마의 참기름 미역국 


라운 생일을 위해 전복미역국을 끓이고 보니 친정엄마의 미역국이 생각났다. 친정엄마의 미역국은 소담스러웠다. 우리말 사전에 <소담스럽다>의 의미는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고 깔끔하여 먹음직하고 보기 좋은 데가 있다’라고 나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친정엄마의 미역국은 참 소담스러웠다.   

    

어린 시절이지만 선명히 기억나는 게 있다. 갓 태어난 동생은 나와 아홉 살 터울이다. 동생이 태어나던 날 대문에는 새끼줄에 솔가지와 고추와 참숯을 끼운 금줄이 걸렸다. 어린 기억에 아홉 살 아래 동생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어쩌면 대문에 달린 금줄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금줄이 복(福)을 가져다줄 것 같은 기대도 물론 있었다. 


<사진 출처; Daum 이미지>


집안은 갓난아기의 향내와 고소한 미역국 냄새가 가득했다. 야릇하지만 어쩐 지 좋은 이 냄새는 엄마의 뽀얀 미역국과 오버랩되어 빛바랜 추억 사진으로 내 심장에 새겨져 있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엄마가 미역국을 드시고 계셨다. 집안이 넉넉지 않아 소고기미역국은 엄두도 못 냈던 시절이다. 도톰한 기장 미역을 잘게 잘라 푹 불린 후에 참기름 한 방울 넣고 달달 볶아 뽀얗게 우려냈다. 동생 옆에서 엄마의 미역국을 얻어먹는 맛은 기막히게 좋았다.    

  

그때의 깊고 융숭한 미역국 맛은 그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 된다. 엄마는 동생이 장성한 후에도 그때 드셨던 미역국을 드시고 싶어 했다. 하지만 같은 맛을 내는 미역은 구할 수 없었다. 지금이라도 어떻게든 그런 미역을 찾아 끓여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이제는 끓일 수 없다. 이런 추억을 떠올리게 하려고 라운은 내 차례가 된 브런치 메뉴를 미역국으로 정한 걸까?    

   

우리 집 생일 전통 &  라운의 생일 문화      


우리 집은 가족이 생일을 맞으면 전야제부터 한다. 마치 축포를 쏘고 종을 울리며 새해맞이를 하듯 생일 전날 자정 12시에 케이크에 불을 켠다. 그리고 이튿날까지 생일 축제는 계속된다. 생일 축제가 거창한 건 아니다. 덕담을 건네며 창창한 앞길을 축하하는 거다. 어떤 날은 깜박 잊고 잠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데 12시가 임박하면 어김없이 잠이 깨고 촛불 켠 케이크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이때는 치맥 등 배달 음식도 당당히 등장한다. 다들 자다가 일어나서 생일 전야제에 참가하는데 우리 집 생일 문화로 정착되어 불만은 없다. 오히려 다들 즐기는 분위기다.    

  

라운은 이번 생일에 특별한 이벤트를 했다. 생일을 의미 있게 보내고 싶다며 봉사활동을 신청했었다. 그런데 코로나19 4단계가 풀리지 않아 아쉽게도 실현하지 못하고 친구들과의 단출한 만남으로 봉사활동을 대신했다. 

   

라운은 생일 이벤트로 나를 쇼핑몰로 불러냈다. 3시 반에 쇼핑몰 앞에서 만나자고 선약을 했기에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갔다. 잠시 누구 생일인지 헷갈렸다. 라운과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서 두리번거리니 라운은 환하게 웃으며 나를 맞는다. 낳아 준 엄마를 위해 라운이 마련한 특별 이벤트는 감동 그 자체! 미리 동선을 짜 놓은 듯 주저 없이 갤러리로 먼저 안내했다. 눈 호강을 시켜주고 나를 이끈 곳은 세련된 구두 쇼핑몰! 

     

사진;구두숍과 갤러리에서

친구들에게 생일 밥을 사야 하는 데 그렇게 쓴 비용과 똑같이 '낳아준 고마움에 엄마 아빠에게도 선물해야 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 않으면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불편하다고 항변해서 그냥 덜컥 선물을 받았다. 

나의 소중한 베프 라운! 도대체 생일 주인공이 누구지ㅎㅎ


라운의 전복미역국이 브런치가 된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빛나는 보석이다. 구슬로 꿰어야 보배이듯 우리 모녀의 소소한 일상이 서사시(敍事詩)가 되도록 <안나의 브런치>는 이번 주에도 계속된다. (글3: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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