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문화기행
1500년 동안 침묵 속에 누워 있던 네 구의 인골이 세상과 마주했다. 그중 한 소녀는 왼쪽 귓불에 작은 금제 귀걸이를 달고 있었다.
송현동 15호분의 흙이 걷히던 순간, 흙먼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따라 아주 오랜 시간이 조용히 깨어났다.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누군가의 죽음을 따라 어둠 속으로 내려가야 했던 16세 소녀—
사람들은 그녀를 **‘송현이’**라 불렀다.
고요한 송현동의 들판 위로 말 한마디 남기지 못한 소녀의 시간이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 과학이 되살린 1500년 전의 얼굴
발굴 직후 2007년,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고고학·법의학·조형학을 결합해 송현이의 얼굴을 복원했다.
치열의 마모 정도, 종아리뼈의 길이, 골반의 각도, 걷는 습관을 짐작하게 하는 발목뼈의 배열까지—
153cm의 가냘픈 소녀는 밝은 연구실 조명 아래에서 천천히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다.
우리는 그 복원된 얼굴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빛은 어떤 색이었을까. 무덤 위에서 들려오던 발자국을 끝내 기다리다 눈을 감았을까. 귓불에 남아 있던 금제 귀걸이는 그 어린 마음이 마지막으로 붙들었던
잔잔한 떨림이었을까.
순장은 제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두려움과 체념, 아주 짧았던 생이 함께 묻혀 있는
슬픈 현실이었다.
15호분에서 발견된 순장자. 복원후 '송현이' 로 명명 - 창녕박물관
- 가야에서 성행한 순장제도
송현이의 얼굴을 마주하면 그녀의 죽음 뒤에 서 있던 시대의 그림자가 아득히 떠오른다.
고고학적으로 볼 때, 가야는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순장이 확인된 지역이며 마지막까지 이 풍습을 이어간 지역이기도 하다.
3세기말부터 6세기 중엽까지 약 250년. 어떤 무덤에서는 순장자가 40명 가까이 확인되기도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부여조에는 “부여에서는 왕이 죽으면 사람을 죽여 순장했는데,
많을 때는 백 명에 이르렀다(殺人殉葬 多者百數)” 고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동천왕이 죽자, 새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덤에 와서 따라 죽는 자가 많았다(至墓自死者甚多)” 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 잔혹한 관습은 가야가 신라에 편입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삼국사기』 지증왕 3년조는 “전에는 국왕이 죽으면 남녀 각 다섯 명을 순장했는데, 이때 법으로 이를 금지하였다(下令禁殉葬 … 至是禁焉)” 고 전한다.
그러나 송현이의 무덤은 그 제도가 얼마나 깊고 오랫동안 사람들의 삶을 지배했는지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비사벌에서
송현이가 잠들어 있던 이곳은 옛 **비화가야(非火伽倻)**의 중심지였던 비사벌 땅이다.
『삼국유사』는 비화가야의 위치를 창녕과 고령 두 설로 나누어 소개하지만,『삼국사기』 지리지의 “비자화군(比自火郡), 비사벌군(比斯伐郡)” 기록은 오늘날 창녕 일대가 바로 그 중심지였음을 말해준다.
비화가야의 발달과 소멸은 자세히 남아 있지 않지만, 신라가 555년 비사벌주를 설치하고 561년 화왕산 아래에 진흥왕 순수비를 세운 사실로 보아 그보다 먼저 신라에 편입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나라의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지도 위 경계 하나가 사라지는 일만이 아니다. 사람들의 하루와 생의 결이 타인의 손에 의해 바뀌는 일이다.
그 변화의 그림자는 송현이라는 어린 소녀에게도 서늘하게 드리워져 있었던 것이다.
- 만옥정 아래에서 만난 진흥왕의 발자취
창녕 만옥정 아래에 놓인 진흥왕 척경비는 그 변화의 순간을 묵묵히 품고 있었다.
1914년, 소풍을 나간 한 초등학생이 화왕산 기슭에서 문드러진 비석 하나를 발견했다.
그 순간, 1500년 동안 숨죽여 있던 신라의 시간이 흙먼지 사이에서 조용히 깨어났다.
만옥정에 서서 비바람에 닳아버린 비문을 더듬어 보면 눈에 겨우 잡히는 글자들 너머로
비화가야가 잃어버린 이름들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새로 편입된 땅을 다스리기 위해 세워진 이 비석은 당대 사람들에게 어쩌면 정복자의 깃발처럼 보였을 것이다.
술정리 삼층석탑에서 직교리 당간지주, 인양사, 석빙고를 지나 창녕박물관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진흥왕 행차길’이라 불리는 이 길은 정복자의 위엄을 기리는 길이지만, 그 길 위를 걷는 오늘의 우리는 정복당한 이들의 그림자도 함께 느끼게 된다.
그 길 위에서,
17살의 신라 왕 진흥왕, 16살의 가야 소녀 송현이, 그리고 불꽃처럼 살다 간 비사벌 사람들의 숨결이 서늘한 바람 속에서 겹겹이 포개져 다가온다.
한 시대의 빛과 어둠, 정복과 소멸, 울음과 환호의 흔적들이 창녕의 들판과 고분군 사이에서 서로 스치며 오늘의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걸었다.