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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안유 Oct 13. 2024

재미와 행복의 쓸모를 찾아낸 뜻깊은 수학여행

평균 연령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찾아낸 감성

우리 농촌은 알고 보면 새로운 길을 가려는 사람들의 영감(靈感) 충전소다. 살구꽃이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고 한 정완영 시인의 문장을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 농촌은 어디나 다 고향처럼 친근하다. 농촌의 겉만 보고 농촌 사람이 도시 사람 코 베어 간다는 소리를 간혹 하는데 마음 열고 다가서면 고향 같은 속살이 깊이 숨어 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부녀회, 노인회가 중심이 되어 마을 회관에서 공동식사를 하는데 끼니때면 웃음꽃이 만개한다. 특별한 반찬 한 가지라도 더 올라오면 생일상을 받은 듯이 좋아하시는데 “나이 들면 애 된다”는 말이 딱 들어맞을 때가 많다. 


사실 어르신들의 이런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농촌 소멸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실에서 “농촌의 이런 따뜻한 모습이 과연 언제까지 유지될까?” 걱정스럽다. 사실 농촌 마을 역량 강화의 핵심 중 하나은 주민과 어르신들에게 행복감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교육’이라는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며 안 받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교육’의 재미를 알고 유모차를 끌고 종종걸음으로 오시는 모습을 뵈면 행복을 주려고 왔다가 오히려 행복을 충전당한다.      


이런 어르신들을 모시고 선진지 견학을 가는 일은 힘은 들지만 참 보람 있다. 우리는 ‘선진지 견학’을 ‘수학여행’이라고 한다. 학창 시절 책에서만 봤던 내용을 직접 찾아가 가슴으로 느꼈을 때 몰아쳤던 감동을 어르신들도 여전히 갖고 계시기 때문이다. 지역 역량 강화의 진짜 재미는 이런 감정을 끌어올렸을 때인데, 얼마 전 양평군 양서면 신원1리 어르신들과 함께 정선 그림 바위 마을과 아우라지 주례마을장터로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마을 자체가 예술인 정선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       

양평군 양서면 신원1리 수학여행지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초부 마을 신원1리처럼 마을 정체성이 뚜렷하면서, 마을 정체성을 자산으로 세상에 둘도 없는 특화 마을로 자리 잡은 지역이다. 이 2가지 조건에 부합하는 마을이 정선군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과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주례마을 장터라고 봤다. 


정선은 산과 산이 겹겹이 쌓여 돌아도 돌아도 산만 보이는 구절양장의 고장이다. 산과 산 사이에서 흐르는 물이 여량(輿梁) 아우라지를 이루고, 그 물길을 따라 뗏목을 흘려보냈던 한(恨) 맺힌 고장이었다. 남편이 뗏목을 끌고 험한 물살을 헤쳐 한양까지 다녀오려면 줄잡아 서너 달의 세월이 흘렀고, 물살이 드세기로 유명한 황새 여울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어디 이뿐이랴. 팔당 근처 월계 마을(현재 신원1리)에 주막도 있어 여색에 한눈을 팔기도 했으니 정선 여인네의 정한(情恨)은 노래로라도 풀어야 했고 그래서 나온 푸념이 아리랑 중에서 가장 구슬프다는 정선 아라리다. 도시인들이 쉽게 찾아갈 수 없었던 오지 중의 오지 정선 땅이 지금은 여행자의 로망이 되었다. 모두 지역 역량 강화 덕분이다.      


우리가 수학여행지로 잡은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은 2013년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새롭게 탄생한 명소다. 화암면을 둘러싼 산과 바위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해서 옛날부터 이 동네 산과 바위를 그림 바위로 불렸는데 여기에 주민과 외부 지원의 손길이 더해져 <반월에 비친 그림 바위 마을>로 발전한 것이다.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은 천천히 둘러보며 음미해야 한다. 신원1리 주민과 함께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마을을 둘러보면서 오롯이 마을 그림을 가슴에 품고 신원1리의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도 보았다. 문화체육관광부 마을 미술 프로젝트로 탄생한 마을을 한국농어촌공사의 지원 덕분에 둘러볼 수 있으니 신원1리는 참 복 받은 마을이다.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주례(酒禮) 마을 장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이번에는 발길을 정선 여량면 아우라지 주례(酒禮) 마을 장터로 돌렸다. 여량(餘糧)은 식량이 넉넉하다는 뜻이다. 아우라지 뱃길 따라 뗏목을 싣고 가서 쌀도 사고 마나님 검정 고무신도 사 왔던 시절, 아우라지 나루터 인근에 사는 주민들은 다른 지역보다 형편이 넉넉했다. 그래서 고을 이름마저도 여량(餘糧)인 이곳에 막걸리 공장이 있었던 건 당연지사! 그런데 세월의 변화에 따라 막걸리 공장은 사라지고 그 터에 주례(酒禮) 마을이 조성됐다. 마을의 자원을 활용한 이런 변화는 좋은 타산지석이다. 


2011년부터 추진됐던 주례마을 조성사업은 착착 진행되어 지금은 정선군 지역 경제 활성화에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신원1리 주민과 함께 눈여겨본 점은 주례(酒禮) 콘텐츠다. 옛 선조들의 올바른 음주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술 예절 교육관이 있다는 게 이 마을의 장점이라고 봤다. 술로 인한 사고가 빈번한 시대에 올바른 음주문화 습득은 남녀 모두 거쳐야 할 통과 의례라고 본다. 


조선시대는 절제 있게 술을 마시고 주도(酒道)를 지키도록 관아의 수령 이 관리와 유생들에게 향음 주례라는 주연(酒宴)을 갖기도 했는데 지금은 그런 풍속이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던 차에 정선군 여량면 주례마을 장터에 그 좋은 문화가 살아난 것이고, 신원1리 주민은 직접 가서 보면서 마을 발전의 노하우를 익힌 것이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정선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과 여량면 주례마을 수학여행을 통해 평균 연령 65세 이상 주민들이 잠시나마 학창 시절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화암면 그림 바위 마을에선 삶 속으로 들어온 예술이 진짜 예술이라는 걸 배웠고, 주례마을 장터에선 전설로 남은 노비 출신 정초부를 신원1리 성장 자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는 점이다. 


느린 곡조가 특징인 정선 아라리 중 ‘엮음 아라리’는 템포가 빠르다. 하고 싶은 말을 많이 담기 위해서다. “마당 웃전에 쉬영 버들은 바람을 휘몰아치는데 우리 집에 서방님은 낮잠만 자네”라는 여인네의 한숨이 오늘 브런치 마침표를 찍는 데 따라붙는다. 그러고 보면 지역 역량 강화는 삶의 원천을 나눠 갖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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