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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Aug 24. 2021

라운과 나를 맺어주는 끈, <안나의 브런치>

안나의 브런치(1)

출발점 

    

매거진 <안나의 브런치>는 음식 이야기이자 우리 모녀의 소소한 일상을 차려놓은 작은 식탁이다. 안나는 <안유와 라운>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것으로 <브런치 플랫폼 안의 브런치> 매거진 이름이다. <안나의 브런치>는 라운이 제안했다.    

   

주말이면 뭔가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일주일을 보상받는 것 같다. 그렇다고 거창한 건 아니다. 아침과 점심 사이에 간단히 먹는 브런치처럼 단출하지만 색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예를 들면 파스타나 라따뚜이를 만들어 와인을 곁들이고 고기 한 조각 구워내는 정도다. 그리고 영화 한 편 보태면 모녀가 주말을 온전하게 즐기는 완벽한 조합이 된다.  



이번에 선택한 영화는 2009년 개봉한 노라 애프론 감독의 ‘줄리 앤 줄리아’다. 먹는 것과 요리를 즐기는 두 여성을 그린 영화로 과거의 줄리아와 현재의 줄리 두 사람의 이야기를 교차하여 보여준다. 액자 속의 액자 같은 영화다.    

<사진 출처; Daum 영화>

이 영화는 실존 인물 줄리아의 블로그가 배경이다. 주인공 줄리는 줄리아의 책에 있는 524개 요리 레시피를 1년 안에 섭렵하는 걸 목표로 블로그 활동을 하기 시작한다. 처음은 미약했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줄리아는 낙심하지 않고 처음 작심한 것을 하나씩 하나씩 이뤄나갔다. 그녀의 뚝심과 진심은 통했다. 차츰 블로그 방문자가 늘고 댓글로 그녀의 성공을 응원했다. 수많은 댓글로 지지를 받기 시작하자 그녀는 더욱 용기 내어 그동안 해보지 못한 요리에 도전한다. 실패에 더 많은 댓글이 달렸고 이것이 도전의 마중물이 되면서 줄리아는 마침내 524개 요리를 모두 해낸다.  




영화의 소재는 요리지만 줄리아의 요리 안에는 인생 희로애락과 인간의 존엄이 함께 했다. ‘줄리 앤 줄리아’가 끝난 후에도 역경과 고난으로 점철된 마라톤 경기를 완주한 인간 승리의 감동이 가시지 않았다. 여운이 남아 잠시 생각에 잠겼는데 라운은 가슴 ‘쿵‘하는 제안을 했다. 우리도 브런치 요리를 만들고 각자 요리에 대한 글을 써서 교환하자고!   

   

일주일에 한 번씩 1년을 올리면 52개 브런치 레시피 완성이다. 이 놀라운 도전을 제안한 라운은 놀라서 망설이며 머뭇거리는 나에게 이렇게 위로를 한다. “엄마, 매주 한 번씩 번갈아 가며 재료를 준비하면 한 명이 27개 요리만 만들면 돼. 브런치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재료비를 부담해서 재료를 준비하고 브런치를 만드는 거지. 1회 장보기 비용은 3만 원을 넘지 않는 선으로 하고, 그리고 브런치 만드는 과정을 글로 써서 홍안유 브런치에 올리면 끝! 매거진 이름은 <안나의 브런치>!   


특별한 시간을 만드는 방법

   

<출처; Daum 이미지>

여우가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각에  오는 게 좋을 거야. 만일 네가 오후 4시에 온다면 나는 3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4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마침내 4시가 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그러면서 행복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돼. 그런데 네가 아무 때나 오면 언제부터 준비를 해야 되는지 모르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라고.

어린 왕자가 물었다.

”의식이 뭐야? “

여우가 대답했다.

”의식이라는 것은 어느 날을 평소와 다르게, 어느 시간을 평소의 시간보다 특별하게 만드는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중에서 -


라운과 나는 <어린 왕자>에서 여우가 말한 의식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라운과 무언가를 함께하며 시간을 보낸다는 게 소중하니까. 서로를 알아가려면 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라운과 나의 관계는 좀 특별하다. 라운은 학업 때문에 어린 시절을 거의 타국에서 보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유독 엄마를 찾는다. 라운이 엄마에게 애착을 갖는 건 함께 추억을 만들고 소중하게 기억하는 의식이 필요했던 거다. 평일은 서로가 바빠서 얼굴조차 잊을 지경이다. 여유롭게 볼 수 있는 날은 주말뿐, 라운도 나도 주말엔 다른 약속은 가능한 한 피한다. 서로에 대해 소중하고 필요한 존재가 되려면 그만큼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한 법. 라운이 제안한 <안나의 브런치>는 신의 한 수다. 두근거리는 행복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 둘은 서로에게 토요일의 의식을 기꺼이 내주기로 했다. 


첫 번째 도전  파프리카 수프

 

<사진; 요리 재료 파프리카>


요리를 맡은 사람이 브런치 아이디어를 내고 장을 본다. 우리는 장 볼 때부터 함께하기로 했다. 첫 번째 도전은 라운이 맡기로 했다. 첫 주 브런치 요리는 ‘파프리카 수프’로 정했다. 며칠 전 언니에게 푸짐하게 받아온 채소 목록에 파프리카도 듬뿍 들어있다. 라운은 재치 껏 있는 재료를 활용할 속셈이었다.    

  

파프리카를 썰고 굽는 동안 곁들여 먹을 빵을 사러 갔다. 가을장마가 시작되어 강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고 있다. 가까운 집 앞 빵집을 갈까 잠시 고민하다 신선한 식감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단골인 <여섯 시 오븐>으로 향했다. 큰 우산을 받치고 있는데도 몇 발자국 떼기도 전에 신발과 옷이 흠뻑 젖었다. 서로의 젖은 옷을 바라보며 한바탕 웃었다.  

   

신선한 빵만 사고 얼른 오자고 다짐하고 갔지만 매번 그렇듯 지름신이 강림했다. 유혹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게 된다. 핑계는 많다. “세일을 많이 해서” “재료가 곧 동이 날 것 같으니 미리 준비해둬야지” “신선하니 여유 있게 사놓자” 등등 사야 할 이유는 너무 많았다. 이번에도 와인 할인 행사장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쇼비뇽 레드 와인과 샤르도내 화인드 와인을 바구니에 담았다. 해가 있는 한낮 브런치에는 화이트 와인을 마셔야 한다면서..


<사진; 여섯 시 오븐 빵집 & 와인>


이번 주 브런치 담당인 라운은 요리를 척척 해냈다. 억수로 쏟아지는 가을장마를 뚫고 사 온 빵을 팬에 가지런히 담아 놓더니 재빨리 오븐을 열었다. 장을 보러 가기 직전 오븐에 넣어 놓은 파프리카가 잘 구워져 라운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파프리카를 오븐에서 꺼내놓고 파프리카 수프에 들어갈 부재료 감자를 삶고 버터와 재료를 믹서에 갈기 시작했다. 그 사이 바게트 팬이 오븐에 들어갔다. 빵이 구워지는 동안 수프가 뽀글뽀글 끓는다. 고소한 풍미 가득한 파프리카 수프 완성! 미리 준비해 둔 라따뚜이도 오븐에 구워냈다.


<사진; 구운 파프리카&라따뚜이 >


완성된 파프리카 수프를 그릇에 담고 잘 구워진 라따뚜이와 바케트에 올리브 소스를 얹어 내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맛깔스러운 <안나의 브런치>가 완성되었다. 오롯이 둘만의 의식이 거행되는 토요일 오후, <안나의 브런치>를 즐기고 있노라니 라운과 더 깊고 넓게 연결되었다. 파프리카의 효능처럼 우리의 관계에도 다양한 비타민과 영양분이 듬뿍 쌓인 주말, 우리 모녀의 서사시(敍事詩)는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줄리 앤 줄리아’처럼.   

   

<사진; 파프리카 수프&안나의 브런치>


<안나의 브런치>의 브런치를 멋지게 시작한 라운의 뒤를 이어 어떤 브런치를 준비해야 할까? 뭔가를 계획하는 시간은 심장이 확실히 더 건강하게 뛴다. 그래서 <안나의 브런치>는 언제나 파이팅이다. (글1:안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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